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 논설위원/소설가/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강준희 논설위원/소설가

[동양일보]법정 스님의 책을 읽다가 콧날이 시큰하도록 감동적인 대목이 있어 소개한다.

산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익히 알려진 일이지만 가을이 되면 다람쥐들은 겨울철 양식을 준비하느라고 아주 분주히 내닫는다.

참나무에 오르내리면서 도토리를 턱이 불룩하도록 입안에 가득 물고 열심히 나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절에 살던 한 비구니가 다람쥐의 이 추수하는 것을 발견하고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도토리묵을 해 먹을 요량으로 죄다 꺼내왔다.

그다음 날 아침 섬돌 위에 벗어 놓은 신발을 신으려고 했을 때 섬뜩한 광경을 보고 그 스님은 큰 충격을 받았다.

겨울 양식을 모조리 빼앗긴 다람쥐는 새끼를 데리고 나와 그 비구니의 고무신짝을 물고 죽어 있었던 것이다.

그 비구니는 뒤늦게 자신의 허물을 크게 자책하였다.

자신의 고무신짝을 물고 자결한 그 다람쥐의 가족들을 위해 이레마다 재를 지내어 49재까지 지내주었다 한다.

우리는 위의 글에서 가슴 뭉클한 감동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법정 스님의 말이 아니더라도 누가 이런 다람쥐를 미물이라고 얕잡아 볼 수 있겠는가.

미물에 대한 이야기는 잘났다고 곤댓짓 하며 갸기부리는 인간보다 훨씬 더 감동적인 것이 많아 만물의 영장이라는 우리 인간을 되돌아보게 한다.

어느 책에서 읽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때 그 도마뱀 한 쌍의 사랑도 참으로 눈물겨운 바여서 옷깃을 여미게 했다.

사연은 어느 집을 허는 데서부터 시작되는데, 인부들이 지붕을 벗겨내자 생게망게하게도 한 마리의 도마뱀이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한자리에 붙박여 있었다.

인부들은 한 자리에 붙박여 옴짝달싹하지 않는 도마뱀이 이상해 일손을 멈추고 그 도마뱀을 지켜보았다.

그러다 참으로 희한한 현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글쎄 도마뱀의 허리에 커다란 못이 하나 박혀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얼마 있으려니 다른 한 마리의 도마뱀이 입에 먹이를 물고 와 못에 박혀 요지부동인 도마뱀의 입에 먹이를 넣어주었다.

못에 박힌 도마뱀은 먹이를 맛있게 먹고는 목을 끼룩거렸다.

그리고는 고맙다는 듯 두 눈에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눈을 껌벅였다.

이 한 쌍의 도마뱀은 아마도 자웅일시 분명했다.

어느 것이 수놈이고 어느 것이 암놈인지 알 수는 없으나 놈들이 한 쌍의 짝임에는 틀림없었다.

인부들은 이 숭고한 부부애에 인간이라는 게 부끄러워 한동안 숙연한 자세를 취했다 한다.

이 또한 누가 이런 도마뱀을 말 못 하는 미물이라 업신여길 수 있겠는가.

이 이야기도 미물에 대한 것으로 어느 여성잡지에서 읽은 것인데 경북 어딘가의 군소도시의 일선 교육장이 쓴 글이다.

내용인즉 몰지각한 밀렵꾼의 총에 맞아 죽은 백조를 다른 한 마리의 백조가 목을 친친 감고 따라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다.

이 백조도 도마뱀과 마찬가지로 어느 것이 수놈이고 어느 것이 암놈인지 알 수 없으나 놈들이 짝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러니까 백조는 짝의 주검을 통곡하다 마침내 순사(殉死)하고 만 것이다.

참으로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거룩한 주검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그 주검을 더욱 감동적이게 한 것은 아침에 보니까 총에 맞아 죽은 백조의 목에 제 목을 친친 감고 죽어 있었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 글을 읽고 명치가 콱 막히고 목젖이 내려앉아 한동안 침을 삼킬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인간이라는 게 한없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인간 사랑의 권화(權化)라는 아가페가 이를 따를 수 없고, 로고스와 파토스를 가졌다는 인간 사랑도 이를 따를 수 없는데 뭐가 잘났다고 거들먹거리겠는가. 우리 인간은 미물에게서 배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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