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상 청주시 상당구 산업교통과 주무관

서두상 청주시 상당구 산업교통과 주무관

[동양일보]‘칼의 노래’를 읽고 김훈 작가의 팬이 됐다. 그 후 ‘현의 노래’, ‘남한산성’ 등의 소설들과 ‘밥벌이의 지겨움’, ‘자전거 여행’ 등 여러 산문집을 읽었다. 작가의 책 제목처럼 밥벌이의 지겨움에 빠져 한동안 책을 멀리하고 있을 즈음에 그의 신작이 나온 것을 우연히 알게 됐다.

‘연필로 쓰기’. 그의 문장만큼이나 단순하면서 명료하다. 그래서 더 울림이 크게 왔다. 연필로 꾹꾹 놀러 썼을 그의 문장들을 다시 접하고픈 마음에 책을 펼쳤다. 올해로 일흔하나가 된 작가의 시선으로 써 내려갈 일상의 크고 작은 이야기들이 연필심 끝에서 시작되고 있다.

이 책에서 작가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찍는 듯한 느낌의 문체를 자랑한다. 책 서론에서 똥에 대한 작가의 고찰과 추억, 삶의 고단함에 대해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특히 책에서 분묘 냄새가 나는 착각에 빠진 것처럼 책 읽는 공간이 1960년대 서울 판잣집의 향기로 가득했다. 똥에 대한 글을 읽으면서 이렇게까지 더럽지 않은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실은 똥에 대한 글도 쉽게 볼 수 없긴 하다. 더럽기는커녕 그 향기가 오히려 고소하고 심지어 가슴이 조금 저리기까지 했다.

이 외에도 산문집답게 세월호, 남북정상회담, 태극기 부대 등 최근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현안들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그다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야기들이 많다. 국민 소득 80달러 시절에 태어나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몸으로 겪고 느끼고 부딪히며 살아온 일흔이 넘은 작가의 글들은 포용과 관용 등 나에게 부족한 관념들을 가르치고 있다.

게다가 간간이 경북 칠곡, 전남 순천 등의 여든 언저리의 산골마을 할머니들이 배운 한글로 쓴 시들도 소개한다. 그 시들은 무거울 수 있는 주제 사이에서 마치 한여름의 정자나무 그늘 쉼터처럼 낭송된다.

나는 특히 평양냉면을 소개하는 글이 인상적이었다. 처음 똥에 대한 글에서 인간은 먹어서 소화시키고 똥을 싸고 또 그 똥을 치우고, 똥을 싸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똥을 싸는 행위들에 냉면이라는 함경도․평안도 사람들의 주식 같은 음식이 방점 역할을 한다.

게다가 백석 시(詩) 전집의 그 국수가 냉면이었다는 사실은 나도 미처 몰랐다. 작가는 결국 책에서 인간의 근원적인 행위들이 어떠한 이념, 사상보다 순수하고 사랑스럽다고 말하고 있다.

세월호, 태극기 부대, 남북정상회담, 남북철도 등 현재 한국 현대사에서 진행 중인 사건들도 작가는 다양한 시선으로 다룬다. 이 사건들의 공통점은 정답과 해답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인내하고 감당하고 두 눈으로 지켜보며 바른길로 가게 만들어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는 듯하다.

사실 실천적이지 못하고 글과 말로써 현안들에 대해 말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 사건의 중심에서 행동하는 활동가들이 보기에 그들은 그저 방관자로 보일 수도 있다. 솔직히 책을 보며 그런 느낌을 적지 않게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국민 소득이 80달러였던 시절을 견뎌온 그들이기에 감내하고 포용하는 마음이 지금 필요하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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