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옛터

[동양일보 김미나 기자]이송순(대전시 유성구)씨의 단편소설 ‘황성옛터’가 21회 무영신인문학상 당선작에 선정됐다. 무영신인문학상은 한국문단에 ‘농민문학’이라는 새 이정표를 세운 ‘흙의 작가’ 이무영(1908~1960) 선생의 문학 혼과 작가 정신을 기리기 위해 동양일보가 제정한 상이다.

동양일보는 기성작가를 대상으로 하던 ‘무영문학상’을 18회로 마감하고, 19회(2018년)부터 신인 소설가를 발굴하는 ‘무영신인문학상’으로 전환해 시상하고 있다.

이번 공모에는 전국 각지에서 231편의 작품이 응모됐으며 문단 권위자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본상에 오른 10편의 작품 중 ‘황성옛터’를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시상식은 5월 7일 오전 11시 이무영 선생의 고향인 음성(충북 음성군 음성읍 석인리 오리골 이무영 생가)에서 열리는 무영제에서 진행된다.

21회 무영신인문학상 당선작과 당선 소감, 심사평을 싣는다. <편집자>



황성옛터

-이송순

황성옛터에 밤이 드니 월색 만 고요해

폐허에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라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가요 ‘황성옛터’ 중에서



저 나무에 잎이 지면 겨울이 오겠구나?

그날도 이맘 때였을 것이다. 제 임(任)을 다한 생이 떠날 때, 그날 나는 고개에 사는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니가 사는 고개에는 안개가 올라오고 있었다. 물 알갱이 같은 습기를 끌고 고개에 올라온 안개는 할머니가 사는 고개를 휘감았다. 나는 무겁게 가라앉은 발을 떼었다. 한 시라도 빨리 할머니를 봐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마주할 시간이 무겁게 했다.

그날 내가 할머니를 찾아간 것은 아버지 때문이었다. 갑자기 전화한 아버지는 할머니를 부탁한다고 했다. 나는 늦은 점심을 먹느라 알아듣지 못했다. 아버지가 전화가 없는 곳이니까 핸드폰을 잘 챙기라고 했을 때에야 고개에 사는 할머니가 위독하다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런 건 엄마에게 말하라고 했다. 그때 아버지가 한 번 더 할머니를 부탁한다고 했다.

작은 집이라고 하나 할머니는 아버지를 낳은 사람이었다. 아버지가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편히 살게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혼자 사는 것을 상관하지 않았고 식구들에게도 상관하지 말라고 말했다. 아버지는 할머니를 찾아가는 것도 못하게 했다. 언젠가 엄마가 소식은 알아야 하지 않겠냐고 했을 때도 상관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나에게는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이 있었다. 동생이 태어난 후, 나는 엄마가 버렸다고 생각했다. 어린자식을 더 챙기는 것이었는데 당시 나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아버지를 붙잡았고 아버지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려고 했다. 그 시간, 아버지를 따라 할머니를 찾아간 시간, 날 수로 따지면 삼십 일도 채 안 되는 그 시간이 할머니와 함께한 시간이었으며 그것이 그날 아버지가 나에게 부탁한 이유일 것이다.



할머니가 사는 집은 다 허물어진 오두막이었다. 서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다 허물어진 집은 지나온 시간을 지고 있었다. 시간에 눌려 둥그렇게 휘어진 기둥은 시커멓게 때가 올라 제 색을 잃어버렸고 군데군데 흙이 떨어져 댓살이 다 드러난 벽은 바람이 엉켜 들었다. 집은 달라진 것이 없었다. 시커멓게 때가 오른 기둥은 물론 바람이 엉켜 드는 벽까지, 집은 내가 아버지를 따라올 때와 똑같았다. 달라진 것은 부엌 앞에 있는 수도뿐이었는데-내가 아버지를 따라올 때는 펌프가 있었다-그것은 지나온 시간을 돋보이게 했다.

다 허물어진 오두막이었으나 마당만큼은 크고 넓었다. 그 터로 말한다면 텃밭 한 자락은 나오고도 남을 공간이었다. 어쩐 일인지 할머니는 푸성귀 하나도 심지 않았다. 풀 한 포기 없이 휑뎅그렁하기만 한 그 마당에는 습기가 돌았다. 마당에 도는 습기는 딴 세상에 떨어진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내가 더 이상 아버지를 따라오지 않은 것도 그 마당에 도는 습기 때문이었다. 나는 위 모서리가 틀어진 방문을 바라보았다. 할머니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때 한 노인이 모퉁이를 돌아 나오면서 말했다.

“뉘시유?”

“할머니가 위독하시다고……”

나는 엉겁결에 대답했다.

“욱이 딸인감?”

“……”

“그렇잖아두 전화혔으만, 아를 먼저 보내겠다구……”

“……”

“가만있자 그게 언제더라, 한창 클 땐 것 같은디……”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내가 누군지 알겄냐?”

