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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칼럼/ 일제강점기 청주의 위생시설정비
동양칼럼/ 일제강점기 청주의 위생시설정비
  • 동양일보
  • 승인 2020.04.02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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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기영 논설위원/유원대 교수
백기영 논설위원/유원대 교수

[동양일보]개항 이후 우리나라 도시는 골목 안의 쓰레기, 방치된 분뇨, 악취 등 열악한 위생문제와 이로 인한 전염병에 직면했다. 1879년 일본에서 유행한 콜레라가 부산으로 들어와 국내로 퍼졌고, 1895년에는 30만 명이 콜레라로 사망한 바 있으니 그 심각성은 대단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도시위생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최초의 제도가 정비됐다. 1894년 갑오개혁과 함께 위생국이 설치됐고 경무청에서 위생 관련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도시위생시설의 정비에 있어 주요한 사항은 상·하수도의 설치로 볼 수 있다. 상수도 시설이 구축되기 전 우리나라 도시의 생활용수는 대부분 강물에 의존해왔다. 1910년 9월 ‘수도상수보호규칙’의 공포와 함께 상수도의 설치에 대한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청주의 경우 1910년 10월 청주면 내 도시개발사업의 하나인 시구개정사업이 기안됐고, 1911년 읍성이 철거되고 1915년에 이르러 대부분 공사가 준공됐다. 성벽 해체 후 얻게 된 석재를 활용해 하수구를 설치했으며 석교로부터 북문에 이르는 일직선의 중심도로를 개수했다.

청주는 예로부터 무심천의 흙탕물이 범람하며 도시 곳곳으로 오수가 흘러나갔다. 오물은 무분별하게 버려졌으며 지표로 침투됐다. 이 때문에 우물물 대부분은 식료로서 적합지 않았다. 필연적으로 지역 내 전염병은 끊이지 않았고 대중에게는 건강하지 않은 땅으로 인식되었다.

1911년 시구개정사업으로 설치된 하수구는 오수의 유입관리에 상당한 효과를 보였으나, 수질의 향상에서는 그 효과가 미미했다. 1912년 시가의 남단 무심천의 제방을 허물고 정수 우물을 만들어, 이곳으로 하수의 길을 향하게 했다. 이후 1919년 간이수도 부설계획이 입안됐으며, 1921년부터 상수도의 부설에 착수해 1922년 6월 수도 통수식 거행되었으니 이는 전국 도시 중 17번째다.

1920년대 말에 이르러서는 급수인구 대비 사용 수량이 증가해 제한 급수에 대한 고려가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1929년 6월 수도급수규칙을 개정하고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계량제를 적용하게 된다. 특이한 점은 조선인들의 수도공급은 극히 부족한 실정이었다. 1931년 동아일보에 게재된 기사에 의하면, 1931년 2월 말 기준 수도 급수자는 일본인 600호에 조선인은 10호에 불과하며, 수도시설을 사용치 않는 호수가 조선인 2400호, 일본인 90호이며, 음료수로 적당한 우물이 불과 130곳에 불과해 청주시민들이 전염병 유행에 매우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수도시설의 정비는 주로 일본인들을 위한 것이었고 조선인에게는 요금이 과해 당시 언론에서는 요금인하를 주장하기도 하는 등 당시 도시 위생시설의 정비에 있어 식민지적 성격이 드러난다.

하수시설은 1922년부터 4년간의 하수도 시설정비사업이 시행되었다. 이후, 1932년 11월 청주읍 석교정 하수공사 입찰에 관한 신문기사가 보도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하수 정비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서구 근대 도시계획이 산업혁명 이후 열악한 주거환경과 공중위생을 개선하고자 하는 움직임으로부터 출발했던 것처럼 우리의 도시계획의 역사도 도시의 위생문제 극복을 지향점으로 전개됐다.

일제강점 시기에 근대 도시로의 성장은 시작되었다. 일본 강점기에 청주 도시계획은 전통도시로서의 유구한 역사성을 지켜온 청주를 공간구조적으로 근대화시킨 측면도 있으나 보다 근원적 측면에서 공간구조의 단절과 왜곡을 가져온 시기이기도 하다. 식민통치를 시작하면서 일제는 근대도시계획 수립이라는 미명하에 읍성을 철거하고 식민통치 체제에 걸맞은 형태로 도시구조를 개편시켰던 것이다. 읍성의 철거와 도시 구조의 개편과 함께 도시위생문제에 대한 처방으로 상·하수도의 정비가 이루어졌다. 그 당시 도시의 위생문제에 대해 자각과 개선을 위한 노력이 수반된 시기였으나 이 같은 정비는 식민통치의 효율성과 정당성의 구현에 일차적 목적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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