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헌 청주시 도시재생사업과 주무관

강태헌 청주시 도시재생사업과 주무관

[동양일보]‘붉은 여왕 효과’라는 말이 있다.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서 나온 말이다.

붉은 여왕과 앨리스가 나무 아래에서 계속 달린다. 앨리스가 숨을 헐떡이며 붉은 여왕에게 묻는다. “계속 뛰는데, 왜 나무를 벗어나지 못하나요? 내가 살던 나라에서는 이렇게 달리면 벌써 멀리 갔을 텐데.”

붉은 여왕은 답한다. “여기서는 힘껏 달려도 제자리에 머물 뿐이야. 나무를 벗어나려면 지금보다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해.”

이는 곧 현대 사회에서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서 그만큼 부지런하게 움직여야 함을 비유한다. 혹은 경쟁의 중요성을 나타낼 때도 자주 인용된다.

‘척추 접어 림보 워 워, 나는 5G 시대에 느림보.’

내가 요즘 듣는 힙합 노래 ‘레인보우’의 한 구절이다. 요즘 힙합으로 성공하면 돈 많이 벌고 외제차 여러 대 굴린다는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 노래의 래퍼 뱃사공은 음악으로 월 200만원을 버는 것이 목표라 한다. 단순히 가난하기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절대 게으른 사람인 것도 아니다. 다만 돈에 욕심 부리지 않고 나무를 벗어나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을 뿐.

가끔씩 유튜브에서 ‘나는 자연인이다’ 영상을 본다.

암을 치유하기 위해, 학생운동을 하다가, 험난한 사회에 질려서, 아니면 그냥 여생을 즐기는 등 각자의 사연을 갖고 자연에서 사는 사람들, 이들은 사회와 완전히 단절된 것은 아니지만 자기만의 시간을 살아간다. 이들 역시 붉은 여왕처럼 제자리를 지키기 위해 항상 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농사를 지으시는 우리 아버지한테도 가끔은 자연인의 느낌이 난다. 자연인 수준은 아니지만 아버지 역시 본인의 시간을 살아가신다. 수확량만 어느 정도 나와 준다면 그 이상으로 크게 갈망하지 않으신다. 일흔이 넘어서도 가장이시지만 그렇다. 다만 농사의 경우는 자연이 주는 변수가 가장 커서 개인이 그 한계를 극복하기는 어려워 그런 것이리라.

필사적으로 달리고 그에 따른 보상을 받느냐, 혹은 본인의 시간을 살면서 조금은 뒤처지느냐. 보통 사람들은 둘 중 하나에 속해 있을 듯하다. 본인의 시간을 살면서도 많은 보상을 받는 것은 극히 일부의 이야기일 뿐. 각자의 장단점이 나름 명확해서, 우리는 흔히들 내가 없는 것을 가지고 있는 상대를 부러워하지만 사실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듯하다.

타인의 부족함은 흔히 잘 보이지 않는 편이니까. 다만 둘 중 하나를 원하는 대로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슬프다. 나 혼자 쏙 살아가는 것이 아니니까. 그리고 자기가 현재 갖고 있는 것과 다른 것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둘 다 잃게 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평생 이렇게 살아만 가다가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앞서 말한 노래 가사처럼 ‘그저 가다 보면 언젠간, 희미하게 보여 rainb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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