“저기……”

나는 집 아래에 있는 밭을 가리켰다. 내가 아버지를 따라올 때는 그 밭에 집이 하나 있었다. 할머니가 사는 집과 비교해도 별반 나을 것 없는 그 집에는 안노인이 혼자 살고 있었다. 땅 한 마지기 없는 애옥살이에 남편이 죽자 자식들을 도시로 내보내고 혼자 살게 된 것이었다. 할머니와 달리 소탈한 성격의 그 노인은 아버지가 오면 팔을 저으면서 달려왔다.

그 노인이 와서야 할머니와 아버지는 얘기했다. 얘기라고 해봐야 노인이 묻는 것을 할머니와 아버지가 대답하는 것이었지만 노인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말하자면 그 노인은 하루 종일 있어도 말 한 마디 나누지 않는 할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가교 역할을 한 사람이었다.

“안녕하셨어요?”

“내사 뭐? 욱이는 외국이 있다구?”

“중국에……”

“밤이나 돼야 올 것 같다구?”

“비행기가 연착이 돼서요.”

“연착?”

“비행기가 늦어져서요.”

“비항기가……”

“거기는 자주 그러는가 봐요.”

“얼른 와야 헐 텐디……”

노인은 윗 모서리가 틀어진 방문을 열었다. 순간 모시냄새가 확 풍겼다. 할머니를 생각할 때 맨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 방에 짙게 밴 모시냄새였다. 모시냄새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었다. 오래 고인 웅덩이에서 나는 썩은 냄새 같기도 하고 묵은 천에서 나는 곰팡이 냄새 같기도 했다.

모시는 총 네 단계를 거쳐 만들어졌다. 첫 번째는 원료가 되는 태모시를 바래는 것이었다. 태모시는 모시풀의 속껍질을 벗겨서 말린 것으로 질이 좋은 것을 사야 잘 짤 수 있었다. ‘바랜다’는 것은 푸르스름한 태모시를 물에 담갔다가 널기를 되풀이하여 하얗게 만드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째는 것이었다. 째는 것은 하얗게 바랜 태모시를 엄지손가락에 감은 후 올을 잡아 이빨로 쪼개어 날을 만드는 것을 말했다. 세 번째는 삼는 것이었다. 앞니로 가늘게 쪼개서 만든 날을 침을 발라 이어서 실을 만드는 데 그것을 ‘삼는다’고 했다. 그때 사용하는 것이 ‘쩐지’라고 부르는 버팀목이었다. 두 개의 쩐지에 걸어놓은 날을 빼서 무릎 위에 올려놓은 후 침을 발라 이어 광주리에 담았다. 그런 식으로 날을 이은 모시가 광주리에 쌓이면 ‘모시굿’이라는 뭉치를 만들어서 습기가 많은 곳에 보관했다. 네 번째는 모시를 짜는 것이었다. 대략 열다섯 여섯 개 정도의 모시굿이 모이면 열 서넛 개는 도투마리에 감아 틀에 옮기고 나머지는 꾸리를 감아서 짰다.

할머니가 하는 일은 모시굿을 만드는 일이었다. 젊어서는 장마다 필을 내놓았지만 아버지를 따라올 때는 북을 놓은 다음이었다. 모시굿을 만드는 일은 이빨로 가늘게 쪼갠 날을 침을 발라서 잇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방에 짙게 밴 모시냄새는 할머니의 침 냄새라고 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모시냄새가 짙게 밴 그 방 아랫목에 누워 있었다.

할머니는 두 손을 가슴에 올려놓고 있었다. 두 손을 가슴에 올려놓은 채 반듯하게 누운 할머니는 살아있는 사람의 모습이 아니었다. 핏기하나 없이 바싹 오그라져 거죽만 눌러 붙은 얼굴은 빛이 없었고 가슴에 올려놓은 두 손도 축 늘어져 있었다. 살아있다 할만한 것은 가끔가다 내쉬는 숨뿐이었는데 그 마저도 진이 빠져 다 닳은 쇳소리가 났다.

“어떻게 된 거예요?”

나는 방바닥에 앉으면서 말했다.

“그저께 와 본게, 기운이 없다구 허더라구……”

“병원에는 간 거예요?”

“아침이 진료소장이 와 가지구……”

“뭐라고 하세요?”

“심장이 좋찮은 것 같다구두 허구, 혈압이 떨어졌다구두 허구, 자세한 것은 큰 병원이 가봐야 한다구 허드만.”

노인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럼 병원에 가야하잖아요.”

“느이 할머니가 어디 말을 듣는 사람이냐?”

할머니는 정말로 그랬다. 내가 아버지를 따라올 때 큰비가 내린 적이 있었다. 몇 십 년에 처음이라는 그 비는 산을 부수고 길을 끊었다. 할머니가 사는 집도 지붕이 내려앉았다. 비가 끝나기가 무섭게 달려간 아버지는 집을 짓자고 했다. 할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아버지와 노인이 집이 무너질 것이라고 말해도 꿈쩍하지 않았다. 결국 아버지는 지붕만 갈기로 했다.

