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석 기상청장

김종석 기상청장

[동양일보]최근 남극에 있는 갈린데즈 섬에서 핏빛으로 물든 빙하의 모습이 포착됐다. 정말로 피로 물든 것이 아닌 조류로 인한 현상으로 ‘수박 눈(watermelon snow)’이라고 불린다. 이 현상은 전 세계 빙하 등 눈과 얼음 속에 숨어있는 조류가 지구온난화로 인해 기온이 올라가자, 눈이 녹으면서 함께 붉게 퍼진 것이다. 수박 눈 현상은 역설적이게도 그 자체는 특별한 현상이 아니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고통 받고 있는 지구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온 상승으로 전 세계 빙하가 빠르게 녹고 있다. 빙하가 녹게 되면 빙하로 식수 공급을 받고 의존해 살아가는 나라는 향후 물 부족을 겪게 될 것이고, 녹은 빙하로 인해 해수면이 상승하게 되면 해발고도가 낮은 국가의 일부 또는 전체가 서서히 물에 잠기게 될 것이다.

또한, 기후변화는 대기 순환에도 영향을 주게 되며, 이로 인해 예측하기 어려운 극한기온, 극한강수의 빈도가 증가하게 된다. 지구의 기온이 계속해서 상승하면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그리고 인간이 감당할 수 없는 강수가 내려 막대한 인명 및 재산 피해가 발생할 수도 있다. 반대로 어떤 지역에서는 비가 오랜 기간 내리지 않아 가뭄이 이어져 물 부족에 고통을 받는 등 극단적인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상반된 자연재해는 달라 보이지만, 결국 지구온난화가 주된 원인으로 발생하는 것이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전 지구 기온의 상승은 대기 중 물의 순환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세계 보건기구(WHO)는 2025년 세계 인구의 절반이 물 부족으로 인한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한, 영국 과학 학술지 <네이처>에서는 식량생산의 부족으로 고통 받는 인구의 수는 지구의 온도가 1.5℃ 상승했을 때 3500만명, 2℃ 상승하면 3억6200만명에 달할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에 세계기상기구에서는 ‘세계 기상의 날’ 주제로 ‘기후와 물(Climate and Water)’을 선정하여 발표했다. 매년 3월 23일은 세계기상기구(WMO)가 정한 “세계 기상의 날”로, 세계기상기구는 기상 업무의 국제적 협력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발전을 기원하며, 해마다 중요 주제를 정하여 기상 지식과 기상 업무의 중요성을 보급하고 있다. 올해의 주제는 기후변화로 인한 물의 남용·오용·부족 등에 화두를 던진 것이다.

지난해 전 세계 평균기온은 2016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우리나라도 연 평균기온이 13.5℃로 2016년(13.6℃)에 이어 1973년 관측 이래 연 평균기온이 두 번째로 높았다.

지난겨울(2019년 12월~2020년 2월)은 기후변화 속에서 이례적으로 가장 높은 기온과 가장 적은 한파일수를 기록하였으며, 한강은 2006년 이후 13년 만에 얼지 않았다. 또한, 근대 기상업무(1904년) 이래 가장 많은 태풍의 영향(7개)을 받는 등 지구온난화로 기상기록의 변동이 많았던 해였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미래의 일이 아닌 현재진행 중인 변함없는 사실이며, 빈번한 극한 기상과 예측하기 어려운 환경적 변화가 우리와 주변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기후변화의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우리의 이야기다.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국가적인 정책과 더불어 생활 속에서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한 더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때이다. 우리가 어떤 미래를 만들어 갈지는 매 순간 우리의 행동에 달려있다. 핏빛으로 물든 빙하는 어쩌면 정말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지구의 모습일지 모른다. 그 눈물을 마셔야 하는 우리의 미래는 과연 어떤 빛깔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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