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동양일보]문득 수년전에 본 영상 한 장면이 떠오른다.

한 남자가 화장실에서 나와 주방으로 통하는 문을 열려고 하자 문이 열리지 않는 장면이었다. 문이 열리지 않자 남자는 깜박 잊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화장실로 돌아가 세면대에서 손을 닦고 돌아와 손잡이를 돌렸다. 그러자 문이 열리고 남자는 비로소 주방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느 나라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외국의 프로를 소개했던 그 영상은 손씻기에 대한 강박증을 갖게 했다. 레스토랑 주인은 손을 잘 씻지 않는 주방 조리사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습기가 없는 손으로 손잡이를 만지면 문이 열리지 않도록 센서를 달아놓았다고 했다.

강제적이긴 하지만 오래 지속하면 손을 씻는 습관이 몸에 밸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마다 습관이 각각 다르겠지만, 나는 글을 쓸 때 손을 자주 씻는 버릇이 있다. 글이 이어지지 않을 때,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마음이 초조해질 때면 자리에서 일어나 수도에 가서 손을 닦는다. 비누를 박박 칠하고 거품을 내 문지르다가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면 엉킨 마음의 실타래를 녹여내듯 답답했던 마음이 차분해진다. 그래서 호흡이 긴 글을 쓸 때면 몇 번 씩 화장실을 들락거리게 된다.

신종코로나 19의 여파로 그 어느때보다 ‘손씻기’가 강조되고 있는 요즈음 한 방송사의 실험도 눈에 띈다. ‘글로점’이라는 인조 세균을 이용해 얼마나 빠르게 사람들의 손을 통해 균이 옮겨다니는지를 눈으로 보여준 실험이다.

실험자가 손에 인조세균을 바른 뒤 형광램프로 비추자 하얗게 세균이 드러났다. 실험자는 그 손으로 다른 사람과 악수를 한다. 그러자 손에 묻은 바이러스들이 그대로 옮겨갔다. 실험자는 10분 동안 평소처럼 일상생활을 한다. 곧 그가 사용한 휴대전화, 이어폰, 물컵과 컴퓨터자판, 마우스, 화장실 손잡이 등에 하얗게 균 입자가 옮겨 붙었다. 실험자의 눈가와 입가에도 하얀 입자가 보였다. 실험자가 마스크를 썼다가 벗으니, 마스크의 겉면에도 하얀 입자가 덕지덕지 붙었고 특히 마스크에 손이 닿았던 귀걸이 쪽과 코의 와이어 부분에 가장 많은 인조세균이 붙었다.

끔찍했다. 저렇게 세균이 옮겨간다면, 서로서로 옮긴다면, 스쳐가는 모든 물건에 바이러스가 묻는다는 얘기가 아닌가. 감염을 막기 위해서 쓰는 마스크도 쓰고 벗기 전에 손을 먼저 씻어야 한다는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인조세균은 손을 씻을 때도 물만으론 다 사라지지 않았다. 비누를 쓰지 않고 물로만 헹구자 손바닥에 흰 입자가 남아있었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비누로 30초 이상 꼼꼼히 씻어야 손에 묻어있던 세균이 깨끗이 씻겨나간다고 했다.

구한말 우리나라를 찾은 올리버 에비슨 선교사의 ‘손씻기’ 운동은 지금 들어도 감동적이다. 에비슨 선교사는 의료선교사였다. 그는 청일 전쟁 후 콜레라가 창궐하자 위생교육과 치료에 최선을 다 했다. 콜레라가 ‘쥐귀신’ 때문이라며 대문에 고양이 그림을 걸어놓는 백성들에게 물을 끓여 먹게 하고 식사 전 반드시 손과 입안을 깨끗이 씻게 하며 청결한 생활습관이 콜레라를 막는 지름길임을 알렸다. 그리고 소금물을 주사기로 투입해 환자들의 탈수를 막는 등 치료에 사활을 걸어 콜레라는 7주 만에 그 기세가 꺾였다. 그는 석유왕 루이스 H 세브란스 장로에게 거액을 후원받아 제중원을 증축했고, 제중원은 오늘의 세브란스병원의 기틀이 되었다.

잦아드는 듯 하던 신종코로나19가 다시 확산되면서, 온국민이 불안에 떨고 있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손을 씻는 것과, 마스크 쓰는 일, 기침을 소매로 막는 일 정도 밖엔 없다. 그 중에도 손 씻기야말로 가장 간단하면서 가장 확실한 예방법이다. 손이야말로 병원균의 매개체이자 숙주이기 때문이다. 30초만 ‘손씻기’에 투자하면 두려운 전염병의 70%를 막을 수 있다.

요즘 어린 아이들이 부르는 ‘손씻기 송’을 들으면서 물만 보이면 손을 씻어보자.

“보글보글 비누 거품/ 구석구석 문질러요/ 오른손 왼손 손목까지/ 사이사이 사이사이로/ 손바닥 손바닥/ 마주 대고 문질러요/ 손등에 손바닥 대고/ 사이사이 사이사이로/ 손가락 손가락/ 깍지 끼고 문질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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