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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포럼<121>/노철개벽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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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양일보
  • 승인 2020.05.10 1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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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대 중반에서 철학하는 나날⑪

[동양일보]9월 18일 수요일

어젯밤 손자 믿음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보통 때보다 아주 늦게 잠자리에 들어서 그런지 오전 4시 20분이 되어서야 눈이 떠졌고, 언제나처럼 기상전의 몸과 마음의 운동을 마치고 화장실에 갔는데, 변이 완전히 막힌 것을 알게 되었다.

생활환경을 바꾸거나 음식이 많이 달라지면 드물게 일어나는 고통스런 증상이다. 2회의 관장과 여러 가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전혀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아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천천히 대처하기로 결정하고 우선 목욕을 하며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기로 했다.

인내심을 갖고 고통을 이겨내고 있었는데 오전 8시 50분에 드디어 해결이 되었다. 심한 고통이 시원한 쾌감으로 근본전환 되는 순간이다. 그동안 계속해온 양생실천이 어떤 상황적 변화 때문에 발생한 내장환경의 악화와 거기에 따른 병리증상에 대해서 자력으로 대처하고 잘 극복할 수 있는 자연치유력을 키워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말끔하게 씻어지고 비워진 내장 상태에서 오전 9시 50분에 계피+생강+코코아+레몬+올리고당차, 오전 11시 55분에는 섭씨 60도의 온수+레몬즙 한 컵을 마시며 빈속을 안정시켰다.

잠자리가 달라지고 물과 공기와 음식이 크게 달라지면 젊을 때보다 더 민감해진 노경의 내장감각이 더 심각한 위험을 경고해주는 것 같다. 항상 조심해야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장내의 적폐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재조정이 필요했다. 나이들면서 두뇌의 지식보다 내장의 지혜에 더 자주 의지하게 되었다.



9월 19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가천대 객원교수이며 전 경기도 문화재전문위원 김주미씨를 초청해서 한국노인교육의 현주소와 향후방향이라는 제목의 말씀을 듣고 유성종 동양포럼위원장과 김용환 충북대교수와 함께 넷이서 Q&A와 깊은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김주미씨는 △100세 노인시대의 양질의 삶 영위를 위한 노인교육의 필요성 △노인교육과 한국인문학의 현주소 △인문학을 대표하는 역사와 문화 △인문학을 통해 인간문제와 노인문제의 답을 찾자 라는 4가지 소제목으로 그동안 대학이나 문화원등에서 노인교육을 담당해왔던 경험과 고민과 개선방안들에 대한 소견을 발표했다.

그리고 김용환 교수의 코멘트가 있었고 유성종선생의 동양일보사 ‘장수사회 철학하는 삶’ 공개강좌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나 자신의 소감은 3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오늘의 한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노인교육은 예체능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양질의 인문학적 교양을 공유하는 공동학습이 보충, 보완 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함께 확인 할 수 있었다. △양질의 인문학적 교양의 내용이 역사와 문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나 자신의 개인적인 견해는 21세기의 인문학이 미래학적이며 비교문명론적인 상상력, 사고력, 실천력 함양을 중심과제로 하는 인문학의 구조개혁이 필요하다는 점을 피력했다. △고전학습의 필요성은 여전하지만 훈고학적, 자구 해석적 독법은 인공지성의 몫으로 전환하고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의 도래에 적절히 대응, 대처, 진화할 수 있고 자기와 타자의 미래공창적 상화력, 상생력, 공복(共福)력의 원천으로 삼고 새로운 각도에서 새로운 읽기를 과감하면서도 슬기롭게 체득해나갈 필요를 절감한다.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인문학적 교양은 인생 50년 시대를 위한 지식과 기능과 능력을 기르는데 중심이 놓여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인생 100년 시대에 걸맞는 인문학적 교양은 지식과 기능과 능력을 AI에 맡기고 AI에게는 인연이 먼 지혜와 경륜과 내공을 길러가는 방향으로 재편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9월 20일 금요일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노인교육은 주로 중장년 세대(40·50·60대)가 노숙년 세대(70·80·90세대)에게 제공하는 것은 오락‧위로‧격려의 서비스프로그램으로 되어 있다.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중장년세대 중심의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의 일방적 메시지 전달이다.

