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방사광가속기를 유치하지 못하면 지사직을 그만둘 생각이었다"

지난 11일 오전 이시종 충북지사가 한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밝힌 뜻밖의 발언이다.

이 지사는 이 인터뷰에서 방사광가속기 유치를 위해 직원들이 집에도 제때 못 가고 밤샘하며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각오를 했다고 소개했다. 사즉생(死卽生)의 각오라고 했다.

방사광가속기 유치 성공은 누구 혼자만의 힘이 아닌 전 도민의 염원이 결집돼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물론 생소했던 방사광가속기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관심을 촉발시킨 변재일 국회의원이나 선봉에 서서 진두지휘를 마다하지 않은 이시종 지사의 공은 높이 평가받아야 한다. 이들의 끈질긴 노력이 없었다면 방사광가속기 청주 유치는 단지 꿈에 불과했을 것이다.

여기엔 방사광가속기 청주 입지의 타당한 논리를 개발하고 설득에 나선 충북도청 공무원들의 고생도 있다. 또 사회 각계각층과 지역 언론의 지원도 무시 못 할 힘이 됐다.

이렇게 해서 청주 유치라는 결실을 본 방사광가속기는 청주국제공항, KTX 오송역(호남선 분기역)에 이어 청주가 품은 근래 최고의 역작이다. 국가 첨단산업 측면은 물론 지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다면 방사광가속기 유치는 그야말로 ‘대박’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석학들이 몰려들어 청주를 국제 과학도시로 만들 수 있는 기회도 잡았다.

방사광가속기의 급속한 부상에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한몫했다. 소재·부품·장비산업이 취약한 우리에게 이를 극복할 무기로 방사광가속기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독’이 ‘약’이 됐다.

정부의 방사광가속기 유치 공모에는 청주를 비롯해 전남 나주, 강원 춘천, 경북 포항 등 4곳이 도전했다. 떨어지겠다고 선거에 출마하는 후보들이 없듯이 유치전에 뛰어든 각 지자체는 저마다 이점을 내세우며 최적지라고 했다.

지자체가 들고나온 명분은 모두 일리가 있다. 청주는 접근성·연구기관 집단화, 전남은 국가균형발전 차원, 강원은 접근성과 지반 안전성, 경북은 가속기 집적화 등 나름 충분했다. 누가 되더라도 탈락 지역 반발은 피할 수 없는 구조다.

아니나 다를까, 최종 후보지로 청주가 선정됐음에도 반발은 여지없이 터져 나왔다. 홀대론까지 거론하면서 평가 점수를 공개하라고 압박도 한다.

그들은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 배경으로 ‘정치적 입김’을 의심한다. 사실 정치적 입김은 충북이 가장 우려했던 부분이다. 충남 청양 출신이자 세종이 지역구인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총선 때 방사광가속기 전남 유치를 약속해 충북을 발칵 뒤집어놨다. 믿었던 충청도 사람한테 발등 찍혔다며 불만이 쏟아졌다. 정치세가 약한 충북은 정치 입김 배제를 요구하는 것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공정하게만 해 달라는 거였다. 그 결과 충북(청주)은 최종 후보지로 낙점됐다. 탈락 지역에서 주장하는 정치 입김 개입을 무색케 했다. 한 공무원이 "문재인 정부니까 정치 입김을 배제했지 이명박근혜 정부 같았으면 결과가 어땠을까 소름이 돋는다"라는 말에서 공정성을 엿볼 수 있다.

지금 전남에서는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나주에 추가 구축을 호소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 접근성에 많은 점수를 주는 방식이라면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호남지역은 늘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국가균형발전을 외치는 저들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는 이유다.

방사광가속기를 유치한 청주지역 분위기가 들떠 있지 않고 차분한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거리에 환영 플래카드만 나붙어 있을 뿐 시끌벅적한 환영행사 하나 개최하지 않은 것은 상대를 배려한 겸양지덕이 아닌가 싶다. 굳이 불난 집에 부채질할 것까지는 없으니까.

그런데 이시종 지사가 뜬금없이 방사광가속기를 유치하지 못하면 지사를 그만두려 했다고 밝힌 것은 시의적절치 않다고 본다. 유치전에 임하는 마음다짐이었겠지만 게임이 다 끝난 뒤 그런 말을 한 것은 공치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이 지사는 충주시장에서 국회의원, 국회의원에서 도지사로 갈아타면서 두 번의 보궐선거를 치르게 했다. 선거에서 모두 이겨 출세라는 가문의 영광은 챙겼지만 엄청난 선거비용은 주민 몫이 됐다.

방사광가속기 청주 유치로 지사 보궐선거를 치르지 않아도 되고, 지역발전도 보장돼 이래저래 잘 됐다. 단지 불철주야 고군분투한 이 지사의 공로에 색이 바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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