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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질기둥이
풍향계/ 질기둥이
  • 동양일보
  • 승인 2020.02.04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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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팔 논설위원/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마작(麻雀)은 중국에서 건너온 실내오락이다. 네 사람이 136개의 패를 가지고 짝을 맞추는 놀이다. 이 마작놀이를 할 때 장원이 나면 즉, 짝을 다 맞춘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은 ‘훌라’ 라고 외친다. 그리고는 판의 내기 한 물건들을 모두 훑어 들인다. 이를 즉, 마구 힘차게 훑어 들이는 것을 ‘훌라 들인다’ 고 하는데, 이 ‘계속하여 훌라들이는 것’ 을 ‘훌렁이질’ 이라 한다. 이게 마작을 하지 않는 일반 서민에게까지 퍼져 ‘훌렁이질’ 하면, ‘무엇이든 계속하여 훑어 들이다, 또는 쓸어들이다’ 는 말이 됐다.

‘질기둥이’ 는 이웃동네 총각인데 본명이 명선이다. 원래 바탕이 질깃질깃해서인지 성질이 검질긴데 좋게 말하면 끈덕진 사람이다. 그래서 이웃동네선 본 이름 대신 어려서부터 ‘질기둥이’ 라 불렸다고 한다. “윗동네 그 이름난 질기둥이 말여, 우리 동네 능화란 혼인 말이 오간다며?” “혼인 말이 오가는 게 아니라 혼인하기로 정했댜. 거기꺼정은 아직 모르는구먼.” “글쎄 말여, 내도 그 소리 듣구 어리둥절했어.” “소문난 그놈한테 보낼려는 부모 이딨겄어. 참 희한한 일이제.” “그려? 난 오늘 첨 듣는 소식여. 동지섣달 개 딸기지 거 되지 않는 일 아녀?” “맞어, 그 능화아버지 성질에, 산천이 변해서 옛 모습이 없어져두 승질 질겨빠진 그런 놈한텐 보낼 리가 없는 사람인데 말여.” “천하의 능화 애비두 끈질기게 달려 붙는 그놈한테는 못 당한 모양이지 뭐.” “이틀돌이루 찾아와선 흐린 듯 느긋한 듯 하면서도 끈끈하고 질기게 구어 삶는 데야 당해낼 장사 없겠제. 내라도 지쳐서 넘어갔을껴.” “그려, 그려, 그 안식구는 그 호랭이 남편 결정을 그대루 따랐을 테구, 제 엄마 닮아 양순하고 여려빠진 능화는 제 애비 말에 그대루 순종했을 테구. 안 봐두 삼천리지 뭐, 탁 통빡이 나오잖여!”

능화는 맏딸이다. 남동생 하나에다 여동생이 하나 있지만 중학생 초등학생으로 모두 어리다. 능화의 최종학력은 중학교 졸업이다. 제 아버지가 중학교는 안 보내려고 하는 것을 제 엄마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요새 도회지에선 여자애들두 다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보낸대유. 그렇게는 몰할망정 우리 능화 중학교까지만이라두 끄슬려 줍시다.” 했다가, “뭣이 어쩌구 어째, 지집년은 글짜나 깨치믄 감지덕지지 뭘 더 바랴!” 하고 호통 치는 바람에 끽소리 못하고 속만 끓이고 있는 걸 동네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 그 애비에게 한 마디씩 했다. “그 어린것이래도 인물 예쁘장하고 맘씨 고와 나무랄 데 없는 앤데 초등학교만으루 끝내다니 아까워, 아까워!” “자네 집 살림보다 못한 물갓집두 그 둘째딸을 중학교까지 보냈는데 맏딸인 능화를 중학교를 안 보내겠다는 겨. 안 돼 보내주게.” “와 둘째인 아들애 때문인가, 갸 대학교까지 보낼 작정으루 능화 희생시킬려는겨, 요샌 여자두 중학교까진 나와야 시집보내기두 수월하지. 요새사내애들은 다 고등학교 대학교 나오는데 누가 중학교두 안 나온 여자를 데려가겠나. 그러니 중학교 보내게 보내!” 점잖다는 동네 노인장까지 나섰다. “자네 방장부절(方長不折)이라는 말 아는가? 한창 자라는 초목을 꺾지 않는다는 뜻으루, 앞길이 유망한 사람의 기를 꺽지 말라는 것일세. 그러니 능화 자네 딸의 앞날을 위해서라도 중학교까진 보내야지 안 그런가.” 해서 능화가 중학교까지 다닐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능화이니 혼기에 든 총각들이 침을 흘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데 하필이면 이웃동네의 질겨빠진 질기둥이와 연을 맺게 됐다니 동네사람들이 한 걱정을 하는 거였다. 하지만 당사자인 능화는 부모가 정해준대로 고분고분 따랐다.

그런데 질기둥이 내외가 아들딸 낳고 잘 산다는 소식이더니 이제 겨우 50으로 들어선 질기둥이가 별명 그대로 끈질기게 훌렁이질을 해서 인근의 논밭이며 과수원을 모두 사들였다는 것이다. 하도 신실해서 제 아버지 생신 때 온 능화에게 그 연유를 물었다. “난 그이 하는 일에 하나두 관여 안하구 살림만 해유. 식구들한텐 얼마나 자상하다구유.” 그제야 동네사람들은 자성한다. 질기둥이가 찔깃찔깃 질겨빠져 인색한 사람이란 뜻이 아니고 끈덕진 사람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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