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동양일보]3월이 시작됐지만, 거리 분위기는 썰렁하고 뒤숭숭하다. 코로나 19가 일상생활의 불편함을 넘어 정상적인 생활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왔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감정은 공포이며, 가장 강력한 공포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다.”

미 소설가 H.P 러브크래프트의 말이다.

공포는 무지에서 온다. 유엔사무총장은 “지금 최대의 적은 바이러스 자체가 아니라 두려움과 루머와 편견”이라고 했다.

확진자가 거쳐 간 동선이 발표되자마자 상점은 문을 닫고, 사람들은 혐오의 시선을 보내고, 유령의 도시처럼 변해가는 세태가 우려스럽다. 공포는 또 다른 공포를 몰고 온다. 실시간으로 과잉 생산되는 코로나 뉴스가 실제보다 더 심각한 공포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코로나 19는 세계보건기구에서 현재 ‘매우 위험’ 단계로 올릴 만큼 두려운 질병인 것은 사실이지만, ‘사스’도 있었고 ‘메르스’도 겪었다. 지난 2009년 신종플루 때만 해도 당시 76만 명이 감염됐고 260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이제 신종플루는 걸리면 가볍게 앓고 지나가는 계절 독감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한 성형외과 의사가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는 일부 언론들을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표현을 똑바로 합시다. (우리나라만) 확진자가 빠르게 늘어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환자를 빠르게 찾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실상을 알면 두려움을 떨칠 수 있다.

초반에 잘 관리하던 코로나바이러스가 ‘신천지 집단감염’이라는 돌발변수를 만났다. 역학조사 과정에서도 시행착오를 겪었다. 폐쇄적이고 비협조적인 그들의 태도와 정부의 미흡한 대처가 맞물려 전파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이게 요소다. 그게 전부다. 현재 5000명이 훌쩍 넘는 확진자가 발생했고 당분간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이제 코로나 19의 특성도 파악됐고 비상 대책도 웬만큼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제는 지역사회가 더 탄력을 잃고 어려움에 부닥치기 전에 일상으로 복귀할 준비를 해야 할 시점이다. 치료법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손쉽고 믿을만한 예방법은 있지 않은가.

’손 씻기’와 ‘마스크’다. 이번 주 보건당국에서 발표한 ‘사회적 거리’ 두기까지 어떻게든 빠른

시일 안에 변곡점을 만들어 내야 한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비말(飛沫)이 날릴 수 있는 2m쯤의 거리, 즉, 서너 발짝쯤 물러서서 서로의 접촉에 의한 감염을 막아보자는 비책이다.

될 수 있으면 자발적으로 ‘비대면’의 반 감금상태를 유지함으로써 코로나 19를 물리쳐보자는 기본적이고 확실한 안전수칙이다.

‘사회적 거리’에 대해 좀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사회적 거리’는 비말(飛沫)을 피하기 위한 배타적 물리적 간격이 아니라, 배려하고 신뢰하는 심적 안전거리여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문화 인류학자인 에드워드 홀에 의하면 ‘사회적 거리(120~360㎝)’는 사회생활을 할 때 유지하는 거리다. 언제든지 제삼자가 끼어들어도 부담스럽지 않은 공간이라는 얘기다.

서로 스쳐 지나가고, 호텔 로비 등에서 옆에 앉아 있어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을 간격을 말한다.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되 객관적 입장에서 상대를 받아들일 수 있는 허용의 거리다.

‘사회적 거리 두기’는 불편함을 함께 견디자는 것이다.

이번 ‘사회적 거리 두기’가 허망한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나만 아니면 돼”하는 이기심과 “내가 먼저야”라고 아귀처럼 달려드는 ‘마스크 대란’ 현장의 민낯을 넘어서야 한다.

사회적 거리는 혐오와 배척의 거리가 아니라 배려와 ‘이타(利他)의 거리’가 돼야 할 것이다.

감염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국의 전사들처럼 대구로 달려가는 의료인들, 어려운 임차인들을 위해 자진해서 임대료를 내려주는 건물주들, 이웃 소상공인들의 물건을 팔아주려고 애쓰는 고객들, 그들이 하나로 맞잡은 헌신의 길이가 진정한 사회적 거리다.

봄이 오고 있다. 소소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일인지 절로 알게 되는 시기다. 코로나 19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백신은 무엇일까. 멀리 있지 않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비대면의 불편함을 넘어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자리 잡는 전화위복의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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