그것은 청소년세대(10·20·30세대)에게 제공되는 교육프로그램 역시 중장년세대의 인생관, 세계관, 가치관에 기초한 지식과 기능과 능력을 주입, 전달, 계발하려는 것과 거의 같다. 그래서 계획적으로 중장년세대 중심의 인간, 사회, 국가를 정착시키려는 것이다. 교육이란 주도세력의 가치의식에 맞게 개인과 집단을 가르치고 기르는 것이다.

그러나 중장년 세대가 청소년 세대와 노숙년 세대를 가르치고 키운다는 생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한다. 3세대의 공동학습, 상호학습, 발달학습으로의 발상전환이 필요하고 중요하다.

중장년 세대는 일찍이 청소년 시기를 경험했지만 노숙년 시기를 경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올바른 인식, 이해, 파악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가르치기 보다는 배워야 할 것이 많다.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니라 서로가 함께 배운다는 생각이 기본이 되어야 한다.

교육이 아니라 학습이다. 강연이나 강의가 아니라 대화가 주축이 되어야한다. 3세대 공동학습사회를 이룩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9월 21일 토요일

이번에는 26일 만에 한국에 돌아와서 3일째 된 오늘, C씨와 J씨를 만나 함께 점심식사를 하면서 우정 어린 담소를 나누었다. C씨는 3개월 전에 만났을 때보다 훨씬 수척해 보였고 머리도 아주 하얗게 변했다. 걸어 다니는 데도 몹시 힘겨워하는 모습이 역연했다.

누구나 80대가 되면 그렇겠지만 정말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 지금같이 이렇게 함께 즐거운 시간을 갖을 수 있다는 것을 소중하게 여겨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J씨도 겉으로 보기에는 정상적인 건강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아서 안심했는데 좌골에 이상이 생겨서 여러모로 불편하고 가끔 통증이 심한데 여러 가지로 대처하고 정기적으로 약물치료도 받고 있는데 어느 시기까지 견디다가 결국 수술 받아야 될 것 같다는 말을 듣고 고령기를 살아가는 노년기의 아픔과 괴로움은 공통체험이구나 싶었다.

그러다가 화두가 자연스럽게 죽음으로 옮겨졌다. C씨는 요즘 죽음이 아주 가깝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어렸을 때 예배당에서 주일학교선생님에게 들었고 그 후에 목사님의 설교나 자신이 직접 신구약성경을 읽고 믿게 된 영생관을 생활신조로 삼고 있어 두렵지는 않지만 혹시 남들에게 폐를 끼치는 과정을 오래 겪게 되면 어떻게 하나 라는 생각을 하면 몹시 걱정이 앞선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J씨는 기독교적 영생관과 불교적 열반관 사이에서 어느 한쪽을 택하지 못하고 있다는 솔직한 입장을 말했다. 내 생각은 어떠냐는 질문이 있었고 두 친구들의 진솔한 자기 고백을 들었기 때문에 현재의 나의 소신을 말했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것은 우주생명이 개체생명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이고 죽는다는 것은 개체생명이 본래의 우주생명으로 돌아가는 것이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가 일생, 생애, 수명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그래서 기독교적 영생관의 ‘영생’이나 불교적 열반관의 ‘열반’이나 내가 체감, 체험, 체인 하는 ‘우주생명’이라는 것이 실질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서로 건강을 염려했고 살아있는 동안 아픔과 괴로움보다는 기쁨과 즐거움이 많기를 기원하면서 가까운 시일 내에 재회를 다짐하면서 헤어졌다.



9월 22일 일요일

어렸을 때와 젊었을 때 제대로 배우고 익혀두었어야 할 바른 자세와 습관 기르기를 소홀히 한 탓으로 나이 들어 겪게 된 아픔과 괴로움을 통해서 많은 반성을 하는 나날이다. 늦게나마 삶이란 자기수련이요 자기계발이요 자기개벽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더도 말고 아주 기본적인 신체적, 정신적 건강과 경제적 자립과 지적활동을 유지, 계속, 전개해 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 내 나름의 생활 규칙을 세우고 준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1. 아침에 온수 두 컵, 정오에 온수 한 컵, 저녁에 온수 한 컵을 레몬즙을 넉넉히 섞어서 마신다.

2. 다행히 식욕은 왕성하지만 과식 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식사시간을 엄수한다. 아침식사 오전 7시 30분, 점심식사 낮 12시, 저녁식사 오후 6시.

3.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최대한 노력한다.

4. 아침에 일어나서 30분, 오후에 30분, 자기 전에 30분 걷는다. 가슴을 펴고 어깨를 세워서.

