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희 논설위원 / 강동대 교수

이동희 논설위원 / 강동대 교수

[동양일보]벌써 4월인데 T.S Elliot은 황무지에서 잔인한 달이라고 하였다. 사월은 우리에게 다가왔고 우리는 세상을 살다 보면 힘들 때도 있고 행복할 때도 있다. 하지만 좋은 일은 방해가 되는 있이 많으며 악재가 따른다고 한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하는데 세상사 많은 일들이 연속적으로 좋은 일만 일어나지는 않으니 지나치게 호들갑 떨지 말고 자중하라는 의미이다. 세상살이는 이렇듯 좋은 일과 나쁜 일이 순환적으로 발생되고 잊혀지며 하루 하루가 모여 1년을 만들어간다. 인생을 살다보면 마음속에 혹은 가슴속에 담아두고 표현 못하며 살아야하는 일들이 있다. 사연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냐마는 희로애락의 세월이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인생 인 듯하다. 그런데 가끔은 나쁜 일은 이어 온다고 한다. 불행한 일들은 연속적으로 발생되어 인생에 마(魔)가 끼었다고도 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삼재(三災)가 들었다고도 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인생의 쓰디쓴 단면을 표현해 주는 것이다.

세상을 산다는 것은 누구나 새로운 경험이고 도전이다. 그렇다보니 실패도 하고 아픈 경험도 한다. 사연 없는 인생이 있겠는가? 어찌 보면 사연 없는 인생은 쭉정이 같은 인생일 수 있다. 사연이 많다는 것은 이것이 인생이다! 라는 드라마를 시나리오를 엮을 수 있다는 얘기이다. 과거 우리 선조들은 말을 적게 하는 것을 미덕을 삼았다. 특히 여자가 말 많은 것은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하나로 치부하며 가슴에 쌓아두게 하였다. 그렇다보니 우리의 어머니들은 화(禍)를 가슴에 쌓아 무덤에 가져가곤 하였다. 혹은 고부간 갈등의 연속으로 대물림되기도 하였다. 이것이 우리 어머니들의 한이고 화병인 것이다. 이런 삶이 현대사회에 와서 바뀌고 변화를 낳아 새로운 시대를 만들었다. 현 지식정보화 시대는 온라인 세상으로 탈바꿈하여 가상의 공간에서 어느 누구나 손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누구나 말 못할 사연을 있으며, 말 못할 사연을 가슴에 묻고 사는 것이 힘들고 담아두면 화병이 되다보니 풀고 살아야 한다. 그런데 푸는 방법이 마땅히 없다. 사람으로 풀어야 하는데 입장이 다르다 보니 스트레스만 쌓이고 팩트(Fack)는 말 그대로 팩트로 남는다. 그래서 아주 절친이나 입이 무거운 사람 혹은 신앙적으로 믿는 분에게 이야기 한다. 사실 현실세상에서는 말을 잘못하여 커다란 싸움이 되기도 한다. 말은 돌고 돌아 왜곡되거나 과장되어 소가 말이 되는 것이다. 분명이 우리 집에 소가 있다고 했는데 우리 집에 말이 있다. 이것이 소문이며 말은 돌고 돌아 눈덩이처럼 커지고 화마처럼 변하여 돌아온다. 그래서 말은 정말 조심해야한다. 살아가면서 정말 비밀인데 아무한테도 이야기 하지 마라하는데, 얘기를 꺼낸 순간 그것은 비밀이 아니다. 이미 소가 말이 되어 우리의 대화 속 말이 뛰어다니는 말로 변하여 발 없는 말이 천리를 달려간다. 황당무계(荒唐無稽)하게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이 있는 기막힌 세상이다. 그 정도로 말은 일파만파 매우 빨리 퍼진다는 말의 위력을 암시하는 속담이다. 말조심 하라는 의미로 “벽에도 귀가 있고 천장에도 눈이 있다.” 혹은 “밤 말은 쥐가 듣고 낮 말은 새가 듣는다.” 고 한다. 말도 안 되는듯하지만 말조심하자는 의미이다. 그렇게 조심하면서 살아도 세상살이는 힘들고 요즘 같은 세상은 모든 곳에 첨단 눈이 있다. 없는 장소를 찾기가 힘들고 안전지대인지 위험지대인지 알 수가 없다. 사방팔방에 감시카메라가 있어도 사고는 주야로 발생하니 정말 힘든 세상이지 않나 싶다!

우리는 한 평생을 살아가면서 가슴에 묻거나 묻지 못한 사연이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운명 전 초연으로 돌아가서 세상을 뜨기 전 마지막 말 즉 유언(遺言)이라는 것을 한다. 그런데 정말 속 깊은 말을 남기기도 하고 남은이 에게 염장 지르는 말을 하기도 한다. 마지막 갈 때 까지도 태어난 시점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염장지르는 소리를 하고 가는 것이다. 정말로 백지(白紙)같은 사람인지 백치(白癡)인 사람인지 알 수 없어 마음이 몹시 아프다. 삶을 있는 대로 받아들이면 되지만 왜 이렇게 못 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지? 한 번쯤 지금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나보다는 남을 생각하는 여생(餘生)의 삶은 이타주의(利他主義)의 삶을 사는 것은 어떤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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