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시간만 되면 록그룹 롤링스톤스의 '새티스팩션'(Satisfaction) 클래식 버전이 흐른다. 곧이어 툭툭 내던지는 말투의 정겨운 목소리가 들린다.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다.

 MBC FM4U(91.9㎒) '배철수의 음악캠프'(이하 '배캠')는 19일로 30주년을 맞았다. 이날로부터 꼭 30년 전 첫 방송을 시작한 '배캠'은 DJ 배철수(67)의 진행 아래 팝 음악을 전문으로 다뤄온 MBC의 장수 라디오 프로그램이다.

배철수는 이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온라인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를 통해 "늘 얘기하지만 난 별거 아니다"라며 30년을 함께 해온 청취자들에게 공을 돌렸다.

"30년 전 방송할 땐 저도 록밴드 일원이었고 좌충우돌하던 시기였죠. 처음엔 '내가 잘하니까 방송사에서 날 캐스팅한 거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몇 년 지나다가 어느 순간부턴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라디오 프로그램은 청취자들이 들어주지 않으면 존재 가치가 없구나…. 그때부터 '배캠'은 청취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그램이라는 자각을 하게 됐습니다."

'배캠'은 30주년을 기념해 지난달 영국 런던 BBC 마이다 베일 스튜디오에서 일주일간 생방송을 진행했다. 당시 런던에 거주하는 '배캠' 청취자들이 DJ 배철수를 만나러 깜짝 찾아오기도 했었다고. 배철수는 "BBC까지 와서 방송할 만큼 '배캠'이 인정받는 게 기뻤다. 30년을 해왔단 게 자랑스럽다"고 소회를 밝혔다.'


 '배캠'의 기록은 전무후무하다. 최장수 단일 DJ 기록을 보유한 배철수뿐 아니라 음악평론가 임진모는 24년째 출연 중인 최장수 게스트고, '철수는 오늘' 코너를 담당하는 김경옥 작가 또한 배철수와 30년을 함께 한 최장수 작가다. '배캠'에 출연한 해외 아티스트는 280개 팀으로 국내 라디오 프로그램 중 가장 많다.

 '배캠' 사람들은 30년 원동력으로 '인간 배철수'를 꼽았다. 임진모 평론가는 "배철수는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을 은연중에 따라 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고 했고, 김경옥 작가는 "든든한 느티나무 같다"며 웃었다. '배캠' 3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더 디제이'를 연출한 조성현 PD는 약 3개월간 배철수를 관찰하고선 "배철수가 지켜온 원칙이 있다. 남들은 지키기 쉽지 않은 유혹도 있는데 태연하게 그걸 견지한다"면서 "멋있게 늙어가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


배철수가 '배캠'을 진행하며 얻은 것도 있다. 그는 "밴드 생활을 하면서 록 음악이 최고고 그 외 장르는 음악적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음악에 대한 편견이 없다"고 털어놨다.

 "청취자들이 보내는 신청곡은 히트곡들이잖아요. 그런 음악들을 억지로라도 듣기 시작했죠. 계속 듣다 보니 음악에서 장르는 별로 중요하지 않구나 싶었어요.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결국 12음계로 만들어지는 건 똑같은 음악이라고. 또 대중이 한쪽으로 쏠려가는 듯하지만 긴 호흡으로 보면 대중의 판단이 옳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음악은 좋은 음악과 그렇지 않은 음악, 딱 두 가지만 있는 거죠."

그는 5년 전 '배캠' 25주년 기자간담회에서 "너무 오랫동안 진행했다"고 말한 바 있다. 2∼3년 전까지만 해도 '배캠'은 30년까지만 하고 방송 연예 활동은 록밴드 '송골매'로 회귀하는 것으로 끝맺음하는 걸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은 "30주년이 되고 나니까 '배캠'은 내 의지로 그만두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청취자들이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배철수는 말했다.

 "라디오는 6개월마다 개편하잖아요. 그래서 6개월 단위로 '내게 시간이 더 주어졌구나'라고 생각합니다. 5년, 10년 후는 생각도 안 하고 있어요."

 '팝음악의 전도사'이자 록밴드 딥퍼플 팬으로 유명한 그는 다시 보고 싶은 게스트로 멤버 존 로드를 꼽았다. 한때 팝은 국내 음악 시장을 지배하는 장르였지만 1980년대 말 인기가 가라앉았다. 그런데도 팝 시장에서 '배캠'의 위상은 막강하다. 임진모 평론가는 "여전히 팝을 듣는 사람 있으면 어떤 형태든 '배캠'과 접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배캠'을 배철수는 "대단한 프로그램이 아니다"라고 했다.

 "몇 년간 제가 방송에서 너무 많이 얘기해서 청취자 여러분은 아시겠지만. '배캠'이 뭐 대단한 프로그램은 아닙니다. 그냥 일과 끝내고 집에 가는 길에 마음에 드는 음악 한 곡 듣고, 제가 던지는 실 없는 농담에 피식 웃을 수 있다면 우리 프로그램의 존재가치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큰 욕심 내지 않고 좋은 음악 듣고 가끔 피식 웃는 프로그램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랜 세월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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