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 “할아버지, 옛날엔 저 고개에서 뻐꾸기가 많이 울었어요?” “아니다.” “그럼, 옛날엔 저 고개에서 방앗골 사람들하구 농산물을 서로 바꾸기 했어요?” “아니다.” 고개를 옛날엔 ‘재’라구 한 건 알겠는데, ‘뻐꾸기’도 아니고 ‘바꾸기’도 아니면 왜 ‘박구기재’라고 했지요. ‘박구기’가 뭐예요?” “왜, 궁금하냐?” “글쎄요, 갑자기 고개이름이 이상해서요.” “이상해, 이상할 것 하나도 없다. 하긴 요샌 잘 안 쓰는 말이긴 하지” “그래요?” “그래. 그거 우리말이다.” “옛날 할아버지 젊으셨을 때까진 썼어요?” “그렇지. 할머니는 더 잘 아시지.” “긍께, 그게 뭐냐구요?” “박구기가 뭐냐 이거지. 대답해주기 전에 하나 묻겠다. 너, ‘조롱박’이라는 건 아냐?” “그거 쪼끄만 바가지 아녜요.” “그래 맞긴 맞다. 근데 너 ‘조롱’이라는 게 뭔지 알어?” “글쎄요, 모르는데요.” “옛날에 어린아이들이, 앞으로 닥칠 모질고 사나운 운수를 미리 막으려고 주머니의 끈이나 옷끈에 차던 물건이야. 그러니까 조롱은 호리병처럼 나무로 밤톨 만하게 만들었어. 그러니까 ‘조롱박’은 원래는 호리병박 이라고 하는 즉, 호리병박으로 만든 바가지다. 네 말따나 아주 작은 바가지지.” “‘호리병박’요?” “그래, 박과의 한해살이 덩굴풀인데, 줄기는 다른 물건에 감겨 줄기를 지탱하게 하는 덩굴로서 한여름엔 하얀 꽃이 피고 그 열매는 길쭉한데 중간이 잘록하지. 껍질이 단단하기 때문에 이걸 말려서 호리병 같은 그릇으로 쓴단다. 너 ‘호리병’이 뭔지 알지?” “허리가 잘록한 병 아녜요?” “그래, 본래의 말은 호로병(葫蘆甁)으로, 호리병박모양으로 생긴 병이다. 여기에 술이나 약 같은 것을 넣어 가지고 다니는 데 쓰였지.” “많이 보고 들었어요.” “그랬을 거다. 그런데 ‘조롱박’은 이렇게 호리병박으로 만든 바가지지만, ‘박구기’는, ‘작은 박으로 만든 국자 비슷한 기구’다. 너 ‘박’ 알지?” “지붕에서 큰 호박처럼 자라는, 바가지 만드는 박 아녜요?” “맞다. 그러니까 박구기는 조롱박보다 크거나 같거나 한 작은 바가지로, 옛날엔 이걸로 술집 같은 데서 국자같이 막걸리를 뜨곤 했지.” “근데 왜 저 고개가 ‘박구기재’예요?” “이 할아버지 젊었을 때에는 그 고개 위에 그 고개를 넘나드는 행인과 방앗골 사람들 그리고 우리 동네사람들을 상대하는 술집이 있었다. 참 별다른 막걸리집이였어.”

“저 재에 있는 막걸리 집 주모 말여. 꼭 박구기로 막걸리를 뜬단 말여. 양재기나 사발 같은 거로 떠도 될 텐데 말여.” “박구기로 떠야 제 맛이 난다잖여. 그로 보면 참 박눌한 주모여.” “맞어, 사람됨이 꾸민 티가 없고 말이 없어.” “그러니께 순박하고 꾸밈이 없다 이거지 안 그려?” “왜 아녀, 술장사 같질 않아. 그렁께 손님이 그리 들끓지.” “나이는 들어보이는디 애는 하나도 없나벼.” “그러게 말여, 발써 사오년 됐는디 식구들 드나드는 걸 못보겄어.” “왜 혼잣몸이믄 워뜩해 해볼려구 그랴?” “옛기 이 사람, 행여 그런 소리 말게 누구 들으까 무섭네.” “생각이 있긴 있는겨?” “허어….” “그러구 저러구 여기 이 사람 말따나 벌써 막걸리 집 생긴지 꽤 오래 됐는디 아직꺼정 술집 이름이 없어.” “그려, 그냥 재 날망에 있는 막걸리 집이라구 하잖여?” “그려, 우리라두 부르기 편하게 그냥 ‘잿집’이라든가 그냥 ‘술집’이라든가 해야지 영 불편해서 안되겄어.” “그 집 특징이 박구기로 술을 뜨는 집이니께 그냥 ‘박구기’라구 부르는 게 워뗘?” “그것 참 좋겠네. 그럼 이제부터 저 재에 있는 막걸리 집 이름을 ‘박구기’ 로 하세!” “그리 햐, 그리 햐!” ….

“그래서 박구기가 있는 고개라구 해서 ‘박구기재’군요.” “그렇지 인제 알았지?” “예, 근데 그 박구기는 언제 없어졌어요?” “그로부터 한 삼년 후에 없어졌지. 나는 못 보았는데, 본 사람이 얘기하기를, 어떤 그 주모 또래 되는 듯해 보이는 사내가 안 간다고 버팅기는 주모를 억지로 등을 밀어 차에 태우고 가더라는 거야.” “그리곤 소식이 없어요?” “그래 지금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그 후 그 박구기는 살림 그대로인 채로 흉가처럼 남았다가 사년 뒤 빈집이라고 해서 철거해버렸지.” “그렇군요, 그래두 박구기 이름은 지금까지 남아 있네요.” “그래”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