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영화 같은 기적이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아카데미 작품상까지 거머쥐며 4관왕을 휩쓰는 순간 대한국민의 긍지가 ‘아~ 이런 것이구나’를 느끼게 했다.

세계 영화 산업의 본산인 할리우드에서 한국 문화의 저력을 전 세계에 과시해 위대한 코리아를 재탄생시킨 봉 감독과 작가, 출연진, 제작진, 투자자 등 모두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 뜨거운 찬사를 보낸다.

기생충 열풍 덕분에 ‘짜파구리’가 들썩이고 있다. 물론 제시카송, 포스터도 기생충이 낳은 유행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짜파구리는 ‘라면’과 ‘우동’을 합친 ‘람동(Ram-dong)’으로 소개된다. 짜파게티와 너구리 라면을 섞어 끓인 짜파구리는 배우 조여정(연교 역)이 한우를 얹어 먹는 장면으로 나와 특히 해외 관객들로부터 많은 관심과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Ram-dong. 번역이 참신하다는 평을 받았고 작품 속에서 빈부격차를 드러내는 소재로 비중있게 다뤄졌다.

라면 회사가 이런 ‘기생충 특수’를 놓칠 리 없다. 농심은 짜파구리 조리법을 11개 언어로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을 만들어 홍보에 나섰다.

짜파구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으니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 대사다. 기생충이 아카데미상 4관왕에 오른 날 그는 짜파구리로 뜻밖의 관심을 끌었다.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대사관 직원들과 짜파게티와 너구리 컵라면을 비벼 만든 짜파구리를 먹으면서 봉준호를 응원한 것이다.

해리스 대사는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이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을 비롯해 외국어 영화로는 처음 작품상까지 수상하며 오스카 4관왕을 차지했다! 놀랍다!”고 말했다. 이어 “봉 감독님과 기생충 출연진 및 제작진, 대한민국 영화계에 축하를 드린다”고 덧붙였다.

사실상 해리스 미 대사는 우리에게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미태평양사령관 출신인 해리스 대사는 한국에 부임한 후 통일·외교·안보정책에 대해 사사건건 시비를 걸어 한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2018년 7월 부임한 해리스 대사는 해군이었던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란 일본계 미국인이다. 이런 태생적 바탕에 그의 콧수염은 논란을 더욱 부추겼다. 외견상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총독들을 연상시킨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언행은 불을 질렀다. 오죽하면 시민단체들이 해리스 대사가 내정간섭·총독 행세를 한다며 규탄시위를 벌이고 콧수염 뽑기 퍼포먼스를 진행했겠나.

해리스 대사는 20세기 일제에 저항한 한국의 독립운동가들중에서도 콧수염을 길렀던 사람들이 있었다며 억울함을 토로했지만 한국민의 돌아선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했다.

해리스 대사의 외교관답지 않은 행동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지난해 말 국회정보위원장인 이혜훈 당시 바른미래당 의원에게 방위비 분담금을 50억 달러로 증액해야 한다고 수십차례 압박성 발언을 해 논란을 일으켰다.

또 미국이 주도하는 중동 호르무즈해협에 한국군의 파병을 공개 요청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신년사에서 밝힌 ‘금강산 개별관광’에 대해서는 미국과 협의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지난해 한·일이 첨예하게 맞섰던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에 반대하는가 하면 외신 간담회에서 “향후 제재를 촉발할 수 있는 오해를 피하려면 (남북협력 문제를) 한미 워킹그룹을 통해서 다루는 것이 낫다”고 말해 주권 침해· 내정간섭이라는 반발을 샀다.

민중당 김종훈(울산 동구) 국회의원은 ‘페르소나 논 그라타’(persona non grata·외교적 기피인물) 지정을 요구했을 정도다. 페르소나 논 그라타는 외교관계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9조에 따라 주재국이 특정 대사 등 외교사절을 추방할 때 이를 선언할 수 있다.

어찌됐든 ‘페르소나 논 그라타’란 말 자체가 언급된 것은 불행이다. 특히 한국과 미국은 혈맹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이런 말이 나왔다는 게 수치가 아닐 수 없다.

짜파구리를 먹으며 기생충 수상을 응원한 해리스. 기생충이 매개가 돼 그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다소나마 씻겨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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