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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섬에서 한 달
풍향계/ 섬에서 한 달
  • 동양일보
  • 승인 2020.01.28 22: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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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희 논설위원 / 침례신학대 교수
김주희 논설위원 / 침례신학대 교수

[동양일보]제주에 와있다. 한달간 살기로 했다. 뚝 떨어져 훌훌 쉬다오라고 옷가지나 몇 챙겨 나서도록 곁애서 서두는 바람에 주저하고 말 겨를이 없었다. 한달씩 떨어져 살 일 없고, 식구들 복닥거리며 안도하는 습관 덕에 두 마음인데 깜찍한 겸둥이가 도우미로 나섰다. 함께 가자고, 그리고 일사천리. 잘 놀다 오라는 격려를 듣자니 오히려 민망스러웠다. 번잡을 피해 늦은 시각 출발하니 불빛 몇이 차고 투명하게 일렁이는 밤바다를 날아 도착했다.

공항에서 탄 택시, 기사는 조선족이라고 했다. 하얼빈에서 자랐는데 거기는 여기만큼 일자리도 젊은이도 없다고, 아내와 아이들이 함께 와 있고, 아이 학교 교육에 차별은 없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다시 많이 오기 시작한다고, 사드 영향이 끝났는지 다시 제주가 북적거린다는 얘기, 한국사람들이 아기를 안낳아서 다른 데서 온 이들이 인구를 늘이면 그게 다른 나라가 되는 건 아니냐는 얘기를 컴컴한 길을 달리는 동안 들었다.

멀끔한 숙소에서 맞이한 첫 아침은 햇살이 창 전체로 쏟아져 들어오는 쾌청한 일기, 한 겨울인데 푸른 활엽수들, 노란 귤을 매달고 있는 푸른 귤나무들, 그 아래 근심없이 떨어져내린 아까운 과실들, 검은 현무암 돌담 위를 덮은 작은 잎 덩굴식물들로 눈을 씻는 호사를 했다. 물리적 공간은 인간 사고와 삶을 바꾼다고, 사는 곳이 삶의 형태를 결정하기도 한다더니. 운전까지 않기로 하자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자동차 없던 젊은 어느 때처럼 걷고 버스를 타고 또 택시를 기다리는동안 저절로 구름 낀 하늘이 보이고 길 가 허름한 고등어 조림집, 자동차 폐차장도 지나갔다. 며칠 여행이라면 모를 길이다. 개가 컹컹 짖고, 떨어진 과실을 한 곳에 모아 거름을 만드는 일상은 관광상품이 되지는 않을테니. 이곳에서 한동안 살면 어떨까, 일년이나 이년쯤. 자의 아닌 어떤 이유로 돌아가지 못하고살아야 한다면 또 어떨까 꽃놀이도 한나절이라는데.

낯선 곳에서는 머물 뿐 책임에서 자유로운 방랑, 정처가 없으므로 외로울 자유가 주어진다.

두고온 책임은 돌아가지 않으면 질 수 없고, 이곳은 지나치는 길손이니 중한 책임은 주어지지 않는다. 정해진 게 없으면 삶이 가벼운 부분도 있을 것이다. 정해진 무엇이라고 나쁘기만 할 리 없고, 자신이 택한대서 항시 최선일 리도 없으련만 자유롭게 무엇을 고를 수 있는 가능이 때로 자존과 연관되기도 한다. 살던 터를 떠나보면 몇 개의 자신을 만나게 될것인가. 좋아하는 것, 되고싶은 것이 희미해져가는 익숙함, 습관처럼 하던 일을 하고 감동없이 일상을 살아내는 자신을 놓아주면 몇 개의 나, 알고 모르던 자신을 만나게 될까.

택시 기사에게 공존에 대한 시국강연 같은 얘기로 시작한 섬 살이는 세계로 번져간다는 전염병 소식으로 흉흉하다. 질병의 세계화, 교통통신의 발달이라는 편리의 그늘은 빠른 질병 확산인지.

재난문자가 연일 하루에도 몇 차례씩 깜빡인다. 춘절이라고 자기 돈 풀어 구경 와 준 고마운 이웃나라 손님들이 지금은 기피 대상에 가깝다. 어떻게 생각하면 미안스럽기도 하다. 모두가 전염균을 보유하고 오는 것도 아니고, 그 중에는 어렵게 돈을 만들고 시간을 모아 설레며 출발한 사람도 있을 터이다.

이 섬에서 전염병에 걸린다면 어떻게 육지로 나가야 하는 건지 슬쩍 염려가 스쳐가기도 하는데

그러면 중국에 있는 우리 국민들은 어떻게 해야하나, 내가 지금 여기가 아니라 그 재난 지역에 있다면 어떻게 돌아와야 하나 싶던 차에 나라에서 전세기를 띄워 우리 국민을 데려오려고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디 있건 국민을 보호하는 일이 정부의 기본 책임이라고 다행으로 여기는 찰나에 야속한 말들도 들려온다.

아무리 우리국민이라도 왜 세금써서 데려오느냐고 불만인 이가 있다고 한다. 세금타령을 이럴때 하다니. 더구나 전세기탑승비용은 개인이 내고, 돌아와 국가가 정한 곳에서 안전하게 격리된다고 한다. 재난을 겪는 이웃나라에는 우리국민 데리러 가는 길에 방호 방역 방진복이라도 가져다 주면서 도울 일이 없는지 찾아보는 이웃노릇은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재난이 끝나고 나면 다시 왕래할 이웃이므로. 이웃집 불은 바람 불면 우리 집으로 옮겨 붙을 수 있고, 공존공영은 모든 도덕 학문 예술의 기본정신이다. 함께 잘 살아내자는 전제가 분명하다면 방법은 찾으면 된다. 그게 정공법이다. 섬에 와 있자니 고립이 더욱 실감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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