“진료소장이 병원이 가자구 안 혔간, 그런디 느이 할머니가 말을 들어야 말이지, 안 가면 큰일 난다구 혀두 안 듣구……”

“할머니가요?”

“너두 본 게 있응게 느이 할머니를 모르지는 않을 게다.”

“그러니까 앰블런스를 불러서……”

“그랬다가는 느이 할머니 성격에 바루 뛰쳐 나오지.”

“그렇다고 보고만 있을 수 없잖아요.”

“아무래두 느이 할머니가 갈라구 하는 것 같다.”

“그럴 리 없어요!”

나는 열차게 외쳤다. 사실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날 열차게 외친 것은 그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기어드는 목소리로 말했다.

“잠깐 기운이 부쳐서 그래요. 병원에서 잘 치료하면……”

“아니다.”

노인은 잘라 말했다.

“느닷없이 누운 것두 그렇구, 자꾸 그 양반을 보는 것두 그렇구, 갈라구 그러는 것이 분명허다.”

“……”

“참 징그럽게두 살았지.”

“……”

“나 좀 봐라.”

갑자기 노인은 무릎을 치면서 일어났다.

“때 된 것두 모르구 얘기만 허구 있네, 얼른 저녁 헐 텐게 조금 지둘르거라.”

“생각없어요.”

“밥을 생각으로 먹냐?”

노인이 나간 후, 나는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나는 할머니에게 다가간 적이 없었다. 아버지를 따라올 때도 그랬다. 아버지를 따라오기는 했으나 할머니 옆에는 가지도 않았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부탁하지 않았다면 할머니는 생각도 하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나는 할머니를 가까이 보려고 몸을 구부렸다. 그때 딱딱하기만 한 할머니의 얼굴에 빛이 돌았다. 할머니는 가슴에 올려놓은 두 손을 잡았다. 황성 옛터에 밤이 드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에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

내가 저녁에 설거지를 하려고 나왔을 때 마당에는 안개가 하얗게 차 있었다. 할머니가 사는 고개를 휘감은 안개가 마당에 들어온 것이었다. 노인은 모시를 삼고 있었다. 할머니가 가늘게 째 놓은 모시 날을 잡아서 노인의 늙은 무릎 위에서 이었다.

“안개가 깊어요. 마당까지 꽉 들어찬 것이 딴 세상 같아요.”

“어째 날이 눅눅하더니만.”

노인은 모시 날을 잡으면서 말했다.

“댁에 안 가도 괜찮으시겠어요?”

고개에 사는 노인이 동네로 내려간 것은 몇 해 전이었다. 애옥살이에 도시로 나간 자식들의 도움으로 동네에 집을 지은 노인은 도시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온 아들과 살고 있었다.

“아까 애비가 올라왔을 때 말혔어, 오늘은 예서 자야 헐 것 같다구.”

노인은 모시 날을 입에 문 채로 말했다.

“모시는 뭐 하러요?”

노인은 무릎 위에 올려놓은 모시 날을 이었다. 노인의 몸에서도 모시냄새가 배여 있었다. 동네에 내려간 노인이 팔십 노구를 이끌고 고개에 올라온 것은 시간 때문이었다. 노인의 무릎 위에 모시 날을 이어온 시간이 고개를 오르게 한 것이었다.

“느이 할머니가 허다 만 게 뵈서……”

“힘들지 않으세요?”

“추저 가지구 삼이 좋구만.”

노인은 모시 날을 잡았다. 모시를 삼는 것은 가늘게 쪼갠 날을 잇는 것이었다. 이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 습기였다. 습기가 있어야 모시 날이 젖어 잘 이을 수 있었다. 반대로 습기가 없으면 모시 날이 말라 부서졌다. 모시를 짤 때도 마찬가지였다. 습기가 있어야 모시 날이 젖어 끊어지지 않았다. 모시를 짜는 방에 풀을 베다 놓는 것도 그와 같은 이유였다.

“저도 해 볼까요?”

“아서라! 이런 건 혀서 뭐 헐라구!”

노인은 고개를 흔들었다.

“이거 하면 돈 많이 벌어요?”

“돈은 무슨, 전이는 그려두 헐 만 혔는디, 중국산이 들어오구부터는 태모시 값 두 안나오는 구먼.”

“그런데 할머니는 왜?”

“느이 할머니야 지금두 여전하지, 굿이 좋은 게 한 번 산 사람들은 돈이 문제가 아니라구 느이 할머니 것 만 찾구.”

“그럼 할머니는 돈 많이 벌었겠네요.”

“벌라구 혔으면 벌기두 혔겄지.”

“그런데 할머니는 돈 보고 할아버지에게 접근했다고……”

나는 생각 없이 말했다.

“누가 그러더냐?”

