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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옛 마포나루에 정지용 시비와 조택원의 기념비를!
풍향계/ 옛 마포나루에 정지용 시비와 조택원의 기념비를!
  • 동양일보
  • 승인 2020.04.0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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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우 시인
이석우 시인

[동양일보]정지용은 1918년 드디어 4년제 휘문고보에 입학한다. 그가 입학할 당시 거주지는 “경성 창신동 143번지 유복영(柳宓永) 씨방”으로 되어있다. 어느 자료에는 거주지가 ‘유필영’으로 되어있으나, 이는 유복영을 잘못 읽어 생긴 일이다. 휘문고보는 지용이 졸업하는 1922년 4월, 5년제로 학제가 변경되는 바람에 그는 5학년에 다시 입학하게 된다. 이때 학적부를 재작성하는데, 보증인은 역시 유복영이었으며 주소가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 현석리”로 변경 기록된다. 유복영의 집이 현석리로 바뀐 이유와 시점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정지용이 최초의 시작<風浪夢>을 “마포 하류 현석리에서” 1922년 3월에 썼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그 이전에 이미 거주지가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그는 현석리에서 졸업할 때까지 학교에 다닌다.

“택원이가 휘문중학 3학년 때 나는 5학년이었다. 그러고도 한집에서 한방을 썼고 한 상의 밥을 먹었다. 택원이는 정구 전위선수로 날리었고 나는 인도‘타고르’의 시에 미쳤던 것이다.” -정지용 <산문> 225쪽. 확인 결과 조택원은 현석리로 주소지를 변경하고 있지는 않았다.

현재의 현석동(玄石洞)은 조선시대 한성부의 <수선전도>에 현석리(玄石里)라고 기록되어 있고, 영조 때에 반포된 <도성삼군문분계총록(都城三軍門分界總錄)>에는 서부 서강방(西江坊)(城外) 흑석리계(黑石里契)라고 되어있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에 경기도 고양군 용강면(龍江面)에 편입되게 되었다가, 1936년 경성부의 관할구역 확장으로 다시 경성부에 편입되면서 현석정(玄石町)이라고 개칭되었다. 1944년에 마포구 생기면서 이곳에 편제되었다가, 1946년 마포구 현석동(玄石洞)으로 확정되어 현재에 이르렀다.

이곳의 옛 이름은 농암이라고 불렀는데 숙종 때 박세채가 이곳 '소동주'에 살았으므로 그의 호, 현석(玄石)을 따서 현석동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이 근처의 돌이 검다하여 붙였다는 이도 있는데, 이것은 영조 때 흑석리계(黑石里契)라고 불렀던 이름과 일맥상통한다. 지금도 이곳 사람들은 검은 돌 위에 있는 마을을'웃감은돌 마을', 검은 돌 등성이 뒤에 새로 생긴 마을을 '안감은돌 마을'이라고 부른다.‘감은’은 ‘검은’의 옛말이다.

마포구 현석동은 강변북로의 시원한 드라이브 라인을 경계 삼아 한강 물이 남실거린다. 이 아름다운 풍광 덕분에 9.13부동산 정책에도 불구하고 아파트값이 주변에서 제일 많이 뛰었다. 지금 아파트 주민들은 한강으로 저녁놀이 떨어지면 비산하는 붉은 물비늘을 바라보며 행복감에 젖을 것이다. 그러나 1922년 춘 3월, 정지용은 마포나루로 밀려오는 한강 물을 비장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풍랑몽>이 낭랑하게 읊조리기 시작한다.

“당신께서 오신다니/당신은 어찌나 오시랴십니가.//끝없는 우름 바다를 안으올 때/葡萄빛 밤이 밀려 오듯이,/그 모양으로 오시랴십니가.//당신 께서 오신다니/당신은 어찌나 오시랴십니가.//물건너 외딴 섬, 銀灰色 巨人이/바람 사나운 날, 덮쳐 오듯이,/그모양으로 오시랴십니가.//당신 께서 오신다니/당신은 어찌나 오시랴십니가.//창밖에는 참새떼 눈초리 무거웁고/창안에는 시름겨워 턱을 고일 때,/은고리같은 새벽별/붓그럼성 스런 낯가림을 벗듯이,/그모양으로 오시랴십니가.//외로운 조름, 풍랑에 어리울 때/앞 포구에는 궂은비 자욱히 들리고/행선배 북이 웁니다, 북이 웁니다.” -<풍랑몽>전문. 21세의 이 식민지 청년은 풍랑을 따라 찾아올 “은회색 거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고보시절 그에게 문학적 영향을 미친 사람은 <나는 왕이로소이다>을 쓴, 露雀(이슬에 젖은 참새) 홍사용이다. 그는 타고르 시집을 사주었고, 지용은 타고르 시인에게 미쳐 버린다. “당신”은 관념화된 존재다. 절대적 존재감을 느끼게 될 때, 그것은 타고르적이다. 결국 “은회색 거인”도 김억과 한용운의“님”과 다르지 않다. 정지용은 이슬에 젖은 참새, 홍사용의 순수시정과 민요 사랑을 오래오래 그 시력에 담고 간다. 100년 전 정지용은 한강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며, 국권을 상실한 조국의 뭍으로‘은회색 거인’이 행선배를 타고 오기를 고대하고 있었다. 옥천군과 마포구청은 옛 마포포구 하류의 현석리에 ‘정지용 <풍랑몽>시비’와 한국 최초의 현대무용가 ‘조택원의 기념비’를 세워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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