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구선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

박구선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

[동양일보]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에 이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까지 휩쓸었다.

봉 감독은 소감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문구를 인용했는데, 우리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문구가 있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가 바로 그것이다. 바이오헬스 산업과는 무관해 보이는 말로 이 글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세계 제약시장에서 명백한 후발주자로 여겨진다. ‘규모의 경제(Economies of Scale)’의 높은 벽과 실패에도 끄떡없는 거대한 투자와 장시간을 버틸 수 있는 글로벌 제약사 중에는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기업들이 포진해 있다. 로슈(Roche) 등 100년 이상은 물론 머크(Merck)는 350년이 넘는다. 미국 애브비사(AbbVie社)가 개발한 단일 품목 휴미라(류머티즘 치료제)의 매출은 22조원에 달한다. 우리나라 제약산업 전체 규모가 20조원인데 말이다. 서비스 플랫폼은 취약하고, 의약품의 개발에 있어 자본과 기술이 부족한 건 사실이지만 짧은 역사 탓에 당연한 것이라 체념하는 것은 잘못된 결정이다. 우리 과학·의학의 역량과 수준은 세계 어느 누구, 어느 나라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확실한 이유는 물론이고 우리나라의 제약산업의 역사 또한 무시될 만큼 짧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대에는 피부염증의 일종으로 취급되는 ‘종기’는 아마 누구나 알고 있는 질환일 터이다. 종기는 손대기 어렵거나 남에게 보여주기 민망한 곳에 주로 생기는데 그런 이유 때문인지 과거에는 병원에 가기보다 스스로 치료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젊은이들은 모르겠지만, 이러한 고충을 해결해주는 특효약으로 유명했던 것이 ‘이명래고약(膏藥)’이다. ‘이명래고약’은 지금으로부터 무려 110여 년 전에 등장했다. 여기서 비롯된 대한민국 제약의 역사는 곧 대한민국 최고령 기업으로 이어져 뿌리내린다. 궁중비방이었던 ‘활명수’를 소화제의 대명사로 대중화 시킨 동화약품(1897년 설립) 이야기다. 기록상으로는 1896년 설립된 두산이 있지만, 이름이 바뀌거나 공백없이 존속한 기업으로 진정한 의미의 최고령기업은 동화약품이다. ‘이명래고약’이 프랑스 선교사에게서 전수받은 제조법에 아이디어를 더해 완성한 약이라면, ‘활명수(活命水)’는 생명을 살리는 물이란 뜻을 담은 최초의 양약이자 신약이었다. ‘이명래고약’과 ‘활명수’의 사례만 보아도 우리나라 제약산업의 역사는 100년을 훌쩍 넘겨 서민의 삶과 함께 해 오고 있다.

결코 짧지 않은 역사와 함께 우리가 가진 기회요인도 크다. 병원 전자의무기록(EMR; Electronic Medical Record) 보급률(92%) 세계 1위의 대규모 의료데이터가 축적돼 있고, 80년대부터 배출된 우수한 인력들이 성과를 낼 시점에 도달해 있을뿐더러 IT 환경, 의료 한류 등 양호한 여건도 갖추고 있다.

바로 여기에 봉준호 감독의 말로 이 글을 시작한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를 작은 우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이제 당당히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성취이기 때문이다. 멀고 어렵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은 준비한 자에게는 성공으로 이어지는 기회일 뿐이다. 우리나라는 산 속의 조그마한 샘물일지는 몰라도 작은 우물이 아니라 대양으로 이어질 발원이 될 수 있다. 우리 바이오헬스산업은 준비되었다. 다만 빠른 시일 내에 여건과 역량을 결집시켜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어야 한다. 지난해 5월 발표된 ‘바이오헬스산업 혁신전략’은 이러한 추진의지를 담고 있다. 대통령의 발표가 바로 이곳 충북 오송에서 이뤄진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생명과 태양의 땅, 충북. 현수막에 나부끼는 의미 없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말이야말로 내일을 위한 키워드이자 미래시대를 보여주는 대표 화두이다. 생명은 바이오를 필두로 하는 생명산업을, 태양은 수소경제와 청정에너지를 의미한다. 충북에서도 오송바이오밸리는 국토의 중심으로 교통의 중심이고 첨단의료복합단지와 제1, 2생명과학단지를 함께 가진 바이오의 중심이다. 우리나라 바이오헬스산업이 준비된 것과 마찬가지로 충북은 준비된 혁신의 중심이다. 다만 산업을 궤도에 올릴 수 있는 기반이 확충되어야 할 필요만이 남았다. 차세대 방사광가속기의 유치와 바이오산업 중심의 제3산업단지의 조성은 이를 완결시켜 줄 마지막 퍼즐이다. 생명산업에서 분석의 중요 장비이자 의료산업화의 핵심장비인 방사광가속기를 도입해 바이오헬스 근간의 대형기업들이 오송의 바이오산업단지에 몰려들도록 하여 새로운 도약이 일어나야 한다. 이를 통해 충북경제 4% 실현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의 내일을 먹여 살리는 충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모두가 힘을 보태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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