노인은 모시 날을 잡다말고 소리쳤다.

“……”

“느이 할머니가 돈 부구 그렸다구?”

나는 깜짝 놀라 노인을 쳐다봤다. 할머니가 돈 보고 접근했다고 한 사람들은 고모들이었다. 고모들은 서방이 빨갱이 하다가 죽은 후 살길이 막막한 할머니가 할아버지에게 붙었다고 말했다. 고모들은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할아버지가 차에 쳐 죽지는 않았을 것이라면서 그 많은 전답을 잃고 떠돌게 된 것은 할머니 때문이라고 했다. 고모들은 그 일을 다 겪었는데 안 고스러지겠냐면서 큰할머니가 오십도 못 넘기고 죽은 것은 할머니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 욱이는 뭐라구 허구?”

“말씀이 없으셨어요.”

정말로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그것이었다. 할머니 때문에 큰할머니가 죽었다고 생각한 고모들은 매서웠다. 사실 그것은 아버지를 겨냥한 것이었다. 할머니에게 맺힌 것을 아버지에게 풀겠다는 것이었는데 어느 때는 그 정도가 지나쳐 고모들조차도 당황한 말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아버지는 듣기에도 민망한 그 말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당황한 고모들이 입이 붙었냐고 쏴 붙였을 때도 듣기만 했다.

“그렇게 말을 허믄 안되지, 아무리 생각이 없다구 혀두 그렇게 말을 허믄 안 되지, 안 되구 말구.”

노인은 모시 날을 이으면서 말했다.

할머니의 남편, 그러니까 육이오 때 빨갱이 하다가 죽은 새우젓장수는 외지인이었다. 새우젓장수가 동네에 들어온 것은 저녁이었다. 동네에는 안개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때 들어오는 안개는 짙었다. 안개는 순식간에 동네를 휘감았고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게 했다. 새우젓장수는 검은 상자를 안고 있었다. 안개 때문에 상자는 더 검게 보였다. 들일을 마치고 들어가던 동네사람들이 새우젓장수를 바라본 것도 상자 때문이었다.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비루먹은 나귀 꼴로 동네사람들에게 걸어온 새우젓장사는 징용 간 사람의 집이 어디냐고 물었다. 새우젓장사가 말한 집은 빈집이었다. 원래는 홀어머니와 아들이 사는 집이었는데 홀어머니가 징용간 아들을 기다리다가 죽은 후에는 비어 있었다. 새우젓장사는 검은 상자를 동네사람들에게 내밀었다. 새우젓장사는 유골이라도 돌아와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늦게 와서 죄송하다고 말했다. 새우젓장사는 징용 간 사람이 살던 집에서 살게 해달라고 했다. 동네사람들은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외지인을 들이는 것이 걸리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나 유골을 가져온 사람을 내몰 수 없었던 것이다. 동네사람들은 새우젓장사가 섞어드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결국 새우젓장사는 일을 얻지 못하고 새우젓장사를 시작했다. 이십 리 밖에 있는 포구에서 새우젓을 받아다가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파는 일이었다. 그러나 새우젓바텡이를 지고 동네를 돌아다니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몇 달을 못 버티고 떠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새우젓장사를 계속했고 삼 년이 지나서는 고개에 집을 짓고 장가를 들게 되었다.

옷 보퉁이 하나 들고 시집온 신부는 스물 안팎의 아름다운 처녀였다. 그 처녀가 바로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가난한 집의 둘째 딸이었다. 대대로 그 동네에 산 집이었으나 입에 풀칠도 어려운 살림이었다. 떨어지지 않는 가난에 진저리가 난 친정어머니는 입이라도 덜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때마다 찾아오는 새우젓장사에게 보냈던 것이었다.

할머니가 온 후, 새우젓장사는 달라지기 시작했다. 새우젓냄새가 밴 헌털뱅이에 반 짐승의 꼴로 다니던 것이 모양을 갖추었고 바싹 찌그러져 중늙은이 같아 보이는 얼굴도 살이 붙어 멀끔한 젊은이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들의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빨갱이라구? 그 양반은 죽을 때꺼정 빨갱이가 뭔지 두 몰랐을 거구먼, 마누라 데리고 자식들 키며 사는 게 원인 사람한티 빨갱이가 더 뭐여?”

“아니란 말씀이세요?”

“그늠들이 들어와 본 게 지들 맘대루 부릴 사람이 필요했던 거여. 그려서 걸린 게 그 양반이었지. 동네서 그중 천대받는 사람인 게, 그늠들이 말하는 생각인가 뭔가에 맞는 사람이라구 여겼던 게지. 츰에는 안헌다구 혔지. 그런 것은 모르는 사람이라구 혔지, 그렁게 그늠들이 느이 할머니를 두고 협박을 헌 거여. 시키는 대루 안 허면, 느이 할머니를 죽여버리겠다구, 그려서 헐 수 없이 헌게 그 노릇이었지. 그려두 모진 짓은 안 혔구먼, 모진 게 다 뭐여? 죽게 된 사람을 살려준 것두 여럿이었지, 순사를 하던 정이 아버지두 숨은 디를 들켜서 죽게 된 것을 그 양반이 갈쳐 줘 가지구 도망갔구, 아래뜸 진구 아들두 그렸지.”

