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 논설위원 / 침례신학대 교수

김주희 논설위원 / 침례신학대 교수

[동양일보]과자를 좋아하는 친구는 그야말로 옛날식 과자 종류를 품에 그득 안고 부자가 된 것 같다고 했다. 과자 몇 봉지면 부자가 되는 그 친구를 못본 지도 꽤 되었다. 착한 눈빛으로 아픈 데 없이 잘 지낼 것이다.

전 세계 대격리 시절이라고 인류가 나중에는 기록하고, 이 질병도 정복해낼지. 쟤는 어릴 때부터 밥만 먹여놓으면 잘 놀았다는 말을 들어왔는데 주로 집 안에서 지내면서 과자를 집어들기 시작했다. 허기를 달래지도 않고 그저 먹는 촌스러운 일이 어쩌자고 제법 그럴듯해졌다. 누구는 가장 깨끗하게 치우는게 먹어치우는 거라고 그러기도 했다. 먹어치운다는 계륵스런 표현이라니. 먹는 방식으로 청소할 생각없고 엄청 맛나지도 않은데 능동적으로 먹고 있는 참말로 이상하고 아름다운 도깨비 나라스러워지는 건가 실소도 했다. 식구들은 나갈 일이 있으면 양식을 구해오듯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꾸러미 지어 왔다.

김장김치나 연탄을 더미로 준비해 놓고 엄마가 예전에 그랬을까, 먹고 살 준비했다는 그런. 굶기를 밥먹듯 했다는 말을 수사로나 듣는 세대이니 밥은 기본으로 해결되고, 그 다음도 있다고 확인하고 안도하는가 보다.

집 안에서 각자 격리하자는 시절이니 공장에서는 여전히 물건들을 찍어대고, 그걸 진열하고 사다 먹기도 하는 평범한 일상의 유지가 고맙고 소중해서 소심하게 과자봉지라도 당기면서 오랜만에 찾아온 반강제 휴식을 자축하자는 건지도 모르겠다.

안하던 짓 하는 걸 본 가족들은 반가워하다가 재미있어하다가 너무 많이는 먹지 말라고 조언처럼 과자를 건네기도 한다. 한 때 보냈던 말이 되돌아오는 셈이다. 세상에나, 내가 쏘아보냈던 말들이 그대로 내 과녁으로 돌아와 고슴도치처럼 온통 내 몸에 박힌다면 얼얼하게 아픈 말들이 하고도 많을까. 책임지며 살고 싶지만 허세로 부풀어 할 수 없는 일들을 도달할 수 있다고 믿어 괴로운 청춘시절을 거치면서 염원을 확신으로 알았을까. 하여 제 물에 제가 다쳤을까. 실력도 없이 역할에 단련되기를 꿈꾸었을까. 페르소나를 얼굴 위에 덮고 행인1쯤 되는 처지에 주인공인듯 잘 해보려고 그랬을까. 못미치는 자신까지 시시하기도 했을까.

일상은 두 얼굴이 있다, 마치 햇빛이나 시간처럼.

지금 일상은 삶이며 삶이 아니기도 하다. 크로노스와 카이로스의 자연적 시간과 질적 시간의 차원, 자라게도 하고 쇠하게도 하는 햇빛의 면모에서 지금 세계는 일하는 일상이 아니라 질병을 피하는 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이 질병이 지나가고 나면 인류는 다른 방식의 삶을 모색하게 될 것이다. 자연을 착취하다시피 이용해온 위험, 기술과 과학을 구원처럼 신봉하는 방식을 바꾸게 될까, 죽음의 위험에서 스스로 보호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선진국의 기준이 바뀔 것이라고 한다. 경제력 중심이 아니라 재해에 잘 대처하는 것으로.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선진국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도. 미래학자들은 우리 산업이 세계에서 더 신뢰를 얻고 그래서 세계의 공장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도 한다.

바이러스 잘 피하고 나면 온 나라가 잔치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죽음의 공포 넘어온 우리 목숨들을 서로 축하할 수 있으면 좋겠다. 평서문이나 명령문 만으로 살기는 너무 살벌하다. 감탄문이 필요하다. 바이러스 잘 피해 살아 남은 기쁨, 아깝게 진 목숨들에 대한 슬픔의 한 마당이 필요하다.

정치하는 이들이 전 국민에게 얼마씩인가를 쿠폰 형식으로 주겠다고 한다. 모두 어려웠으니 축하하자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경기가 어려운 이들에게는 절실할 것이고, 먹고 살만한 이들에게는 위로가 될 것이다. 그렇게 또 한 시절 잘 보내고 세금 정산할 어느 때 공정하고 차분하게 정부가 비율 조정하면 되지 않으려나. 잔치 마당에서는 다 같이 국수 그릇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차별받으면 섭섭하다. 기쁨이고 슬픔이고, 위로고 보장이고 학교급식 때처럼 다투느라 세월 보내지 말고 바이러스도 쿠폰도 신속하게 해결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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