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 충북자연과학교육원 교육연구사

이선영 충북자연과학교육원 교육연구사

[동양일보]네덜란드의 아고라(agora school)는 배우는 방법에 초점을 맞춘 교육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아고라에는 학년이나 학급뿐 아니라 특정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도 없다. 학생들은 프로젝트 주제와 기한, 필요한 도움과 조언, 기대하는 산출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스스로 세운다.

그리고 교사는 필요한 정보는 직접 전달하는 대신 학습에 필요한 자원을 제공한다. 아고라에서의 학생들은 프로젝트를 통해 필요한 정보를 선별하고 학습하는 방법을 배운다.

20시간의 짧은 시간이지만, Agora를 닮은 학교 밖 메이커 학교가 이번 방학 우리 교육원에서 문을 열었다. 계획서 심사와 심층 면접 등 까다로운 선발 과정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모집 정원의 3배가 넘는 아이들이 신청서를 제출했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시간’이라는 프로젝트 과제에 따라 각자 탐구하고 싶은 주제와 연구 내용에 맞는 계획서와 설계도, 때로는 재료를 직접 준비해오기도 했다.

참여 학생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이지만 나이로 그룹을 묶지 않았다. 대신 우드락부터 아크릴보드, 3D펜부터 레이저커팅기까지 문제 해결을 위해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제작 환경을 지원하고자 했다.

고속도로 2차 사고 방지를 위해 수납이 쉬운 팝업 LED 안전봉을 완성한 종현이의 첫 수업 재료는 뚜껑을 열면 튀어 오르는 뱀 장난감이었다.

각도가 조절되는 목발을 만들고자 했던 은우는 목재뿐 아니라 아크릴까지 다룰 수 있는 메이커가 돼 있었다.

물론 숟가락이 달린 약통을 만들겠다던 제원이는 3D 프린터 모델링에 빠져 설계 과정에서 프로젝트가 멈추기도 했다.

배움의 주제가 학생으로부터 시작되다 보니 교사들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배움의 여정을 돕는 조력자가 될 수밖에 없다. 대신 아이들의 아이디어를 더 꼼꼼히 살피고 각각의 과정을 지원하기 위한 노력은 배가 됐다.

메이커 학교가 끝난 후 아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선생님들의 피드백에 대한 감사와 프로젝트 과정에서 느낀 작은 성취에 대한 높은 만족감이었다.

망치고 실패해봐야 그 쓸모를 찾을 수 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메이커학교는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하게 실패할 수 있는, 언제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공간으로 기억되고 싶었다.

어제의 학교가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최대한 많은 내용을 평등하게 가르치는 Input 기능에 최적화돼있었다면, 내일의 학교는 아이들이 최적의 Output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함께 질문하고, 실험하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배움의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학교가 아니기에 할 수 있는 학교 밖 학교였지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들은 아이들이 기존의 학교에서 배웠던 지식들을 유의미한 자신의 경험으로 연결하고 이를 바탕으로 가치를 발전시켜나가는 즐거운 과정이었으리라 믿는다.

아고라(Agora)의 어원은 ‘모이다’라는 그리스 동사로 광장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양한 생각을 모아 문제의 답을 찾아가는 곳, 실패의 경험이 모여 새로운 프로토타입을 지속적으로 만들어 내는 공간, 공유와 협업을 위해 아이들이 모여드는 광장, 바로 이곳이 3월의 학교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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