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혁열 충북도로관리사업소 충주지소 도로보수팀장

류혁열 충북도로관리사업소 충주지소 도로보수팀장

[동양일보]미국의 에릭 잉글랜드 감독의 영화 ‘로드킬’을 우연히 보게 됐다. 아무도 지나지 않는 산길에 그들을 노리는 시선, 칠흑같이 어두운 인적이 드문 도로 위에서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괴동물, 그를 피하다가 벌어진 2차, 3차 사고의 연속은 오싹한 전율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로드킬(Road Kill)이란 말 그대로 길 위의 죽음이다. 더 구체적으로 야생동물들이 먹이를 구하거나 이동을 위해 도로를 횡단하다가 차량에 치여 죽는 것을 말한다. 로드킬은 주행 중인 차량과 타고 있던 사람도 치명적인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아주 위험하다.

특히, 도로가 차지하는 면적이 큰 우리나라는 야생동물들이 수많은 도로를 만날 수밖에 없어서 로드킬로 인한 사고위험이 매우 크다. 개발의 결과물로 인간이 동물들의 서식지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도로와 철도를 만들었기 때문에 인간과 동물의 공존 틀을 깬 부작용이라 볼 수 있다.

동물들은 자동차의 불빛을 보면 피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얼어붙는 습성이 있다. 현장에서 관련 업무 담당자로서 이 시간에도 갈 길을 가야 하는 인간과 설 곳을 잃은 야생동물들이 수없이 충돌하고 있는 현실을 보며 동물의 죽음도 안타깝지만 억울함을 항변하는 사람들을 보면 더없이 안쓰러운 마음이다.

우리나라가 로드킬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관련 통계가 시작된 지도 십수 년 밖에 되지 않았다. 고속도로 로드킬 발생현황을 보면 2009년 1895건을 기준으로 매년 증가해 2012년 2360건, 2017년 3000건을 넘어서서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충북도 에서도 로드킬 안내표지판 설치 등 적극적인 홍보로 로드킬 신고가 2017년 27건, 2018년 76건, 2019년 80건으로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로드킬로 죽은 동물은 고라니 88.6%, 너구리 6.6%, 멧돼지, 삵, 멧토끼 등의 순이며 이에 따른 인명피해와 재산 물적 피해도 해마다 커지고 있다.

다행히 환경부와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가 나서서 2005년 친환경 도로 건설 지침이 만들어져 고속도로와 국도, 지방도까지 동물침입방지 펜스 및 유도펜스를 전국의 도로에 설치하고 있다.

설치펜스는 땅속을 파고드는 두더지류 때문에 땅속 10cm 깊이까지 설치하고 뱀 같이 기어오르는 동물들로 인해 미끄럼 방지대도 설치한다. 하단부의 망목을 촘촘하게 만들어 양서 파충류처럼 뛰어오르는 동물들을 위한 높이 조절과 동물들이 다치지 않도록 가시철선 등은 쓰지 않도록 하는 등 한국형 동물지침을 만들었다. 이렇게 설치한 펜스는 모니터링 결과 상당한 효과를 보고 있음이 입증됐다.

지방도로에서 일어나는 로드킬의 경우 정부 차원에서 경고 표지판을 설치하고 내비게이션의 안내도 제도화해 정착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운전자의 규정 속도 준수와 주의 깊은 배려가 함께 한다면 도로는 더 이상 로드킬이 아닌 사람과 동물의 상생도로가 될 수 있음을 확신한다.

동물들이 살아갈 터전과 안식처를 먼저 빼앗은 것은 인간이다. 그로 인해 대책과 예방도 인간의 몫이다.

요즘 우린 지난 수 개월간 코로나19라는 지구촌 대재앙과 직면하여 전례 없는 고통을 겪고 있다. 역설적이 되게도 코로나19가 지구촌을 덮치면서 환경과 동물들은 살아나고 있다는 뉴스를 접하곤 한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문제와 해답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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