그러나 동네사람들은 죽고 죽이는 소용돌이에 휘감겨 있었다. 순식간에 동네를 휘감은 소용돌이는 동네사람들이 지켜온 것을 내던지게 했다. 새우젓장수는 떠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할머니는 만삭이었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전쟁 중에 만삭의 할머니를 데리고 떠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목숨을 거는 일이었다. 결국 새우젓장수는 잡힐 수밖에 없었고 할머니는 상엿집에 갇히게 되었다. 그때 할머니를 찾아온 사람이 증조할아버지였다. 인근의 유지이자 유학자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던 증조할아버지는 살려주는 조건으로 손자를 낳아달라고 했다. 할머니가 증조할아버지의 조건을 받아들인 것은 칠일 만이었다. 이틀 후, 할머니는 새우젓장수와 함께 잡혀간 사람들이 수장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할머니는 무표정했다. 노인이 포구라고 가보지 않겠냐고 물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그럼 할머니는 할 수 없이……”

“만삭의 몸으루 껌껌헌 상엿집에 갇혀 무슨 생각을 혔겄냐? 남편은 생사를 모르구, 애는 태날라구 허구, 모르긴 몰라 두 그 칠일 새에 몇 번은 죽었다 살았을 거구먼.”

“아이는요?”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딸이었는데, 다섯 살을 못 넘기구 그만……”

“죽었어요?”

고개 밑에는 마르지 않는 샘이 있었다. 샘 옆으로는 큰 느티나무가 무성한 가지를 늘어뜨렸다. 언젠가 동네에 들어온 나그네가 물을 떠 마시고 심어놓았다는 느티나무는 무성한 가지를 늘어뜨렸고 그 둘레는 골이 흐르고 있었다. 근래는 물이 말라 샘물받이로 밖에 쓰이지 않지만 그때는 물고기가 올라올 만큼 깊었다. 샘은 동네사람들의 공간이었다. 아낙들은 안 일거리를 가져왔고 어머니와 누이를 따라온 아이들은 느티나무를 타고 놀았다. 잠깐 아주 잠깐이었다. 갑자기 뛰어온 계집아이의 말을 듣고 동네사람들이 달려갔을 때 아이는 물 위에 떠 있었다.

“즈이 어매 말이 읎으면 한 발짝 두 움직이지 않는 아이였는데, 그날은 어째 물이를 들어갔는지, 물이는 사람이 불러야 들어간다구 허드만은……”

“……”

“동네사람들 말대루 즈이 아버지가 불렀는지……”

노인은 광주리에 삼아놓은 모시굿을 방바닥에 펼쳤다. 모시굿를 사리는 것이었다. 모시를 삼다보면 날이 엉클어질 때가 있었다. 그럴 때 엉클어진 모시굿을 바닥에 펼쳐 고르게 담는데 그것을 ‘사린다.’고 했다. 그때 할머니가 가슴에 올려놓은 두 손을 잡았다. 황성 옛터에 밤이 되니 월색만 고요해 폐허의 설운 회포를 말하여 주노나 아 외로운 저 나그네 홀로 잠 못 이뤄 구슬픈 벌레 소리에 말없이 눈물져요……할머니가 노래를 부르는데도 노인은 모시굿 만 사렸다.

“그 늠의 것을 안즉 두 안잊어버리구……”

“아까도 할머니가……”

나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이구!”

노인은 모시 날을 잡으면서 탄식했다.

아이가 죽은 후, 할머니는 넋을 놓았다. 할머니는 먼 산 만 바라보았다. 할머니가 눈을 돌릴 때는 잘때뿐 이었는데 그것도 노인이 강제로 눕힌 것이었다. 그러다 사람 버리겠다고 생각한 할아버지가 의원을 데리고 왔을 때 할머니는 집을 나서고 있었다. 그간의 생활은 간데없이 출입복을 곱게 차려 입은 모습이었다. 할머니가 돌아온 것은 삼일이 지난 다음이었다. 노인이 밥 짓는 연기를 보고 뛰어 왔을 때 할머니는 밥상을 차리고 있었다. 할머니는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오다가 젓갈치를 받았는데 간이 잘 뱄다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그 간의 시간에 대하여 말하지 않았다. 노인 역시도 그것에 대하여 묻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 후로 혼자사신 거예요?”

나는 바싹 다가앉으면서 물었다.

“그렸지.”

노인은 대답했다.

“느이 할아버지가 그렇게 사정하는 데두 안 듣구.”

“할아버지가요?”

