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유차량 등 요건 필요…‘잠재적 운전자’ 면허 반납 주저
“보상 아닌 사회적 분위기 확산 취지…추가 지원책 등 검토”

[동양일보 이도근 기자]#. 청주시 가경동에 사는 A(82)씨는 최근 운전면허증을 반납하기 위해 인근 동행정복지센터를 찾았다. 그러나 담당자로부터 교통비 지원이 안된다는 말을 듣고 그냥 발길을 돌렸다. 면허취소일 30일 이전까지 차량을 소유하거나 자동차보험 가입자여야 지원을 받을 수 있는데, 2년 전 차량을 폐차한 A씨는 이 규정에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는 “고령자가 다시 운전하는 걸 막으려면 면허증 반납이 가장 확실한 방법인데도, 까다로운 지원혜택이 면허증 반납을 막고 있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고령 운전자의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최근 각 지방자치단체가 운전면허 자진반납 지원 제도를 앞다퉈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인센티브 지원요건이 까다로워 면허 반납을 주저하게 하고 있다.

18일 청주시와 경찰 등에 따르면 각 지자체는 지난해 10월부터 만 70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운전면허 자진반납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현재까지 청주에선 고령 운전자 152명이 참여했다.

이는 돌발상황 대처 능력이 비교적 떨어지는 고령 운전자가 자가용 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하게끔 유도하기 위한 것으로, 면허를 반납한 노인들에겐 10만원이 충전된 교통카드를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제도에 대한 실효성 논란이 일고 있다.

실제 청주에서 면허반납에 따른 10만원의 교통지원금을 받으려면 2019년 10월 이후 면허를 스스로 반납하고, 운전면허 취소처분 결정이 된 ‘실제 운전자’여야 한다. 실제 운전자 여부는 면허취소일 30일 이전까지 차량을 소유했거나 자동차보험에 가입된 여부 등으로 증명해야 한다.

고령 운전자의 경우 스스로 운전대를 잡은 지는 오래됐으나 언제라도 만일의 상황에서 다시 운전에 나설 수 있는 ‘잠재적 운전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이 같은 까다로운 인센티브 요건 탓에 고령자들이 면허증 반납을 주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례로 A씨 처럼 2년전 자진 폐차하고 면허증을 소유하고 있는 경우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운전이 가능하다. 자신 소유의 차는 없어도 친구 차를 운전하거나 렌터카를 직접 몰 수 있다. '실제운전자' 규정이 고령 운전자의 면허증 반납을 가로막아 반납제도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A씨는 "설령 교통지원금을 받기 위해 장롱면허를 반납한다 하더라도 잠재적 운전자들의 운전을 막기 위해선 차량 소유와는 관계없이 교통지원금을 주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고령 운전자 면허반납이 사고 감소에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충북경찰청 집계에 따르면 도내 65세 이상 운전자 교통사고는 2016년 1107건, 2017년 1208건, 2018년 1433건으로 해마다 늘었다. 반면 사업 시행 후 지난해 4분기에는 410건이 발생, 2018년 같은 기간 434건보다 5.5%(24건) 감소했다.

경찰 관계자는 “면허를 반납하는 이들은 운전하지 않은 지 1~4년은 되신 분이 대부분”이라며 “만일의 상황에서라도 운전석에 오를 수 있는 ‘잠재적 운전자’들을 찾아내 사고 위험을 줄이자는 데 의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시는 이른바 ‘장롱면허’ 반납이 아닌 실제 운전자의 면허반납 효과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사업이 면허 반납에 대한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고, 그보다는 고령자들이 자신의 운전능력을 고려해 면허를 자진 반납하게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목적이라는 것이다.

시 관계자는 “지난해 10월 조례 제정 후 도입된 사업으로 시행초기 일부 미숙한 점이 있을 수 있다”며 “올해 사업에 참여하는 반납자들의 반응과 다른 지자체의 사업 등을 바탕으로 다른 지원책을 추가 도입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도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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