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동양일보]제행무상이다. 그래도 선인들은 영생의 확률이 높은 길로 갔다. 즉 삼불후다(三不朽)다. 입언(立言) 입공(立功) 입덕(立德) 등 썩어 없어지지 않는 세 가지에 몰두했다. 명언을 남기는 것, 공을 세우는 것, 덕을 쌓는 것이다. 고산구곡에 율곡 이이가 영생하고, 화양구곡에 우암 송시열이 불사한다. ‘구곡문화관광특구’에 괴산과 충북의 경제와 미래가 있고, 군자구곡(君子九曲)에 수동선사(首峒仙士)의 미래가 있다. 구곡은 동아시아 최고의 문화외교 매체이다. 이번에는 ‘구곡특구’내에 존재하는 귀중한 그림들을 살펴보자. 창의융합을 논하자면 우리나라에서는 단연 율곡 이이와도 교유한 이문건(李文楗1494~1567)이다. 앞서 제시했듯이 이문건은 7가지 창의융합적 작품을 완성했다. 성주이씨족보인 “농서공족보(隴西公族譜)”에는 이문건이 1547년에 그린 농서공 이장경(李長庚)과 문열공 이조년(李兆年)의 초상화 등 4명의 초상화가 남아있다. 이 초상화는 뜻을 그리고 정신을 전한다는 ‘사의전신(寫意傳神)’의 기법으로 그린 현존 최초의 초상화다. 이 초상화는 그린 연대가 확실한 초상화이자, 우리나라 현존 최초의 초상화다. 전신(全身)을 그린 초상화가 아니라 얼굴을 중심으로 그린 초상화로, 윤두서(尹斗緖)가 1710년 그린 자화상보다 앞섰다. 2013년, 경북 성주에 있던 이문건의 묘소는 아들 온(熅)과 “양아록(養兒錄)”의 주인공인 손자 이수봉의 묘소가 있는 충북 괴산군 문광면 대명리 둑시로 이장했다. 후손들이 문광면 유평리에 세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쌍계구곡 떡바위에 복주머니 즉 오늘날 농협(農協)의 상징 휘장(徽章을 그린 암각화가 남아있다. 천혜의 자연산물을 주머니 가득 담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제사를 지내며 기도하던 성지이다. 고인돌로 보이는 암반에는 북두칠성 (北斗七星) 형태로 성혈(性穴)을 파놓았다. 현재 2개는 정운호청덕불망비(鄭雲鎬淸德不忘碑)를 건립하기 위해 바위표면을 평평하게 다듬기 위해 갈아내어 없어지고 5개만 남아있다. 칠성신을 숭배하던 부족이 풍요와 무병장수를 기원했던 곳이다. 필자가 2002년 여름에 발견하고 2004년 4월 11일 일요일 충북문화유산답사회 한수현(韓秀玹)회원과 동행 탁본하여 재확인했다. 2004년 “쌍곡구곡과 관련 시 문에 대한 고찰”과 2019년 “구곡문화관광특구와 구곡한시 연구”에 소개했다. 이렇듯 ‘성혈(性穴)을 새긴 고인돌’과 ‘복주머니를 새긴 선돌’이 한 곳에 조성된 사례는 매우 드물다. 칠성면 도정리에 성혈을 많이 파놓은 고인돌이 7개 이상 남아 있다. 칠성이라는 지명이 여기서 유래했다.

셋째, 선유구곡 제 5곡 연단로 암반에 사람의 얼굴을 새겼다. 선유구곡이라는 명칭에 부합시켜 ‘암각신선도(巖刻神仙圖)’라 미화하여 소개했다.

넷째, 봉황정구곡(낙우당구곡)의 설정자 신득홍(申得洪)의 할아버지 신중엄(申仲淹1522∼1604)의 “경수연도(慶壽宴圖)”가 있다. 신중엄의 아들 신식(申湜 1551∼1623)과 신용(申湧1561∼?)은 1601년 아버지가 80세 되던 해부터 1604년까지 4년 동안에 아버지의 장수를 축하하기 위해 당시 서울의 고위 관리, 명문장가, 명필들을 초청해 6회의 경수연을 열었다. 이는 개인이 열은 경수연으로는 최다이다. 허목(許穆1595∼1682)에게 수학(修學)한 신용의 고손자(高孫子) 신택이 경수연 그림 4폭과 20명의 친필 시와 문(文)을 배접(褙接)하여 '경수연도'라는 첩을 만들었다. 신용호와 신범식이 “역주 명가보묵(譯註 名家寶墨)”에 원본을 실었으며, 필자가 “경수도첩에 실린 신중엄의 경수연도에 대한 고찰”에서 그 회화사적 가치에 대해 논했다. 신중엄의 경수연도는 현존 유일의 원본(原本) 경수연도이다.

‘신중엄의 경수연도’ 2~4폭에 신선처럼 살다 간 신중엄과 그의 집이 신선의 정원이라는 점을 사의전신적 화풍(畵風)으로 그렸다. 따라서 ‘신중엄의 경수연도’는 신선처럼 장수한 신중엄의 삶과 그 가문의 번창함을 사의전신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라 회화평론을 할 수 있다.

이렇듯 ‘구곡특구’에는 귀중한 유교문화관광자원이 다양하다. 등잔 밑이 어둡다. 보물은 천만리 먼 곳에 있는 것만이 아니다. 외국여행도 다니고 타국의 문화작품도 감상하다가 자기고장의 문화재를 돌아보는 것도 주민의 도리다. 문화의 세기에 문화창의선구자가 되기는 쉽지 않더라도 선구적 향유자는 될 수 있다. 나향욱이 한 말을 역전시켜 일등 문화국민이 돼야 한다. 다음은 화양구곡도 속으로 들어가 옥녀가 되어 적송자를 만나보자.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