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 논설위원/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강준희 논설위원/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동양일보]‘야만인이 야만인이며 문명인이 문명인인 것은 그의 태생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참여하고 있는 문화에 의한 것이다. 이 문화의 성질의 궁극적 척도가 되는 것은 그곳에 번영하는 예술이다.’ -J 듀이<경험으로서의 예술>

필자가 바깥세상을 여행하다 받은 감동과 충격은 하나둘이 아니지만, 그중에서도 벨기에의 ‘레뒤마을’과 남프랑스 ‘위제마을’에서 받은 감동과 충격은 너무나 크고 값진 것이어서 좀처럼 잊을 수가 없다.

벨기에의 레뒤마을은 조그마한 산간 농촌 마을로 인구가 고작 4백여 명 밖에 안되는 전형적인 유럽풍의 아담한 전원마을이다.

그런데 이 조그마한 산간 마을 레뒤에는 놀랍게도 서점이 물경 스물네 군데나 있고 이 스물네 군데의 서점에 진열된 장서가 또 물경 60여만 권에 달한다는 사실이다.

필자가 감동과 함께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이 점이다.

그리고 또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하는 것은 스물네 군데의 서점에 진열된 60여만 권의 장서 중에서 소위 말하는 베스트셀러는 단 한 권도 없고 모두가 고서인 헌 책으로만 진열돼 있다는 사실이다.

이 조그마한 산간 마을에 서점이 많고 장서가 많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베스트셀러는 단 한 권도 없이 고서만을 진열했다는 게 더 놀라운 일이어서 우리와는 딴판 다른 기현상이었다.

베스트셀러라면 출판사가 환장을 하고, 베스트셀러 작가라면 사족을 못 써 한심한 삼문문사(三文文士)의 서 푼짜리 글도 흥분한 채 마구 찍어내고 서점들도 덩달아 제일 좋은 자리에 책을 깔아놓고 호객을 하는데 딱하게도 독자까지 이에 현혹돼 충동 구매를 서슴지 않으니 한심한 노릇이다.

서점이 많아야 할 대학가에 서점이 문을 닫고 대신 술집과 의상실, 그리고 유흥가와 위락시설 등이 앞다퉈 생기는 우리네와는 너무도 대조적이어서 부럽게 짝이 없다.

그러나 부러운 건 레뒤마을 만이 아니었다.

남프랑스의 지중해 연안 도시 니스의 위제마을에 갔을 때도 필자는 부러움과 함께 진한 감동을 받았다.

아, 역시 프랑스로구나!.

필자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프랑스 국민의 높은 문화의식에 고개가 숙여졌다.

왜냐하면, 니스의 위제마을 아파트 이름이 랭보, 까뮈, 지드, 보를레르, 싸르트르 등 당대 프랑스를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인들의 이름으로 돼 있기 때문이었다.

아아!

필자는 탄성을 발하며 산꼭대기 언덕에 성채처럼 서 있는 아파트를 쳐다봤다.

아, 과연 프랑스로구나!

필자는 새삼 프랑스인들의 예술 지상주의에 경의를 표했다.

그리고 권력과 금력만이 절대로 최고인 우리의 풍토에 환멸했다.

햇빛과 바다와 시인과 소설가가 함께 어우러져 숨 쉬는 위제마을.

여기서 위제마을 사람들은 시를 읊고 소설을 이야기하며 아름다운 지중해 연안을 굽어볼 것이다.

그런데 이들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멋대가리 없는 민족이며 예술을 모르는 민족인가.

그저 끽해야 서울에 세종로, 퇴계로, 충무로, 원효로가 있고 시인으로는 소월로가 고작이지 않는가.

다른 게 있다면 세종문화회관이 유일하다.

그 나라의 수도는 물론이지만, 지방 도시에도 그 지방이 낳은 훌륭한 문화 예술인들의 이름을 붙인 건축물이 있어야 하고 도로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명실상부한 문화의 나라 예술의 나라가 될 것이다.

문화선진국은 다릿발 하나에도 조각품을 새기고 건물 하나에도 예술품을 세운다.

그리고 책을 많이 읽는 나라가 돼야 한다.

그래, 말이 있다.

남자는 반드시 다섯 수레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이것이 유명한 남아필독오거서(南兒必讀五車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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