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동양일보]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위세가 좀체 수그러들 줄 모른다. 낯선 밤길을 걸을 때처럼 불안하고 두렵다. 근거를 알 수 없는 흉흉한 뉴스들이 저벅저벅 발소리를 내며 공포심을 키우고 있다. 엊그제가 입춘(立春), 한 해를 여는 첫 번째 절기다. 입춘에서 보름이 지나면 눈이 그치고 봄비가 내린다는 ‘우수(雨水)’다.

나라 안팎이 온통 신종바이러스 소식으로 난리인데 웬 절기 타령이냐 하겠지만, 이럴 때야말로 잠시 ‘피세정념(避世靜念)’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입춘은 봄의 절기다. 날씨는 여전히 겨울이지만, 설 ‘립(立)’에 봄 ‘춘(春)’ 자를 들고 고요히 마음의 푯말을 세워보라고 봄의 문턱을 가리키는 때다. 힘들고 번잡한 일상을 떠나보내고 마음의 안정을 찾고 싶은 ‘피정(避靜)’의 시기에 한 해 농사의 시작을 알리듯 입춘이 때를 맞춰 찾아온 셈이다.

입춘은 2월이 내세울 수 있는 으뜸가는 매력 포인트다. 다른 달에 2~3일 꼬리를 떼어준 가장 짧은 달이지만 주눅 들지 않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입춘(立春)’과 ‘우수(雨水)’라는 봄의 상징을 한 몸에 품고 있어서다. 다른 달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데 전혀 손색없는 자격조건을 갖췄다.

입춘이 한 해를 시작하는 첫 절기로서 위대한 생명의 봄을 알리는 첨병(尖兵)이라면, 우수(雨水)는 대지를 촉촉이 적셔줌으로써 새봄 맞이 준비가 완료됐음을 알리는 전령(傳令) 역할을 한다. 입춘 일에서 정월 대보름을 건너 우수까지를 통틀어 입춘 기간으로 보는 게 맞다.

입춘 세시풍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요즘이지만 ‘입춘’ 소리만으로도 푸근해지는 봄의 정서만큼은 오래도록 간직했으면 싶다. 봄이 오고 새싹이 움트는 경이로움을 입춘 말고 누가 알려줄 것인가. 새싹도 다 같지가 않다. 씨앗의 상태로 남아 있다가 해마다 싹을 틔우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긴 겨울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뿌리의 삶을 이어가는 부류도 있다. 우리가 묵상해야 할 주제도 바로 그런 것이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들여다보면 알 수 있는 새싹 같은 것이다. 아주 작은 풀꽃에서도 평생을 깨닫지 못했던 신비가 배어있음을 알 수 있다.

동토(凍土)를 헤집고 올라온 여린 새싹이 처음으로 하는 일이 무엇일까.

잎을 내미는 일이다. 왜, 관계를 맺기 위해서다. 생존에 필요한 영양소를 얻고 생장에 필요한 것들을 주고받으며 사랑의 관계를 맺기 위해서다. 햇빛을 향해 이유식을 받아먹듯 잎을 벌리고, 봄비에 젖으며, 바람을 맞으며 바깥세상의 이야기를 뿌리에 알려주는 아름다운 교감을 시작하게 된다.

이번 중국 우한 교민들의 귀국에 따른 격리수용을 받아들이며 아산시민과 진천군민들이 그들에게 보여 준 따뜻한 배려가 봄을 닮았다.

진천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에서 생활하고 있는 우한 교민들이 고마운 마음을 담아 방문 앞에 손편지를 써 붙였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새싹의 모습을 닮았다.

동의보감 내경 편에서 “봄에는 몸을 편하게 하고 마음을 생동하게 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중국 '예기(禮記)‘의 주석서 일종인 ‘예기집설대전’에서도 “봄에는 갓 태어난 새가 날기 연습하는 것을 보고 잡아선 안 되고, 백성들을 불러 모아 부역을 시켜서도 안 된다”고 했다. 예치(禮致)를 강조한 대목이다.

혹독한 계절을 견디고 봄을 맞았으니 어질고 부드러운 태도로 다른 사람을 대하라는 훈계다. 음양오행에서도 봄이 의미하는 것은 약한 사람들을 보살피는 어진 마음이다.



정연복 시인의 ‘입춘(立春)의 기도’가 잘 풀이해 주고 있다.

“겨울의 꼬리가/아직 많이 남아 있는데도//입춘의 햇살에서/봄기운이 물씬 느껴집니다.//겨울 너머 봄이 아니라/겨울 속에 이미 봄이 있음을//슬픔 건너 기쁨이 아니라/슬픔 속에 기쁨이 함께 있음을//세상 살아가는 날들 동안/늘 잊지 않게 하소서.”



“겨울 속에 봄이 있고 슬픔 속에 기쁨이 함께 있다는” 구절을 한글판 입춘방(立春榜)으로 써도 무방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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