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기 논설위원 / 한국교통대 교수

홍연기 논설위원 / 한국교통대 교수

[동양일보]그리스 신화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Gaia)에서 비롯된다. 굳이 대지를 뜻하는 가이아가 여신인 것은 대지가 만물의 어머니이고 만물의 근원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가이아는 태초의 혼돈의 공간인 ‘카오스(Chaos)’에서 탄생했으며 하늘의 신 우라노스, 산의 신 우로스, 바다의 신 폰토스를 낳았다. 이후 아들인 우라노스와의 사이에서 크로노스 등 12명의 티탄과 천둥, 번개, 벼락을 뜻하는 퀴클롭스 3형제 등을 낳았다. 우리가 흔히 그리스 신화의 대표격으로 알고 있는 제우스(Zeus)는 크로노스의 아들이며 가이아의 손자이다. 가이아는 마냥 풍요와 번성만을 의미하지는 않아서 자식을 학대하는 우라노스에게 참혹한 복수를 하기도 했다.

영국의 유명한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James Lovelock)은 1972년 지구가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가설을 바탕으로 ‘대기권 분석을 통해본 가이아 연구’라는 단 한 페이지짜리 논문을 발표하였다. 이것이 오늘날 가이아 이론으로 알려진 지구 생명체론의 시작이었다. 가이아 이론은 지구는 하나의 생명체처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가설에서 시작한다. 즉, 지구에 있는 모든 개체는 다른 개체를 위해 각자 상호보완적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에 아주 오랜 세월 동안 변화무쌍한 기후적, 지질학적 변동에도 불구하고 바다의 염분 농도는 여전히 일정하게 유지되고, 지구의 기온은 생물의 생존에 적합한 범위 내에서 유지될 수 있었으며, 그리고 지구의 모든 생물들 역시 생존에 적합한 방향으로 진화를 거듭하는 등 지구는 항상성을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러브록 스스로는 이와 같은 지구의 자기조절작용에 대한 신념으로 지구 환경의 지속성을 믿어왔으나 2006년 그의 저서 ‘가이아의 복수(Revenge of Gaia)’에서는 인류 문명화에 따른 환경오염 등이 지구를 회복불가능하게 만들 수 있다고 입장을 번복하기에 이르렀다.

지구가 마치 하나의 생명체와 같다는 가이아 가설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할 명백한 증거가 없기 때문에 주류 과학계에서는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았었다. 그러나 폭주하는 인류에게 다가올 지구적 재앙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서 가이아 이론은 새삼 주목할 만하다. 최근 수 개월 여간 코로나 19로 인한 록다운(Lock down, 봉쇄령)과 각종 경제적․사회적 활동의 제약만으로도 지구환경의 급속한 개선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지난 1월과 2월 중국의 우한지역 근처의 이산화질소의 농도가 전년대비 현격하게 줄어들었고 이탈리아 북부는 그 농도가 전년대비 40%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지난해 봄과는 달리 올 봄에는 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을 즐길 수 있었다. 사람의 활동이 뜸해진 곳에서 야생돌물들이 출몰하기 시작했고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았던 베네치아의 운하에서는 물고기들이 훤하게 보일 정도로 수질이 개선된 사례도 보고된 바 있었다. 코로나 19로 인한 세계 각국의 경제활동이 봉쇄되고 사람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일시적이긴 하지만 지구 환경이 회복된 것은 분명한 사실인 셈이다. 전 세계 의료진들이 코로나 19와의 치열한 전쟁을 치르는 동안 일군의 과학자들은 경제활동이 멈추고 많은 사람들이 사회활동을 못하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생태학적인 변화를 평가하고 있는데 그 평가결과에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2019 유엔 기후변화협약총회(COP 25)에는 전 세계 200여 개국, 2만 명이 넘는 각국 정부 대표단들이 기후변화에 대응하고자 머리를 맞대었지만 별 다른 소득 없이 회의를 끝낸 바 있었다. 회원국들은 기후 변화를 막기 위해 긴급한 행동이 요구된다는 정도의 원론적인 수준의 합의만 이끌어 냈을 뿐 각 국가별 입장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이행 및 지원 여부에는 심각한 이견만을 노출 했었다. 심지어 총회 의장국인 칠레의 캐롤라이나 슈미트 환경장관은 “지금 우리는 벼랑 끝에 서있으며 이번 회의에서 국제사회가 아무런 합도 도출하지 못해 슬프다”며 유감을 나타냈었다.

세계 각국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경제적·사회적 활동을 잠시 멈추게 된 지금, 공교롭게도 우리는 지구의 놀라운 회복력을 지켜보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가 코로나 19이전으로 완벽하게 돌아갈 수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비록 코로나 19를 비롯한 각종 감염병을 극복하는 것이 지상과제이지만 인간의 활동이 멈춰선 지금 지구가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을 보면서 지속가능한 성장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가이아의 복수가 실행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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