“할아버지가 느이 할머니를 애꼈다. 그냥 불쌍혀서 그런게 아니라 마음으로 애꼈다. 그런디 느이 할머니가 곁을 줘야 말이지, 느이 아버지 낳구는 발짝두 못 허게 혔다. 그래, 그게 독이 되가지구 노름에 빠지구 결국이 차에 쳐 죽지 않았냐? 그러니 느이 집이서 할머니를 그렇게 말하는 것 아니겄냐?”

“그럼 우리 집은 언제 동네를 떠난 거예요?”

“느이 증조할아버지가 가구 난 후게 한참 뒤지, 말이는 돈 때문이 떠났다고 하지만 그것은 다 느이 아버지 때문이다.”

태어나자마자 증조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떠난 아버지는 큰할머니의 아들로 자랐다. 아버지가 할머니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열 살 무렵이었다. 아버지가 어떻게 알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누구도 그것에 대해 묻지 않았고 아버지도 아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사립에 서 있었다. 식구들은 초조했다. 특히 아버지를 남은 생의 버팀목으로 생각했던 큰할머니는 애가 말랐다. 그해 가을, 뒷간을 나오다가 쓰러진 증조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큰할머니는 아버지를 데리고 떠났다.

“아버지는요? 아버지는 뭘 하고요?”

나는 큰 소리로 물었다.

“모질기두……”

“모질어요?”

할머니는 아버지를 모른 척했다. 아버지가 사립에 서 있을 때는 들어오는 바람이 불 때였다. 동네에는 큰 바람이 두 번 불었다. 첫 번째는 나가는 바람이었다. 나가는 바람은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갈 때 부는 바람을 말하는 것으로 생명을 끌어가는 바람이라고 하여 ‘나가는 바람’이라고 했다. 두 번째는 들어오는 바람이었다. 생명을 끌어오는 바람이라고 하여 ‘들어오는 바람’이라고 하는 바람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갈 때 부는 바람이었다. 들어오는 바람은 나가는 바람보다 약했으나 체감은 훨씬 강했다. 살 속을 파고드는 바람이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살 속을 파고드는 바람 속에 서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움쩍하지 않았다. 보다못한 노인이 몸이라도 녹이게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해도 듣지 않았다.

어느 날, 모시장에 가려고 나온 노인은 사립에 서 있는 아버지를 발견했다. 모시장은 새벽에 열렸다. 습기를 머금은 것을 불빛에 비춰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모시장이 열리는 곳은 십 리였다. 근래는 차가 닿아 십 분이면 갈 수 있었지만 그때는 한 시간을 걸어야 했다. 십리 길을 어둠을 더듬어 가자면 한 새벽에 출발해야 했다.

얼마나 서 있었던 것 일까? 아버지는 얼굴을 들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노인이 몸을 주무르고 나서야 얼굴을 들 수 있었다. 아버지는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노인이 뭐라고 할 새도 없이 고개를 내려갔다. 아버지가 다시 찾아온 것은 십오 년이 지난 다음이었다. 아버지는 전과 같이 사립에 서 있었다.

할머니는 꾸리만 감고 있었다. 어깨를 구부린 채 꾸리만 감는 할머니는 표정이 없었다. 사립에 서 있던 아버지가 할머니 앞에 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할머니는 미동도 없이 꾸리 만 감았다. 할머니가 꾸리를 놓은 것은 노인이 저녁이라도 먹여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한 다음이었다. 아버지는 보지도 않고 일어난 할머니는 부엌에 가서 쌀바가지를 들고 나왔다.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아버지를 미워하셨나요?”

나는 재우쳐 외쳤다.

“밉겄냐? 자식이 어매를 보겄다구 왔는디 밉겄냐?”

“그럼, 왜 그러셨는데요?”

“못나서, 사람이 못나서……”

“……”

“느이 집이 떠나구 삼 년이 지나서 친정어매가 찾어왔다. 여게를 떠나서 새루 살자구, 그 전이두 형제들이 찾아와서 말을 혔는디, 느이 할머니가 안 들응게, 친정어매가 직접 찾아온 거지, 자게 생각으로 여게루 보냈응게, 자게 때문이 그렇게 됐다구 생각 안 겄냐? 여게를 떠나서 새루 살자구, 그렇게 사정을 하는 데두, 느이 할머니는 꿈쩍을 안하는 거여, 여게를 떠나서는 안 산다구, 그렇게는 안 헌다구……”

노인은 모시 날을 입에 물면서 말했다.

“왜요?”

“죽은 사람이 뭐라구 그렇게 잡구 늘어지는지, 그러지 말라구, 그렇게 말을 허는 데두 안 듣구”

할머니는 죽은 사람이었다. 그날, 새우젓장수가 수장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그날, 죽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이 사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조각조각 끊어지는 삶, 떠다니기만 하는 삶을 이어다 붙이는 것이 죽은 사람이 사는 것이었다.

