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화 충북교육연구정보원 파견교사

정준화 충북교육연구정보원 파견교사

[동양일보]유럽 교육이라는 말의 피로감. 분명히 그런 것이 있었다. 니체가 말한 르상티망(ressentiment)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끝없는 동경보다는 ‘그래봐야 별것 아닌 것’으로 폄하하려는 시기심. 어쩌면, 문턱이 닳도록 수년째 핀란드, 독일, 덴마크 교육을 배우러 가면서도 변화가 더딘 교육현장에 대한 좌절감도 어느 정도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의 이 오만함과 피로감은 독일 발도로프학교 미술실에서 모두 무너져버렸다. 모락모락 김이 나는 차 한 잔과 둥글게 둘러놓은 의자, 서로에 대해 먼저 알고 시작하자는 인트로(intro). 이방의 나라에서 온 연수생들을 맞이하는 정성스러움 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그들의 ‘화법’이었다. 발도로프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 그들이 내민 것은 흔한 프레젠테이션 화면이 아니라 적당한 크기로 잘려진 찰흙 한 덩이였다.

‘이것으로 다함께 간단한 작업을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적잖이 당황했다. 일행들 머리 위에 물음표가 보일 정도였으니까. ‘통역이 잘못되었나?’, ‘수업을 경험하게 하려는 것인가?’, ‘이러다가 질의응답시간이 부족하면 어쩌지?’ 온갖 의문들이 가득한 채 앞치마를 매고, 한 덩이씩 찰흙을 받아 팀 과제를 수행했다.

‘기본 형태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작품까지 점차 변화되는 과정을 표현할 것’, ‘6명이 서로의 작업을 협의하여 만들되, 바로 전 사람의 작업물 형태를 바탕으로 자신의 찰흙 형태를 만들 것’, ‘작업이 완료된 앞 사람의 것은 절대 다시 건드리지 말 것’

알고 보니 아주 단순한 지침이었지만 당시에는 매우 혼란(?)했던 팀원 간 소통이 끝난 후 결과물을 보며 작업의 의미를 해석하는 시간이 되었을 때 우리는 다시 한 번 깊은 사유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그 이야기들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이 작업은 사회적인 큰 힘을 어떻게 발전과 창조로 나아가게 할 것인가를 나타낸다. 발전과 창조를 위해서는 앞선 단계에서 어떤 것을 했는지 이해해야하며 이것은 과거를 의미한다. 과거는 바꿀 수 없다. 우리는 과거를 바탕으로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함께 이야기하고 고민해야한다. 동료들과 이런 방식으로 일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새로운 학생이 들어오면 그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철저히 이해한 뒤 현재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을 진단하고 하게한다. (중략) 학생에게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학생 개인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환경적, 구조적인 원인 때문이다. 그것을 찾아내고 도움을 주려 노력한다”

“이 결과물은 절반의 능력만을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나머지 절반의 잠재력이 있다. (찰흙 작업물을 들어 바닥면을 보여주며) 바로 찰흙의 바닥면이다. 이곳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는데, 이곳이 바로 사용하지 않은 잠재력 영역이다. 다 끝났다고 생각할 때에도 절반의 잠재력은 존재하며, 우리는 이렇게 입체적 사고를 해야 한다”

놀라움을 넘어 마음까지 따뜻해졌던 것은 함께 마시던 차 한 잔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마 모두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흙 바닥면을 보여주며 잠재력을 설명할 때 모두의 입에서 ‘아’하는 탄성이 동시에 나왔으니 말이다.

전하고자하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작업으로 형상화한 섬세하고도 높은 수준의 화법, 사회와 교육 대한 깊이 있는 관점, 역사적 배경에서 기인했을, 과거를 흘러간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철저히 과거에 기반한 반성적 사고와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 한편으로 감탄하며 한편으로 새로운 교육제도를 들여오는데 치중하는 우리 사회를 돌아보게 했고 한아이도 소외되지 않는 교육을 한다지만 그 아이의 (현재를 만들었을 사회적, 환경적 원인이 된) 과거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은 부족한 채 해결책에만 골몰하는, 나를 포함한 학교와 교육시스템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했다.

사실 독일과 덴마크의 학교들을 방문하는 동안 우리가 가는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확신도 얻었고 이미 하고 있는 것들도 많이 있다는 사실에 자부심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우리가 더 노력해야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제도나 프로그램보다는 방향이 아닐까? 야마구치 슈가 그의 저서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철학자들의 사고방식 중 ‘아웃풋’이 아니라 ‘프로세스’ 를 배워야한다고 했듯 우리가 이들에게서 배워야할 것은 새로운 교육방법이나 교육 시스템 같은 아웃풋보다는 오랜 기간 사유하고 토론하는 ‘철학하는 과정’과 그 철학을 작업(또는 시스템)으로 구현해내는 ‘프로세스’일 것이다.

국외연수에서 돌아온 후 많은 사람들이 소회를 물었으나 나는 대답할 적절한 언어를 찾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저 찰흙덩어리 하나가 던진 화두가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이제 그것이 다시 수백 수천 개의 파편이 되어서 커다란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그 무엇으로 내 안에 빛나고 있음을 고백해야겠다. 다시 가슴이 뛰고, 조금 더 깊어졌으며, 그리고 지금은 이 글을 어떻게 닫아야할지 모르겠다. 이 글도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계속 이어지는 실천으로 채워지는 것이 맞겠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