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동양일보]늦은 밤 채널을 돌리다가 요즘 ‘뜬다’는 한 노래프로그램을 보았다.

대단한 열정으로 안방을 후꾼 달군 후보들이 마지막 결선 준비를 하는 막간의 시간에 소리꾼 장사익이 마이크를 잡았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히어 꽃구경 가요/ 세상이 온통 꽃핀 봄날/ 어머니는 좋아라고/ 아들 등에 업혔네”

김형영 시인의 시 ‘따뜻한 봄날’에 곡을 붙인 노래, ‘꽃구경’이었다.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고/ 산자락에 휘감겨/ 숲길이 짙어지자/ 아이구머니나/ 어머니는 그만 말을 잃었네” 장사익 특유의 감성이 밴 노래는 떨리는 음색과 정확한 가사 전달로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노래가락은 구성지게 이어졌다. 어머니는 봄구경 꽃구경에 아랑곳없이 눈감아 버리더니 한 움큼 한 움큼 솔잎을 따서 가는 길바닥에 뿌리며 간다.

“어머니 지금 뭐 하시나요/ 꽃구경은 안 하시고 뭐 하시나요/ 솔잎을 뿌려서 뭐 하시나요”

그러자 앵글에 잡힌 방청석의 관객들이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너 혼자 돌아갈 길 걱정이구나/ 산 길 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방청객 중에는 아예 손수건에 얼굴을 묻고 우는 사람도 보였다. 자신이 버려지는 것을 알면서도, 자식의 안전부터 걱정하는 어머니의 무한 사랑이 그 밤 TV 앞에 앉은 모두를 절절하게 했다.

우리는 이런 유형의 비슷한 스토리를 많이 들어왔다. 고려 시대에 늙고 병든 사람을 지게에 지고 산에 가서 버렸다는 풍속으로 세간에 알려져 있는 ‘고려장’ 이야기다.

그러나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우리나라의 별칭이나, 예와 효를 으뜸으로 가르쳐온 조상들의 가르침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고려장(高麗葬)’은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삼국시대 이후로 조선시대까지 나온 한국의 역사책, 지리서, 수많은 문집들 어디에서도 노인을 산 채로 산에 버리는 고려장 얘기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기록은 불전설화의 영향을 받은 ‘잡보장경(雜寶藏經)’ 기로국조(棄老國條)의 설화와 유사하며, 중국 ‘효자전’의 내용과 비슷하다.

‘효자전’에는 원곡 이야기가 있다. 원곡의 아버지가 늙은 할아버지를 수레에 실어 버리려하자, 원곡이 아버지를 버릴 수레로 쓰겠다며 수레를 가지고 오길 고집하자 아버지가 크게 뉘우치고 할아버지를 잘 봉양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종류의 설화는 일본에도 있었고, 중동이나 유럽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아마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된 유형이 아닌가 싶다.

역사학자들은 고려장이 우리 풍속으로 고착된 것은 일제의 창작이라고 말한다. ‘고려사’에도 ‘조선왕조실록’에도 나와 있지 않은 고려장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일제강점기인 1919년 미와 타마키가 발간한 <전설의 조선>과 1924년 조선총독부가 발간한 <조선동화집>. 동화 속에 나오는 ‘불효식자(不孝息子)’이야기는 중국의 효자전과 비슷하다.

“늙은 제 아비를 지게에다 지고 산 속에 버리려는 어떤 사내가 산에서 내려오던 길에 아들보고 그 지게가 필요 없으니 버리라고 하자, 그 아들이 하는 말이 나중에 아버지도 늙으면 필요할 텐데 또 써야 하니까 버리지 못한다고 하매 곧 크게 뉘우치고 버린 제 아비를 다시 모셔왔다”는 얘기다.

엊그제 딸에 의해 어머니가 버려진 기사가 나왔다. 대구의 한 지구대에서 일어난 사건이다. 1월30일 새벽 1시 30분께 50대 여성이 80대 어머니와 함께 경찰 지구대를 방문한 뒤 “바람 좀 쐬고 오겠다”며 어머니만 남겨두고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경찰은 딸의집 주소로 찾아갔지만 끝내 만나지 못해 어머니를 노인보호전문기관으로 인계했다.

평생 칼바람 속에 장사를 하며 자식을 키웠다는 이 어머니는 치매증상을 보였지만, “자식들이 나에게 잘 한다”며 처벌을 원치 않아 처벌도 할 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버려진 것을 알면서도 자신에 대한 걱정보다 자식 염려가 앞서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다.

그럼에도 자식들은 그 깊은 속내를 이해하지 못하고, 조금만 이상한 행동을 하면, “어머니 지금 뭐 하시나요?”라며 짜증을 낸다. 나도 그런 것 같다. 가슴이 아프다. <상임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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