아버지에게 아주머니뻘 되는 일가가 회갑잔치를 하는 날이었다. 회갑잔치를 보고 돌아온 아버지는 취해 있었다.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방에 들어온 아버지는 할머니가 광주리에 삼아놓은 모시굿을 찢었다. 아버지는 말이 없었다. 할머니를 바라보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도 내색 한 번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아버지의 눈에는 날이 서 있었다. 그 동안 참아 누른 것이 한꺼번에 쏟아진 것이었다. 마당에 뛰쳐나온 아버지는 세간을 부수면서 울부짖었다. 그 소리를 듣고 뛰어온 노인이 아버지를 말렸으나 감당할 수 없었다. 말리다 못한 노인이 동네사람들을 부르려고 나섰을 때 할머니는 아버지를 붙잡았다. 할머니는 사납게 울부짖는 아버지를 붙잡고 말했다.

“미안허다구, 미안허다구, 이러구 살아서 미안허다구, 그래두 살란다구, 죽을 때 꺼정 살란다구……”

“어쩜 할머니는……”

노인은 말을 끊고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노인이 모시를 비벼서 번질번질한 무릎 위에는 잇다 만 모시 날이 놓여 있었다. 노인은 잇다 만 모시 날을 손에 쥔 채로 말했다.

“나는 느이 할머니가 눈물이 마른 사람인 줄 알었다. 그런디 그날, 느이 아버지를 붙잡구 우는디 눈물이 비오듯 허더라.”

“우셨어요?”

“느이 할머니라구 느이 아버지 안구 잡은 마음이 없었겄냐? 자게 삶의 추즌 독이, 그 독이 느이 아버지헌디 옮글 까비 그렸지, 그러구두 살아야 헌 게, 그것 밖이는 헐 것이 없은 게……”

아버지는 그대로 마당에 주저앉았다. 다 파한 장을 바라보듯이 넋 나간 얼굴로 앉아있기만 한 아버지는 할머니를 마루에 앉히고 마당에 흩어져 있는 세간을 주웠다. 세간을 줍는 동안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꾸 흘러나오는 눈물을 닦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마당에 찢어 던진 모시굿을 집어서 할머니에게 쥐어준 아버지는 옆에 앉았다.

“느이 아버지라구 느이 할머니 속을 몰랐겄냐? 알구두 답답헌 게, 그러구 사는 게 답답허

구 폭폭헌게 그렸지.”

“……”

노인은 모시 날을 이었다. 노인의 얘기 속에 할머니가 쩐지에 걸어놓은 모시 날은 사라지고 얼마 남지 않은 모시는 제 속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 양반허구 느이 할머니허구 참 재미지게 살었다. 암만 금슬 좋은 부부라두 살다 보믄 다투기도 허구 그러는 것 인디, 그 양반허구 느이 할머니는 그러는 것이 읎었다. 서루 애끼구 살피구, 그 양반이 워낙 올곧아 가지구 놀 줄 두 모르구 일만 허는 사람인디, 그 노래는 그렇게 좋아혔다.”

“노래요?”

나는 얼굴을 찡그리면서 물었다.

“말이 그렇지, 새벽이 일어나 가지구 새우젓바텡이 지구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는 일이 얼매나 고단허겄냐? 저녁이 집이 오며는 축 처져 가지구 일어서지두 못혔다. 그러면 느이 할머니는 술 한 사발 받쳐 들구 가서 노래를 부르는 거라.”

“그럼 아까 할머니가 부른 노래가……?”

“……”

“그런데 노래가 이상해요?”

나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말했다. 사실 그 노래는 내가 싫어하는 노래였다. 텔레비전을 보다가 그 노래가 나오면 채널을 돌렸다. 자지러지는 감정이 싫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날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는 달랐다. 무엇보다 다른 것은 노래를 부르는 얼굴이었다. 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감정을 끌어내려고 온 얼굴을 찡그리는데 할머니의 얼굴은 편안했다. 그 얼굴로 만 본다면 낮잠을 즐기고 있다고 해도 믿을 만 했다.

“이상혀?”

“편안해요. 분명 그런 노래가 아닌데……”

노인은 대꾸 없이 모시 날을 잡으면서 말했다.

“저녁이 서러지 할라구 나와 보며는, 여기 마당이 가뭇헌디, 느이 할머니는 노래 부르구 그 양반은 눈을 이윽히 감구……”

“……”

“그 모습이 얼매나 정겨 뵈던지 이 시상 사람들 같지 않었다.”

나는 그날 그 고개에서 노래를 두 번 더 들었다. 두 번째는 아버지가 문지방을 넘은 다음이었다. 아버지를 따라 할머니 앞에 앉은 나는 은은하게 흐르는 노래를 들었다. 노래는 그날 고개에 하얗게 찬 안개 속으로 흩어 들었다. 나는 그 고개를 잊지 못할 것이다. 할머니가 산 집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그 위에 차들이 달리는 데도 잊지 못하는 것은 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세상에 이름 한 자 남아있지 않은 할머니가 곡진하게 쌓은 성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중에 그 고개가 없어지고 낯모르는 사람들이 살아도 성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이송순
이송순

 

●작가 약력

1969년 충남서천 출생

대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당선소감

“그 늠의 게 그렇게 어려우면 그 늠의 거 안혔으면 좋겄다.”

