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상숙 아동복지교사

나상숙 아동복지교사

[동양일보]띠링~ 파란 하늘 위에 흰 구름이 두둥실 떠 있고,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 바람에 흔들린다. 그 바람을 타고 호랑나비 한 마리가 꽃잎 위에서 아스라이 줄 타듯 꽃술을 탐하고 있는 사진이 카톡으로 날아왔다. 이 엽서 같은 풍경을 내게 선물해 주신 분은 여학교 시절 담임선생님이시다. 꽃 사진도 좋지만 얼마나 연륜이 깊어지셨나 싶어 꽃과 함께 선생님도 찍어서 보내달라니 지체없이 최근에 찍은 사진이라시며 증명사진을 보내주셨다. 머리카락만 희어졌을 뿐 예전 모습 그대로셨다. 사람들에겐 다양한 복이 있다는데 내게는 참 좋은 스승을 만날 수 있는 복이 있었나보다. 선생님은 초등학생 딱지를 떼고 부모님도 어쩌지 못하는 제복 입은 어엿한 예비 숙녀들에게 매일매일 일기 쓰기를 숙제로 내주셨다. 그리고는 국어 선생님도 아닌 수학 선생님이 일일이 다 읽으셨는지 제출한 학생들 모두에게 매번 연애편지 같은 글들을 1년간 달아주셨다. 갑작스럽게 엄마가 돌아가시고 상처와 빈 마음을 채울 수 없었던 내게 일기는 소통의 통로였다. 그날그날의 일상들과 순간순간 내가 느끼고 깨닫게 된 것들을 솔직히 적어 놓은 일기에 선생님은 항상 긴 답글을 달아주셨다. 가끔은 내 상황과 처지에 맞는 사자성어나 격언의 문구도 적어 주시고 시의 한 구절도 적어 주셨다. 내 감정에는 ‘그랬구나! 힘들었겠네! 잘했다!’ 하시며 내 편이 되어 주시기도 하고, 다른 시각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 주셨다. “반 아이들이 너를 많이 좋아하던데 그 이유를 알 것 같구나! 이번 일요일에 선생님이 당직이니까 냄비와 쌀을 가지고 오너라. 너도 이젠 어엿한 중학생인데 아빠가 해 주는 밥을 먹으면 되겠니? 밥 짓는 방법을 알려주마” 여자는 무조건 살림을 해야 한다는 유교적인 사상을 내게 강요하는 것 같아서 처음에는 반발심도 일었다. 그러나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담임선생님으로서 의무감에 하는 격려나 충고가 아니라, 인생을 먼저 산 경험자로서 내게 따뜻하게 섬기며 나누고 함께하는 방법들에 대해 알려 주고 싶으셨던 그 진실함이 느껴졌다. 그 덕에 나는 아버지 대신 자발적으로 집안 살림을 하게 되었다. 내가 중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선생님께서는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셨다. 그 후로 4년이 지나 우연한 기회에 동창을 통해서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이런저런 안부에다 대학진학은 했느냐 물어보셨다. 당시 대학을 가야 하는 절실함도 없었고, 형편이나 상황도 여의치 않아서 남이 가니까 학벌을 위해 가는 대학이라면 가지 않겠다 결정하고, 세상을 관찰하며 배워가는 중이라고 말씀드렸다. 이런 내 모습이 안타까우셨을까? 며칠 뒤 노란 서류 봉투 하나가 내게 배달됐다. 그 안에는 “공부는 때가 있는 거야. 일하면서도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아버지께도 손 벌리지 않고 스스로 공부할 수 있으니 네게 도움이 될까 해 ‘방송통신대학교 입학원서’를 동봉한다. 잘 생각해서 결정하겠지만 좋은 쪽으로 선택하길 바란다. 때를 놓치지 말고 시간을 아끼거라. 세월은 쏘아 놓은 화살과 같단다” 몇 날을 고민하다가 국어국문학과에 원서를 넣었다. 가정형편 때문에 고민하며 진학을 포기했던 내게 배움의 길을 포기하지 않도록 길을 알려주시고 격려해 주셨던 분이셨다. 사춘기 학창 시절의 말도 안 되는 숙제였던 그 일기 쓰기와 선생님의 진심 어린 답글들이 지금의 내가 있게 해 준 자양분이었다는 생각에 더없이 감사한 마음이다. 그때는 가슴이 따뜻한 선생님들이 많이 계셨었는데 요즘은 선생은 많아도 스승은 보기 드문 것 같다. 나도 지역아동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불리는 사람이다. 그저 지식을 전달하는 선생이 아닌 가르쳐 올바르게 이끌어 줄 수 있는 스승이 되고 싶다. 오래전 내 학창 시절의 스승님들이 내게 그러하셨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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