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모 문학평론가·문학박사

[동양일보 ]민족의 길, 문학의 길

 

강찬모   문학평론가/문학박사
강찬모 문학평론가/문학박사

 

모든 예술은 현실을 기반으로 한다. 특히 시는 흙탕물 속에 핀 ‘꽃’이다. 그 꽃을 굳이 일방적인 ‘서정’이라고 단언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흙탕물에서 핀 무명씨는 모두 꽃이라는 게 본질이다.

이러한 생각은 시는 곧 서정시라는 시에 대한 재래의 편견을 전복한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시가 태생적으로 갖게 되는 미적인 생경성과 투박함도 당대 현실을 증언하는 생생한 꽃이 된다.

그러나 포석의 시에는 프로시의 이러한 일반적 경향들이 편향되게 나타난 게 아니라 오히려 전통과 상고주의에 대한 복고적 의지가 강하다. 세계를 지향하는(cosmopoiltan) 사회주의자의 기본적 이념과는 상당한 편차를 보이며 그의 선 굵은 실천적 행동과 비교해 볼 때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의 시에서 육사의 기개와 석정의 모성 그리고 김수영의 전통 옹호론 심지어 만해 시와 상호작용의 흔적이 보이는 것은 그의 시가 프로시의 천편일률적 전형에 국한되지 않는 보다 심층적 구조가 있음을 보여 주는 일로 한국근현대시의 원형일 가능성을 높인다.

뒤늦게 포석의 진가를 확인하고 그의 작품을 탐독한 필자 눈에는 포석이야말로 한국근현대시에서 새로운 ‘전통’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할 시인이며 문학가이다.

엘리엇은 전통이란 “지금 현재에 작용하는 큰 힘”이라고 했다. 전통은 늘 기존을 배반하면서 등장하는데 등장이 곧 새로운 전통으로 승인받기 위해서는 후대 작가의 추인이 있어야 가능하다. 그렇지 못하면 전통은 일회성으로 그치고 하나의 관습으로 기능할 뿐이다. 나는 포석의 문학이 한국근현문학의 전통과 상호 영향관계 속에 있는 후대의 기원임을 확신한다.

특히 형식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도 형식 일변도가 빠지게 되는 형해성(形骸性)를 염려 내용의 우위를 강조했다. 이러한 태도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프로시의 내용주의가 형식주의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선택한 문학의 무지의 소산이라는 편견을 일거에 소거하기 때문이다. 문학의 형식은 내용과 더불어 문학의 고유성을 규정하는 내적 본질이며 질서이다.

즉 포석의 내용주의에 대한 경도는 당대 현실에서 형식주의가 쉽게 빠지게 될 수 있는 말 그대로 ‘형식논리’를 경계한 선택이라는 것이다. 형식은 내용에 포함된 성격에 의해 자연스럽게 규정된다.

이처럼 포석 문학에서 내용이 중요한 이유는 내용 속에 포석 문학의 핵심인 ‘정신주의’가 담겼기 때문이다. 어느 시대나 정신은 공동체의 묵계를 전제로 형성된 가치이자 지향점이며 문학 속에서 발현하는 정신은 이렇게 형성된 가치를 발굴 전파하는 진원지이다. 포석이 ‘힘의 예술’을 주장했던 것도 이러한 정신주의의 발로였다.

포석은 사회주의를 지향한 작가였지만 그의 시와 소설은 ‘민족정신’을 기반으로 한다. “지게 목발을 두드리며 노래하는 초동(樵童)과 바람에 나부끼는 실버들 가지의 숨결”을 “조선혼의 울음소리”라고 말한 투명한 감수성의 소유자가 이념 일변도의 근본주의자는 아닐 테니 말이다.

‘조선혼’은 그의 문학의 혈맥이며 그를 지탱한 정신이다.

독일의 철학자 아도르노는 “아우슈비츠 이후 서정시를 쓰는 것은 야만”이라고 했다. 또한 ‘살아남은 자의 슬픔’으로 유명한 극작가 브레히트는 “폭력과 광기의 시대에는 그것을 증언하는 시가 자신이 추구해야 할 시의 진실”이라고 했다. 포석은 문학을 통해 모두가 고아가 된 미증유의 상실의 시대를 증언하며 고발했다. 포석에게 문학은 단순히 증언과 고발의 수단이 아니라 현실을 움직이며 민족정신을 일깨우는 각성된 ‘죽비(竹篦)’였다.

포석 사후 우리는 불행하게도 두 쪽으로 분단된 현실을 산다. 풍찬노숙하며 항일한 포석의 영혼이 통탄할 일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현실이 1세기 전, 동토의 땅을 떠돌며 문학을 통해 조선혼의 씨를 뿌린 선구자 포석 조명희를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역설적 이유이다. “눈 내린 벌판을 걸어갈 때는/발걸음 하나라도 어지럽게 걷지 마라/오늘 나의 발자취는/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이양연의 ‘夜雪’은 분단의 현실에서 하나의 서광이 될 듯하다.

포석이 간 길이 바로 ‘야설’의 길이었음을 생각한다면 ‘뒷사람’으로 지목된 우리의 소명이 결코 가볍지 않다. 포석이 일모도원(日暮途遠) 삭풍한설(朔風寒雪)의 길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은 바로 뒤에 올 사람에 대한 강한 믿음 때문이다. 이 같은 포석의 소망은 육사가 말한 “백마 타고 오는 초인(超人)”을 위한 비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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