제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가 한 말이었습니다. 저는 화가 났습니다. 응원을 못 할망정 꼭 그렇게 초를 쳐야 하는 가? 그때 그 말이 사랑이었다는 것을 알게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몇 년이 지난 다음이었습니다. 그제야 저는 아버지를 헤아리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이 소설을 쓰겠는가? 저의 소설은 그때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지나온 것을 버리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어려운 것은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한 자리에 서 있는데 시간은 훌쩍 지나갔습니다. 갈수록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에 눌리면서도 놓지 않은 것은 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그 시작이 옳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멍했습니다. 저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삼 년 정도는 지나야 한 발을 디딜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상보다 빠른 결과에 생각나는 사람이 많습니다. 먼저 아버지, 분명 아버지는 마뜩찮아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늠의 것을 뭐 허러 헐라구, 아버지는 언제나 그렇듯 편히 사는 것을 우선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가 있어서 제가 서 있습니다. 언제나 마음 졸이며 지켜본 형제들, 큰 힘이 되었습니다.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타박하면서도 믿어준 이진우 교수님, 언젠가 될 것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저에게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물정 모르는 저를 잘 이끌어준 친구들,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세상에 발을 디디지 못했을 겁니다. 그 외 저를 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당선작, 가식 없는 문장에 특이한 구성력

총 응모작 231편 중 본심에 올라온 것이 10편이었다. 이 가운데 ‘종점’ ‘유효기간’ ‘숨’ ‘황성옛터’ 4편이 최종 논의대상으로 남았다.

‘종점’은 제목이 버스종점과 인생종점을 복합적으로 암시하면서, 직장인들의 공감요소가 많을 소재에 모자이크 방식을 택한 구성이 특이한 편이다. 그러나 기시감(旣視感)을 면키 어려운 데다, 상사의 갑질을 증오하고 경멸하던 주 인물이, 승진 후엔 자신도 그 행태를 답습하다가 불행한 종말을 맞게 된다는 설정은, 이 작품의 주제를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유효기간’은 시한부 선고를 받고 가사와 직무와 죽음의 공포, 그 어느 것에도 자유로울 수 없는 직장여성의 절박한 현실을 비교적 실감 있게 그렸다. 소설이 잠시의 흥미나 소일거리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감동과 치유의 한 방편이 되고자 한다면, 현실에 굴복, 좌절하지 않고 구원의 길을 모색하는 강인한 인간상을 제시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절박한 현실과 맞서 있는 이 작품 속의 인물상이 과연 얼마나 그에 부합하는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숨’은 피를 나눠 마신 결의형제처럼 해녀의 생명인 ‘숨’을 나눠 마신 은인의 덕으로 성장한 주 인물이, 우연히 사건 현장을 접하게 된 미묘한 상황 때문에 은인을 배반한 것으로 오인(誤認), 평생 갈등의 사슬을 벗지 못하고 살아온 얘기를 무리 없이 그렸다. 문장력도 우수한 편이다. 오인의 근원이 된 사건이나 갈등 노출 이전의 성장 과정이 다소 장황하기 때문에, 흥미와 긴장감이 반감되고 결말은 안이하게 처리된 느낌이다. 주제와 직결되는 요소들을 어떻게 배열하는 것이 효과적일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황성옛터’는, 제목이 단순한 노래 가사 인용이라기보다, 좀 더 다양한 의미를 함축시킨 것으로 짐작된다. 손녀의 시선을 통해 보여주는 할머니의 현재 모습과 이웃 노파가 들려주는 할머니의 과거 모습, 시차가 있는 두 장면을 오버랩 시켜 사건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특이한 구성으로 할머니의 일생을 조명했다. 빈곤과 전란, 남존여비 시대의 험난한 풍파에 시달리며 인내와 극기, 절제로 자신의 길을 지켜 오는 동안 첩첩이 한(恨)을 쌓아 온 불운의 여인상을 액자소설 형식으로 그려냈다. ‘황성(고립된 삶)’은 사랑과 지조, 모성을 지키기 위해 할머니가 쌓은 한의 성이요, 그것을 무너뜨려 ‘옛터(궁핍한 삶)’만 남게 한 것은 잔인한 시대의 횡포였다. 가식 없는 문장은 다소 투박한 느낌이지만 상황전달에 무리가 없으므로, 당선작으로 미는 데 긴 시간 걸리지 않고 심사위원들의 합의가 이뤄졌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내며 정진을 빈다.

-심사위원 김봉군(문학평론가), 박희팔(소설가), 안수길(소설가)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