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일명 '우한 폐렴'으로 불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의 기세가 꺾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정부 대응 과정에 미덥지 않은 사례가 잇따라 발생했다. 우한 지역 교민을 국내로 이송하는 문제와 관련해 발열이나 기침 등 의심 증상자를 포함할지 여부를 놓고 외교부와 보건복지부가 상반된 입장을 발표하면서 29일 하루 사이에 결정이 두 번이나 뒤집히는 일이 벌어졌다. 전세기도 당초 30일 오전 두 대를 띄울 것이라고 했다가 당일 한 대로 줄었고, 시간도 밤으로 변경됐다. 두 건 모두 중국과의 협의 과정에서 빚어진 혼선이라고 하지만 범정부 차원의 대책들이 과연 치밀하게 조율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생긴다. 이들을 격리해 수용하는 장소 선정을 둘러싼 정부의 대처는 더욱 혼란스럽다. 이 문제는 중국과는 관계없이 우리의 자체 판단으로 정해지는 사안이라 핑곗거리도 없다. 정부는 28일 충남 천안의 우정공무원교육원과 국립중앙청소년수련원을 임시 생활보호시설로 지정한다는 발표문을 언론에 배포했다가 하루 만에 아산 경찰인재개발원과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으로 장소를 바꿨다. 그러잖아도 탐탁지 않았을 아산과 진천 주민들의 자존심까지 건드린 꼴이다. 정부 스스로 상황 악화의 빌미를 자초한 측면은 없는지 되돌아봐야 한다.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 확진자 수가 2003년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를 훌쩍 뛰어넘어 8000명에 육박할 정도로 맹위를 떨치고 있지만, 국내 확진자는 수일째 4명에 머물고 있다. 2차 감염이나 지역사회 감염 사례도 없다. 무척 다행스러운 일이다. 국민들의 자발적 협조와 일선 방역 관계자들의 희생, 그리고 정부의 강력한 의지가 어우러진 결과로 평가할 만하다. 다만 몇몇 사례에서 보듯 부처 간 원활한 소통을 통해 정책을 조율하고 이를 신뢰성 있는 메시지의 형태로 국민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에 일부 허점이 노출된 점은 아쉽다. 컨트롤타워를 둘러싼 논란이 생긴 것도 이런 이유이다. 감염병 위기 경보가 '주의'에서 '경계'로 격상된 뒤 질병관리본부의 중앙방역대책본부와는 별도로 복지부에 중앙사고수습본부가, 국무총리실에도 상황관리실이 차려지면서 오히려 대책 조율과 대국민 메시지 관리에 혼선이 생길 수도 있는 상황이다. 방역에 관한 과학적, 기술적 판단은 전적으로 질병관리본부에 맡기고 정책 결정의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청와대는 정제된 메시지를 내보내는 식으로 대응 체계를 잡는 것이 맞다. 전염병이 발생하면 질병 자체뿐 아니라 불안.공포도 극복해야 한다. 신종 코로나와의 전쟁은 전문가 집단이 모여있는 질병관리본부가, 공포와의 전쟁은 청와대가 컨트롤타워를 맡아야 한다.

재난에 정치가 개입하면 좋은 결과를 내기 어렵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동안 국내외에서 수없이 목격한 경험칙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최근 중국인 입국 금지, 한국 체류 중국인 관광객 본국 송환과 같은 초강경 대응을 주장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위기를 정쟁화하고 이를 통해 당파적 이해득실을 따지면 일을 그르치기에 십상이다. '공포 마케팅'에 대한 유혹은 정치인뿐 아니라 언론도 경계해야 한다. 정부 부처나 지자체 역시 한편으로는 급한 마음에, 다른 한편으로는 인기를 의식해 설익은 대책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일을 삼가야 한다. 부실 대응보다는 과잉 대응이, 늑장 대응보다는 선제 대응이 낫지만, 최선은 '적기의 적절한' 대응이다. 길게 보면 한정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이 위기 극복의 관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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