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황아’란, 끈목(대님, 허리띠 따위), 담배쌈지, 바늘. 실 등의 모든 자질구레한 일용잡화를 일컫는다. 그래서 ‘황아장수’ 하면, 지난날 자질구레한 일용잡화를 여자장수는 머리에 이고 남자장수는 등에 지고는 집집을 찾아다니며 파는 장사꾼을 말한다. 지금도 황아장수가 있다. 1톤 트럭에 포장을 치고 그 포장 안에 설치한 선반에 갖가지 일용잡화를 싣고 시골의 고샅 고샅을 다니며 녹음방송으로 그 대표되는 일용잡화를 읊어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황아장수라 하지 않고 이동슈퍼마켓이라 하여 여러 동네 곳곳을 누빈다. 그러나 옛날 황아장수나 이동슈퍼마켓은 둘 다 집집이나 곳곳을 찾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것은 같다. 따라서 이들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사람 접촉이 많아 듣고 보는 것이 많은데, 특히 옛 황아장수는 집집을 방문하며 사람을 접촉하기에 중매를 더러 섰다. 어디에 총각이 있고 어디에 규수가 있다는 정보에 밝아 연을 맺어주는 것이다.

“‘갖은 황아라’ 는 말이 있잖여. 곧 황아장수는 여러 곳곳 집집을 찾아다니며 갖은 사람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대개가 성질이 고약하고 질병 따위를 많이 지니고 있다는 말 아닌가?” “맞는 말인디, 긍께 자네 말은 물건을 팔기 위해 그럴듯한 말로 상대방을 속이기 일쑤여서 믿을 만 하지 못하다는 것이고, 여기저기 두루두루 돌아다니기 때문에 그만큼 나쁜 병도 많이 지니고 있을 수가 많다는 말 아닌가?” “그게 그 말인데,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아녀. 우리 마을에 드나드는 그 황아장수 아줌니 아녔으믄 새뜸에 사는 두설이가 늙은 총각신세를 면치 못했을 거 아녀.” “맞어, 그로 보면 참 좋은 황아장수도 있는겨.”

새뜸에 사는 두설이는 홀어머니와 근근히 사는데 서른아홉 되도록 장가를 못가고 있었다. 사람은 근실하고 허우대도 좋은데 사는 게 궁핍하고 홀로된 그의 엄니가 앞을 못 보았다. 그게 애를 낳는 족족 살지를 못한 것이고 끝으로 두설이 하나를 건졌는데 게다가 남편이 두설이 본 것이 좋아 장날에 약주를 좀 과하게 들고 비틀비틀 집으로 오다가 차에 치어 죽은 것이다. 이때부터 앞을 못 보기 시작했다는데 그래도 두설이 하나 바라고 살아가는 홀어미이고 얼른 짝맞추어주는 게 원이었다. 이건 동네의 안타까움이기도 했다. 해서 동네아낙들이 앞장섰다.

“아줌니, 아줌니는 여러 군데 디니니께 우리 두설이 총각에 걸 맞는 배필감도 아실 것 아녀유?” “그러요, 있지요. 윗녘 규순데 서른다섯이 되도룩 아직 처녀여요. 여덟 살에 조실부모하고 그 동네서 제일 부잣집에 드난살이 하고 있는 노처녀예요. 사람은 방짜지요. 그려 여기 총각하구 잘 맞겄네!” 이래서 둘은 부부의 연을 맺었고 그 앞 못 보는 두설의 어머닌 바라고 바라던 손자를 보고는 일흔여섯으로 세상을 등졌는데 그 황아장수 아주머니 공을 늘 잊지 못해 자식내외에게 그 은덕을 잊지 말라고 당부하곤 했다. 어머니의 당부도 그러려니와 그 황아장수 아주머니의 사람 됨됨이에 끌려 두설은 어머니로 그 안에선 친정어머니로 대우해 섬겼다.

동네아낙들은 그 황아장수 아줌니를 고맙게 여겨 그녀를 기다려 물건을 사주었고 그녀도 또한 물건 값을 다른 곳보다 헐하게 팔았다. 그러하니 두설내외와 동네사람들 그리고 그 황아장수 아줌니는 이심전심으로 아주 한 동네사람으로 되었고 마침내 그녀는 뜨내기 생활을 접고 아예 읍내 장터에 황아전(황아를 파는 가계)을 차려 붙박이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러는 데는 두설이 내외와 동네아낙들의 울력이 컸다. 두설이 점방의 자리를 알아보는 데 앞장섰고 동네아낙들도 자신들은 물론이고 이웃사람들까지도 그녀의 황아전 이용을 권장하니 황아전은 날로 번성했다.

그때는 장년이었던 지금의 동네 노익장들은 회고한다. “참 많이도 변했어. 읍내 장날에 가보믄 난전에 온갖 잡화를 벌여 놓았는디 없는 게 없더구만. 그야말로 처녀불알만 없지 다 있으니 말여.” “읍내 한복판에 있던 황아전 말여, 그 아들 때에는 ‘잡화상’으로 간판이 걸리더니 요즘엔 ‘만물상’으로 또 바뀌었더구먼.” “그 손자가 하고 있댜. 읍내선 젤 크다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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