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샌님’이란 생원님의 준말로, 예전에 상사람이 선비, 즉, 학식은 있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부르던 말이다. 그러니까 샌님은 학문을 닦은 사람이고, 성격이 어질고 순하다.

이 샌님이 시골에서 늙어가며 벼슬에 연연하지 않고 살고 있으면 ‘촌샌님’ 이라고 불린다. 그래서 ‘촌샌님’ 하면, 촌스럽고 변통이 없는 늙은이로 통한다.

그런데 지금도 현대판 촌샌님이 있다. 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도회지를 등지고 시골에 살면서 도무지 세상과는 타협을 하지 않고 늙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동네서는 이 변통 없고 고집통이인 이 늙은이를 촌샌님이라 칭한다.

“바깥뜸의 촌샌님 말여, 돈하군 아주 담쌓은 모양여. 돈을 벌랴구두 안 하구 돈 보구두 시큰둥하니 말여.” “그 영감 젊었을 적부터 그렇잖여. 그러니께 대학교꺼정 나오구 시골구석에 틀어박혀 있잖어.” “아니 그 좋다는 일류회사에서 오라구 해두 안 갔다며?” “모르지 그 아버지 되는, 지금은 돌아가신 양반이 그랬었으니께.” “그때 대학교꺼정 다녔으믄 그 아버지 말따나 취직할려면 쉬웠겄지. 그 높은 학교를 아무나 다녔는감 집안에 돈 깨나 있는 부자나 다녔지.”

“돈두 돈이지만 아무나 갔남. 정작 당사자가 감당할만한 실력이 있어야 됐지.” “그로보면 그 촌샌님 실력은 있었던 모양여.” “실력이 있으믄 뭐하구 성질이 꼬장꼬장하믄 뭐햐 그 안 사람 고생만 시키지.” “오죽하믄 그 안사람 칠십 노인네가 돈 벌러 하우스일 하러 다니겠는가!” “그 촌샌님 그렇게도 돈 좋은 줄을 모르는 것인가. 돈만 있으믄 귀신도 부릴 수 있다는데 말여. 즉, 돈만 있으믄 세상에 못할 일이 없을 정도루 좋다잖여.” “돈 얘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돈만 있으믄 개도 명 첨지라는 말도 있잖여.” “맞어, 아무리 천한 사람두 돈만 있으믄 남들이 귀하게 대접해준다 이거제.” “돈에 침 뱉을 놈 없다는 말도 있어. 누구나 돈을 소중히 여긴다는 말이지.” “근데 말여, 그렇게 돈 모르고 청백해서 재물을 모으지 못하믄 지극히 가난할 텐데 그래두 여전히 먹구 사는 것 보면 용햐.” “앗따 이사람 봤나. 몰러서 그랴 시방. 자식이 대주잖여. 풍족히는 못 대줘두 굶지 않을 만큼은 살림에 보태 주는겨. 지들두 읍내서 음식장사하믄서 근근히 사는디 풍족하게 줄 수 있겄어. 그래두 그렇게나 하니 신통하지.” “그리구 아직꺼정은 그 촌샌님 선친한테 물려받은 땅뙈기가 있으니께 굶지는 않지.” “돈을 안 쓰는 사람잉께 필요없겠지만서두 , 그 안에서 동네 일하러 다니니께 살어나가는 데는 궁핍하진 않을껴.” “참 그 샌님 참 답답햐. 안 그려?”

하나같이 그 촌샌님 나무라고 성토한다. 가만히 아까부터 듣고만 있던 전 이장이 점잖게 나선다. “흉 각각 정 각각이라 했어, 잘못한 점은 나무라고 좋은 점은 칭찬하라는 것 아니겠나. 근데 지금까지 자네들은 그 촌샌님의 흉만 보았네. 정말루 본받을 만한 좋은 점은 없는가 말여?” 각중에 나오는 물음이니 모두들 한 동안 말이 없다가 한 사람이 나선다. “왜, 좋은 점두 있제.” “뭔가?” “점잖구 잘난 척을 하지 않제.” “또?” “욕심 내지 않구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해하는 것인가. 그 사람 그렇잖여.” “또?” “마음이 착하고 순하지.” “남에게 손 내밀지 않구 신세질라구 하지 않제 그 사람.” “그것만 해두 칭송할만한 점이 많네 그려. 근데 정작 우리 동네사람들이 그 분 덕본 일은 빠졌구먼!” ‘덕본 일, 덕본 일….’ 그러다 한 사람이 무릎을 탁 치며. “그래, 그래, 있다 있어. 먼저 번에 선거 때 말여….”

먼저 번 선거 때, 동네사람들에게 아랫녘으로 관광을 시켜준다는 사람이 있었다. 동네사람들이 좋아했다. 버스 대절해서 바닷가에 가서 회 먹고 놀다 온다는데. 그것도 공짜로 시켜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없었다. 모두들 들떠 있는데, 저녁에 촌샌님이 전 이장을 찾아 왔다.

“여보게 간곡히 말하는 걸세, 이번 그 관광여행 안 가는 게 좋겠네. 지금 세상에 누가 공짜로 관광을 시켜주겠나. 아무래도 이상하니 가지 않는 게 좋겠네. 때가 때 아닌가?” 해서 이를 젊은 현 이장에게 전달해 가지 않았는데, 그로 인해 동네사람들이 경찰서에 불려가는 걸 면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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