5. 항상 보다 나은 미래를 그려본다.



9월 23일 월요일

나는 틀림없이 85세의 늙은이=노인이다. 고령자라고해도 좋고 장수자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나이든 사람이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다. 말뜻은 같은데 느끼는 바는 조금씩 다르지만 나는 어느 말도 특히 선호하거나 기피하지 않는다.

나의 관심은 나 스스로가 어떤 늙은이냐라는 데 있다. 남이 규정하기 전에 나 스스로가 꼼꼼히 생각해 보았는데 기인한 현상에 상도했다. 나라는 한 노인이 때에 따라 곳에 따라 여러 노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그것이 모두 ‘나’라는 한 노인이라는 것이다.

특히 요즘들어서 자주 체감되는 모습 가운데 대표적인 것만을 추려서 라틴어와 한자와 우리말로 표기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Senex cogitans─思老 ─생각하는 노인

2. Senex indignans─憤老─분노하는 노인

3. Senex felix─福老─행복한 노인

4. Senex curans─慮老─ 염려하는 노인

5. Senex sperans─望老─ 희망찬 노인

6. Senex ludens─遊老─ 노니는 노인

7. Senex amans ─愛老─ 사랑하는 노인

8. Senex generativus─産老─생산적인 노인

9. Senex locutus─言老─말하는 노인

10. Senex cantabundus─歌老─노래하는 노인

하나이면서 여럿이고 하나로 수렴되는가 싶으면 여럿으로 확산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고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폭을 지니는 가운데서 유연한 불확정성, 불확실성, 비결정성을 특징으로 하는 ‘한’ (=桓=汗=韓 :한국의 고유의 사상적 핵심개념)이 나 자신의 몸과 마음과 얼을 통해서 늙음=나이듦=노화=고령화가 결코 ‘일이관지(一以貫之 :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한 곬으로 이어지는 것)가 아니라 다양한 변화와 예기치 못한 굴곡으로 흥미롭게 전개되는 경이로운 과정임을 보여줌으로써 한 철학적 자각에 이르는 단초가 되는 것 같다.



9월 24일 화요일

왠지 오늘은 이른 아침부터 ‘Nella Fantasia’라는 노래가 내 노년의 가슴 깊숙한 곳에서 맴돈다. 최성봉씨와 바다해씨, 사라 브라이트만, 그리고 많은 유명한 국내외 가수들이 부르는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면 매번 그 감동이 새롭다. 한국의 현실과 내가 그리는 우리나라의 모습 사이의 간격을 어떻게든 메꾸어 보려는 내 나름의 필사적 노력이 하나의 외국 노래에 대한 애착으로 농축 되는 것 같다.



Nella fantasia io vedo un mondo giusto

(환상 속에서 나는 하나의 정의로운 세계를 본다.)

Lì tutti vivono in pace e in onestà

(모든 사람들이 평안함과 정직함 속에서 살아가는)

Io sogno d'anime che sono sempre libere

(나는 언제나 자유로운 영혼을 꿈꾼다)

Come le nuvole che volano

(막힘없이 떠돌아다니는 구름처럼)

Pien d'umanità in fondo all'anima

(영혼 속 깊은 곳까지 인간애로 충만한)



왜 내가 오늘 하루 종일 노래를 몇 십 번 들으면서 이탈리아어 가사에 담긴 뜻을 깊이 살피는데 열중 몰입했을까?

기회는 평등하고 절차는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로운 사회,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한 좋은 나라를 만들겠다고 힘주어 말했던 지도자의 선언이 소수의 특권층에게만 주어진 기회와 자기진영에 속하는 자들에게만 공정한 절차와 불의, 불신, 불법으로 얼룩진 사회, 그래서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괴상망측(怪常罔測)한 나라로 전락한 우리의 현실의 한가운데서, 그래도 내가 사랑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어머니나라요, 아버지나라이기에 내가 거기서 영혼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세계–나라–사회를 상상하는 데서 오늘을 견디고 내일을 기대하는 힘을 얻으려는 몸부림이다.

흔히 젊은이는 미래를 꿈꾸고 늙은이는 과거를 추억한다지만 나는 단연코 No!라고 말한다.─늙은 나는 젊을 때보다 훨씬 더 미래를 그리며 살아간다고.

오늘도 Nella Fantasia의 노래 말이 나의 삶에 싱싱한 생명력을 보태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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