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동양일보]봄날을 느끼는 것조차 죄스러워지는 요즘이다. 자고 일어나면 코로나 19 소식이 일상이 된 요즘, 지구촌 곳곳에서 사상 초유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이미 ‘세계적대유행’을 선언한 가운데 여유를 보이던 미국도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일부 주에서 통금까지 실시하는 초강수 대책을 내놓고 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쪽 사정은 더 심하다. 국내 현황도 만만치 않다. 최악의 상황은 벗어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불확실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태다. 엊그제 4월 개교라는 휴교령이 불가피했던 배경이다.

이번 주까지 미뤄졌던 교회행사도 어떤 양상을 띠게 될지 궁금하다. 가톨릭 전례력으로 교회는 사순 시기(四旬時期)를 지내고 있다. 지난 2월 26일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해서 내달 4월 12일 부활절까지 이어지는 40여 일간의 이 시기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예수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참회와 희생, 회개와 기도로써 그들 신앙의 핵심이자 정점인 ‘부활’에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길’을 따라나서는 극기와 구도의 시기이며 ‘다시 살아남’이라는 신앙적 체험을 나누는 은혜의 시기이기도 하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코로나 19가 확산일로에 있을 때 사순 시기가 시작돼서 부활절을 4주 앞둔 현시점에서 다소 진정세를 보이는 양상이다. 절망에서 희망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가는 가볍지 않은 묵상 주제가 ‘코로나 19와 희망의 봄(부활)’이라는 상황과 맞물려 중첩적 의미로 다가오는 이유다.



사순절을 뜻하는 영어 단어 ’Lent'는 '봄날'이라는 뜻의 고대 영어 ‘렌크텐(lencten)'에서 유래한다. 바이러스 이름으로 어울리지 않지만, 코로나(Corona)는 라틴어로 왕관을 뜻한다. 전자 현미경으로 보면 바이러스의 돌기 모양이 왕관을 닮았대서 붙여진 이름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바이러스란 존재는 마치 언제인지는 몰라도 언젠가 맞이하게 될 ‘죽음’처럼 인류의 삶 속에 녹아있는 하나의 요소인지도 모른다.

자연이 훼손되고 오염됐을 때 바이러스는 생을 시작된다. 생태계가 파괴되고 조화가 깨졌을 때 바이러스는 숙주를 찾아 나선다. 바이러스가 세균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세균처럼 스스로 번식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숙주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상식이 통하지 않고 양심이 사라진 사회적 토양에서는 악의 바이러스가 자라나게 된다. 144,000명이라는 폐쇄적이고 왜곡된 신념이 맹신적 집단바이러스를 불러왔다. 특권의식과 줄 세우기로 얻어지는 구원이라면 신앙의 본질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100세의 노교수 김형석 교수는 한 일간지와의 대담에서 “기독교 안 믿으면 지옥? 그건 독선”이라고 잘라 말한다. “종교가 교리가 되면 인간이 구속된다. 종교는 진리로 내 안에 들어와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자유로워진다”라고 강조한다.

코로나 19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사순 시기가 부활을 준비하는 참회와 희생의 시간이라면, 코로나 19사태가 단순히 버티고 견뎌야 하는 고통의 시간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협력과 배려로 어려움을 극복했던 학습효과가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자리 잡아야 하고, 친환경적인 생활습관으로 바이러스의 숙주가 되는 기회를 멀리해야 한다.

보이지 않은 많은 것들을 보게 해 준 ‘사회적 거리’가 손을 내밀면 언제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마음의 거리’로 바뀌어야 한다.

’손 씻기‘와 같은 기본적인 위생 습관이 선진문화로 자리 잡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마스크 대란’에서 보듯, 국정 시책과 일선 행정이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작동되고 있는가를 가감 없이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마침 4.15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소중한 한 표가 어느 때보다 값진 선택으로 가치를 발휘해야 한다.

봄 같지 않은 봄, 그래도 봄은 봄이다.

부활의 봄을 기다리는 이 사순 시기가 코로나 19의 위기를 건너가는 징검다리가 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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