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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삼별초, 몽고군의 포로노예가 되다
풍향계/ 삼별초, 몽고군의 포로노예가 되다
  • 동양일보
  • 승인 2020.03.23 21: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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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동양일보]1232년 최씨 정권은 강화도로 궁을 옮기면서까지 대몽 항전을 이어나갔다. 삼별초는 국가에서 봉급을 받고 있었으나 정치권력을 가진 권신들과의 유착관계를 끊어내지 못하고 있었으므로 사병과 다름없었다.

1259년 고려의 태자(원종)가 몽고에 입조(入朝)하여 군신의 관계를 유지하고 나서 몽고와의 전쟁은 마무리 되는 듯하였으나, 왕의 개경환도를 줄기차게 반대하는 삼별초들은 고려정부가 평화로움에 기대는 것을 거부하고 있었다.

몽고는 왕실을 위협하여 반몽고 세력을 씻어내려고 안달복달하였다. 왕은 삼별초에게 개경으로 돌아가자고 설득하였다. 삼별초는 왕이 몽고군 속에 꽂혀 있는, 개경으로 돌아가서는 절대 존립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몽고군은 삼별초의 명부까지 확보한 채 개경의 길목을 지키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커다란 덧을 하늘에 쳐놓은 죽음의 땅을 밟으려는 자가 세상에 어디 있으랴.

왕은 삼별초를 폐지하고 해산을 명령하였다. 대다수의 백성들은 몽고에 굴신하는 왕실의 패배주의 정책에 비판적이었다. 1270년 6월 1일 배중손은 오히려 원종을 폐하고, 왕족인 승화후 온(承化侯 溫)을 새 왕으로 추대하였다.

삼별초는 즉시 왕궁의 재물을 접수하고 강화도에 남아 있던 귀족·고관의 가족들을 배에 태워 진도로 후송해버렸다. 인질까지 확보한 셈이었다. 이때 선박 1,000여 척이 동원되고 있었으니, 삼별초가 서해의 제해권을 장악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 없었다.

1270년 9월 조정에서는 김방경 장군에게 토벌을 명하였으나 삼별초를 악랄하게 제압하지 못하고 있었다. 11월이 되자 오히려 삼별초는 제주도를 포함한 남방의 제해권을 틀어쥐고 전라도·경상도의 조운(漕運) 체계까지 쥐락펴락 하고 있었다. 고려정부의 재정적 타격은 말이 아니었다.

1271년 1월 경상도 밀성군과 청도군의 농민들은 진도의 삼별초에 호응해 관헌을 습격하고 폭동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며, 개경의 관노들은 몽고의 다루가치와 고려 관료를 죽이고 진도로 들어갈 계획을 세웠다가 처형되기도 하였다. 1271년 5월 민족의 배신자 홍다구가 몽고의 지휘관으로 임명되어 오면서 전세가 뒤집히고 말았다. 홍다구와 김방경과 흔도의 연합군이 진도를 덮친 것이다.

배중손이 전사하자 홍다구는 왕을 처참하게 죽여 버렸다. 진도가 함락되고 남녀의 1만 여 명이 몽골의 포로가 되었다. 인질로 잡힌 귀족·고관의 가족들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김방경이 1차로 진도를 장악했으면 1만 명의 포로노예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몽고군은 포로들을 오랏줄로 묶어 몽골로 끌고 가고 있었다. 여인들은 소리쳤다. “살려주세요. 우리는 고려 관리의 부인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 없었다. 여인들은 몽고군의 전리품에 불과하였다. 강간을 당하고 노예로 팔려 가느니, 혀를 물고 죽음을 택하는 여인이 비일비재하였다.

김통정은 남은 삼별초를 수습하여 제주도로 항전지를 옮겼다. 제주도로 이동해 항전하며 일본에게 지원군을 요청하기도 하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1273년 4월 28일 김방경에 의해 삼별초의 최후 거점인 향파두리성은 접수되었다 김통정은 6월까지 버티다가 70여 명의 무리를 이끌고 한라산 기슭 붉은오름으로 들어가 자결하고 말았다. 삼별초들은 보트피플이 되어 대마도, 구주 혹은 오키나와 지역으로 흘러들어 간다. 현재 오키나와 지역에서 대량으로 출토되는 계유(癸酉)라 명문이 표시된 고려기와는 진도 용장산성에서 출토된 기와와 제작기법이 같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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