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짚신은 볏짚으로 만든 신이기 때문에 바닥이 쉬 닳아 헤진다. 그래서 지난날 먼 길을 가는 사람들은 허리춤에 짚신 두어 켤레를 꿰어 차고 가거나, 과거를 보러가는 지방 선비들이 괴나리봇짐에 짚신을 주렁주렁 달고 갔다. 이건 가난해빠진 백성들이 여간해서는 갖신을 신지 못한 까닭이다. 갖신이란, 가죽으로 지은 신이다. 그러니 짚신보다는 훨씬 질기고 태도 난다. 소위 말하는 부호나 지체 높은 양반들이나 신었다. 그래서 이들을 상대로 한 갖바치라고 하는 직업인이 있었다. 갖바치란, 지난날 가죽신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던 사람이다. 이후 일제강점기에 양혜(洋鞋)라는 것이 나왔는데, 양혜란, 주로 가죽으로 발등을 덮게 만든 서양식 신이다. 그러니까 곧 구두다. ‘구두’ 는 일본말이다. 일본말이 우리말로 된 외래어(外來語)다. 이 신 역시 당시엔 힘없거나 삶이 여의치 않은 사람은 못 신었다. 대신 고무신이 일반 백성들에겐 널리 퍼졌었는데 이 고무신도 검정고무신, 흰 고무신이 있어 형편이 낮은 대다수의 집은 주로 검정고무신을 신었으나 좀 형편이 낫다고 하는 집에선 흰 고무신을 신었다. 요즘은 주로 절의 스님들이 이 흰 고무신 즉 백신을 많이 신고 있어, 지금 한창 돌고 있는 코로나19의 바이러스에 스님들이 걸리지 않는 것은 이 백신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기도 한다.

그건 그렇고, 1945년 6.25전쟁의 1.4후퇴직후만 해도 농촌엔 ‘짚신할아범’이 있었다. 곧 짚신을 삼는 남자 늙은이를 말한다. 동네사람들의 짚신을 만들어 대었고 집집이선 갈에 추수한 곡식을 얼마만큼씩 사례로 주었다. 그는 종일 짚신을 삼아 장날이면 어깨에 짚신다발을 걸머지고 가서 팔았다. 그러나 늦게 돌아오는 그의 어깨엔 절반도 넘는 짚신다발을 도로 걸머지고 돌아왔다. 농촌의 마을엔 대개가 이 짚신할아범이 있어 짚신을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어 붙박이 장터사람들이나 몇몇의 뜨내기들한테나 상대하기 때문에 그랬을 거였다. 그리고 그때야말로 너나할 것 없이 얼마나 궁핍했던 때인가.

그런데 동네에 이 짚신할아범이 세상을 뜨고 얼마 안 돼 종방이라는 이름을 가진 총각이 들어왔다. 16살 남짓한데 이 동네서 40여리 떨어진 두메에 살다가 조실부모하고 외삼촌 집에 더부살이로 온 것이다. 한데 이 총각이 짚신을 잘 삼았다. 어른들이나 살림이 넉넉한 집 애들은 검정고무신을 신었지만 없는 집 애들은 그러하지를 못해서 이러한 애들에게 짚신을 잘 삼아주었다. 그리고는 짚신감발을 일러주었다. 짚신감발이란, 짚신을 신고 감발을 한다는 말인데 감발이란 버선 대신 발을 감는 끈 즉 발감개를 말하는 것으로, 버선을 신고 짚신을 신으면 헐떡거리지를 않지만 맨발에 신으면 헐떡거려서 불편하므로 버선을 신지 않는 애들은 꼭 짚신감발을 하라고 일러주었다. 그러는 그는 정작 짚신을 신지 않고 미투리를 신었다 미투리는 원래 삼이나 노 따위로 짚신처럼 삼은 신이데 두메에서 산 까닭인지 삼이나 노는 귀해서인지 대신 싸리나무껍질로 삼은 두메사람들이 흔히 신는 미투리 즉 ‘두메싸립’을 신는 것이다. 그래서 동네선 그러한 그가 특이해서 그를 가리켜 두메싸립이라 일컬었다. 이 두메싸립은 아이들에게 비 올 때 신으라고 굽이 높은 나막신도 잘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그는 발에 신는 걸 잘 만들었다. 그가 기거하는 방에 가 보면, 짚신을 삼은 뒤 모양을 다듬기 위해서 쓰는 여러 개의 나무 골을 볼 수 있는데 이걸 그는 짚신골이라 했다. 도회지의 구두를 만드는 양화점 선반에 칸칸이 진열돼 있는 크고 작은 갖가지 나무로 된 구두모형과 같은 거였다. 구두를 만들고 이걸 다듬기 위해 이 나무로 된 모형을 만든 구두에 끼우고 작은 망치로 토닥토닥 모양을 다듬는 것처럼 만든 짚신에 이 짚신골을 끼우고 다듬는 것이다. 이렇게 정성들여 만든 짚신을 아이들에게 주면서, 헤지게 되면 뒤집어 신으라고까지 말하면서 인색할 정도로 아껴 신길 권했다

이렇듯 짚신을 잘 만들고 절약정신을 본 동네구장이 읍내사람에게 말을 놓아 그를 서울의 양화점(洋靴店)으로 보냈고, 거기서 구두기술을 익힌 그 두메싸립은 장성해서 자신의 양화점을 크게 차려놓고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동네에 사는 그의 외삼촌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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