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규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신약개발지원센터장

이태규 오송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신약개발지원센터장

[동양일보]질병 치료제는 그 제조 방법에 따라 크게 화합물의약과 바이오의약으로 나눌 수 있다. 시험관에서 열, 촉매 등을 이용해 유기합성으로 만든 것이 전자라면 후자는 미생물이나 세포를 이용해서 만든다. 그리고 알약으로 먹는 약은 대부분 합성의약인데 반해 수십~수백 배 큰 바이오의약은 대체로 주사제이다. 관절염 치료제인 휴미라(Humira)는 2018년도에 199억 달러(약 24조원) 팔린 블록버스터급 바이오신약이다. 바이오신약이 대세인 신약시장은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국내에서도 혁신성장 엔진의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본 논고에서는 바이오의약이 어떤 성장 과정을 거쳐 왔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바이오신약은 20세기 위대한 발견 중 하나인 인슐린에서 시작되었다. 연구 개발이 숨 막히게 진행된 1920년 대로 되돌아가 보자. 그 당시 췌장에서 분비되는 어떤 물질이 당뇨병을 치료 할 수 있다는 가설을 바탕으로 많은 연구가 있었으나 그 물질을 찾는데 대부분 실패했다. 1921년 봄, 캐나다 토론토대에서 맥클라우드 박사의 지원 하에 외과의사 밴팅 박사는 물질을 찾는 연구를 시작하였다. 그해 12월, 밴팅 박사와 의대 대학생인 베스트는 췌장에서 분비되는 소화효소로 인한 난제를 해결하여 당 농도를 낮추는 물질을 찾는데 성공하였다. 이어서 생화학자인 콜립 박사의 도움으로 인체에 투여할 수 있는 인슐린을 분리하였고, 이듬해 1월 환자에게 처음 투여하였다. 하지만 불순물로 인한 부작용이 발견되었고, 이를 개선한 후 다시 당뇨환자들에게 투여한 결과 증세가 확실히 조절됨을 확인하였다. 놀라운 사실은 선천적 유전병인 1형 당뇨병을 앓으며 당장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던 15세 소녀 엘리자베스 휴지가 1922년 8월 인슐린을 처음 맞은 이래 73세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무려 42,000번의 인슐린 주사를 맞으며 일상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밴팅박사는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바이오신약인 인슐린을 찾는데 성공하여 수많은 생명을 구하였지만, 안타깝게도 본인은 비행기사고로 49세에 세상을 떠났다.

당뇨환자에게 투여하는 인슐린은 돼지, 소의 췌장에서 분리하는데, 약 2톤의 동물 췌장에서 단 226그램의 인슐린을 추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늘어나는 수요로 생산의 한계에 부딪혔고, 과학자들은 이를 유전자조작 기술을 통해 해결하였다. 간단히 설명하면 인간 인슐린을 만드는 유전자를 대장균 DNA에 연결하여 대장균에서 인슐린을 대량 생산하는 기술이다. 그 결과 제넨텍(로쉬)은 1982년 인간 인슐린 제품을 첫 출시하였다. 대부분의 바이오의약품을 미생물이나 포유세포에서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바이오 의약산업은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처럼 바이오의약 시장은 인슐린처럼 몸 안에서 중요한 생리기능을 지닌 물질을 찾으면서 시작되었고, 인간성장호르몬(HGF), 적혈구생성인자(EPO), 과립구집락자극인자(G-CSF), 인터페론 등이 출시되었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질병의 원인을 찾는 것이다. 그 다음은 질병의 원인 중 ‘무엇’을 조절하면 질병이 치료될 수 있는지를 밝혀야 하는데 이 ‘무엇’을 약물표적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에이즈 질환은 HIV라는 바이러스에 의해 생기고, 바이러스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역전사효소의 기능을 억제하면 치료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약물표적인 역전사효소의 기능을 억제하는 화합물질을 찾기 위해 많은 연구를 하였고, 그 결과 다수의 에이즈치료제가 개발될 수 있었다. 또 다른 경우인 암 치료제를 살펴보자. 정상세포와 암세포는 많은 차이가 있다. 특히 암세포 표면에는 암세포가 살아가는데 중요한 단백질이 많이 만들어진다. 유방암 환자 중 20-30% 환자의 암세포 표면에 허투(Her2)라는 암세포가 살아가는데 중요한 단백질이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었고, 이 약물표적(Her2)에 대한 항체를 개발하여 기존 항암제보다 효과가 뛰어난 항체신약을 개발하는데 성공하였다. 이 치료제가 바로 2018년까지 매년 70억달러(약 8조원)의 매출을 기록한 허셉틴(Herceptin)이다. 따라서 병을 일으키는 원인과 약물표적을 알게 되면 이 표적에 붙는 항체를 찾아서 신약으로 만들 수 있게 되었고, 항체신약은 바이오의약품 시장에서 중대한 위치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2019년까지 79개의 항체 신약이 미국 식약처 허가를 받았고, 2025년에는 3000억 달러(약 340조원)의 판매를 예측하고 있다.

1920년대 인슐린개발처럼 1년도 안되어 신약을 찾아 인체에 투여한다는 것은 10년 이상 걸리는 현재의 허가기준으로 보면 어려운 일이겠지만, 환자를 살리겠다는 의지와 과학적인 접근, 통찰력 그리고 관련 기관들이 긴밀한 협력을 한다면 좀 더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수많은 질병의 원인과 약물표적을 밝히고, 다양한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기초과학자들과 임상의들이 협력을 이루어야 할 것이며,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도 꾸준히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서로의 이익을 우선 내세우기 보다는 환자들의 고통을 하루 빨리 경감시켜야겠다는 마음으로 모두가 사명감을 가지고 신약개발에 나설 때 세계를 선도할 수 있는 우수한 신약을 개발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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