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나기황 논설위원 / 시인

[동양일보]“잘 부탁합니다.” 총선 전에 수없이 들어왔던 말입니다. 코로나 19의 혼란 속에서도 연일 ‘부탁합니다, 부탁합니다.’를 외치며 국민을 위해 열심히 일하겠다고 수많은 공약과 정치적 소신을 밝히신 여러분, 여러분의 부탁대로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습니다. 총선이 끝났습니다. 잔치였다면 잔치도 끝났고, 전쟁이었다면 전쟁도 끝났습니다. 잘살기 위한 선택의 축제였다면 즐거운 뒤 설거지가 남았을 테고, 잘하기 위한 격돌의 장이었다면 함께 협력해서 추슬러야 할 과제가 주어질 것입니다.

이제 “잘 부탁합니다.”의 공은 여러분에게 넘어갔습니다. 대의정치의 꽃은 선거이고, 선거의 정의는 이기는 거라 하지만 선거의 진정한 목표는 겸허히 유권자의 뜻을 받들어 성실하게 공약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언제 그랬냐는 듯, 금배지의 오만에 취해 갈지자걸음을 걷는 의원님들을 보아왔습니다. ‘공약(公約)’인지 ‘공약(空約)’인지 모르쇠로 일관하는 당선자들을 수없이 겪어왔습니다. 정치인이 필수적으로 갖춰야할 도덕적 덕목은 진정성입니다.

“진실을 말하라. 그러면 아무것도 기억 못 해도 된다.” 미국 작가 마크 트웨인의 말입니다.

지난 해, 1월 1일, ‘세계평화의 날’을 앞두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좋은 정치는 평화에 봉사합니다.”라는 담화문에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권력을 추구하겠다는 욕심이 남용과 불의를 이끈다는 것.

-정치인들이 정치 활동을 인류 공동체(국민)에 대한 봉사로 여기지 않을 때, 정치는 억압과 소외와 심지어 파괴의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

-모든 세대가 지니고 있는 잠재력을 확신할 때 참된 정치 생활이 쇄신된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각 정당에서 그리고 이번 총선후보들과 당선자들이 내건 정치적 소신과 가치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부탁합니다.” 문제는 실천입니다.

우리국민이 어떤 정치인을 보고 싶어 하고, 어떤 정책을 신뢰하고,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가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예가 있습니다.

기억하시겠지만, 미국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중앙방역대책본부장에게 ‘영웅’칭호를 붙이고 “전문 관료로서 자신의 안녕보다 대중을 보호 하는 데 헌신하고 있다.”고 극찬한 바 있습니다. 샘 워커는 그의 칼럼에서 본부장의 “일관되고 솔직한 언급, 정보에 근거한 분석, 인내심 있는 침착함은 대중에게 강력하다”라며 어떤 태도가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헌법 제7조 1항)를 그저 묵묵히 실천하는 한 관료의 진정성이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영웅’의 칭호는 군림하는 자의 명예가 아니고 봉사하는 자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코로나19 의료현장에 맨 먼저 달려가, “모두가 원했지만, 저는 운이 좋아서 지원인력에 선정될 수 있었습니다”라며 땀 젖은 방호복을 벗는 봉사자들, 모두가 영웅입니다.



영국 BBC방송은 코로나19를 대하는 세계의료진의 실태를 보도하면서 열악한 의료 환경 때문에 누구를 먼저 치료해야 할지, 누구부터 살려야할지 결정하는 심판자 역할까지 해야 하는 의료진들의 정신적 스트레스에 대해 ‘도덕적 상처(moral injury)를 입은 부상병’으로 규정했습니다.

부탁합니다. 전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코로나 19 대응처럼 정치도 진일보해서 국민적 자존심을 회복하고 살기 좋은 대한민국이라는 평을 받았으면 합니다.

다시 부탁합니다. 의원님들, 적어도 정치인으로 정치 일선에 나섰다면, 그리고 이번 총선으로 21대 국회의 새판을 짜야한다면, 지역주민과 국민을 1순위에 놓고 ‘일하는 국회’의 참모습을 보여주기를 바랍니다. 이번에야 말로 잘못된 선택을 후회하며 4년 동안 가슴앓이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부탁하며, 서로에게 감사하는 희망의 정치, 희망의 봄을 기대 합니다. 잘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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