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두호 영동 새너울중학교 교사

곽두호 영동 새너울중학교 교사

[동양일보]유엔에서 해마다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에서 언제나 최 상위권을 차지하는 덴마크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교육, 주거, 의료, 노후를 사회가 책임짐으로써 개인이 불행해지기 어려운, ‘불행하지 않은 나라’다.

‘행복하다’와 ‘불행하지 않다’는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다소 어렵지만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조금 쉬울 수 있다. 그 대답으로 나는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것들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덴마크를 참고하여 학교에서 없앴으면 하는 것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교장실의 명패를 없애 보자. 신발장의 신발 두는 순서를 교장, 교감, 행정실장 순으로 하지 말고 가나다순으로 해 보자. 역대 교장 사진 대신 역대 졸업생 사진을 벽에 걸어 보자. 학교 안의 권위주의가 조금은 줄어들 것이고, 교사와 학생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신체에 대한 규제를 없애보자. 머리 모양과 색깔, 장신구, 화장한 얼굴을 지적하고 실랑이하는 시간이 다양한 개성과 취향을 이야기하고, 외모 사대주의와 외모 지상주의에 대해 토론하는 시간으로 바뀔 것이다.

교복을 없애 보자. 교복의 유일한 장점은 빈부격차에 상처받는 학생들의 예민함을 어느 정도 가릴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빈부격차는 옷으로만 드러나는 것이 아니다.

종소리를 없애 보자. 종소리 없이도 수업을 준비하는 모습, 수업이 끝났을 시간에도 열띤 토론이 이어지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교과서를 없애 보자. 컴퓨터를 이용해서 교육과정의 성취 기준에 따라 수업을 진행해 보자. 꼭 교과서가 있어야만 수업이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교과서가 없기 때문에 더 창의적이고 다양한 수업이 가능할 것이다.

상장과 석차를 없애 보자. 상장은 칭찬받지 못하는 학생들의 자존감을 떨어뜨린다. 석차도 입에 올리지 말자. 우리도 전과목 석차는 진작부터 나오지 않는데 억지로 등수를 매겨서 꼬리표라는 걸 만들어서 나눠주는 것을 보면 잘못됐다고 한마디씩 하자.

학년 구분을 없애보자. 수준이 엄격한 과목이 아니라면 학년 구분 없이 섞여서 공부할 수 있는 과목들이 많다. 선배 후배의 위계질서가 아니라 형제자매처럼 서로 돕고 어울리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곧 고교학점제가 전면화 된다.

학교 곳곳의 감시 카메라를 없애보자. 감시 카메라의 자리에 관심과 신뢰를 놓아보자. 감시 카메라는 사후 적발용이지 사전 예방용이 아니다.

‘기승전-담임’의 고정관념을 없애보자. 담임선생님은 슈퍼맨이 아니다. 구성원 모두가 고민하고 같이 책임지는 문화를 만들어보자.

지식 교과만 중요하다는 고정관념을 없애보자. 영어·수학을 잘 하면 행복해질 수도 있겠지만, 청소와 요리를 할 줄 모르면 불행해진다. 목공예, 집수리, 페인트칠, 정원 관리, 바느질 등 생활 기술을 교과보다 하위 영역으로 취급하지 말자.

물론 이상적인 이야기일 수 있다. 읽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하는 사람이 많으리라 짐작도 된다. 하지만 공인된 ‘행복한 나라’에서는 예로 든 모든 것들이 상식이다. 아이들이 달라지게 하려면 우선 어른들부터 달라지자. 나부터 달라지자. 선생님이 달라지지 않고서 학생들만 달라지기를 바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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