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도 역사다

[동양일보 엄재천 기자]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에 설치된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이 철거 수순을 밟으면서 충북도내에서 논쟁이 가열되는 분위기다. 가장 논점으로 부각되고 있는 점은 '역사 흔적지우기가 맞다'는 쪽과 '역사 제대로 알리기'로 압축되고 있다.

충북도는 한두달 가량 여론조사 등을 거쳐 공감대 형성 이후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을 철거할 방침이지만 공론화 과정이 생략될 가능성도 높아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도는 지난 14일 각계 대표로 구성된 도정정책자문회의를 긴급 개최하고 두 전직 대통령 동상 철거와 관련해 의견을 수렴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불과 나흘 앞두고 자문회의가 열린 것이다. 5.18민중항쟁기념행사위원회와 5.18유족회 등 관련단체들이 동상 존치에 대해 잇따라 문제를 제기함에 따라 자문회의를 개최했다는 게 충북도의 설명이다.

이날 자문회의에는 충북시민사회단체의 원로를 비롯해 진보계 인사로 분류되는 자문위원 13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는 전·노 전직 대통령이 1997년 4월 17일 대법원 판결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돼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상 기념사업 지원 등이 박탈됨에 따라 청남대에 설치한 동상을 철거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도에 따르면 자문위원 가운데 몇몇 위원들은 철거보다는 역사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들도 법적인 문제가 도출되자 철거쪽으로 기울었다는 것.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대판원 판결이후 18년이 2015년 전·노 전 대통령의 동상을 설치했다는 점이다. 법적으로 문제가 됐다면 2015년에 이미 이 문제를 다뤄져야 했다는 점에서 충북도 행정의 난맥상이 드러나고 있다. 충북도는 이때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을 청남대 내 ‘전두환대통령길’과 ‘노태우대통령길’ 입구에 각각 250㎝ 높이로 세웠다.

청남대 관리사무소의 한 관계자는 “두 전직 대통령을 좋아하는 도민들도 있지 않겠느냐. 의견수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부 예술단체인들은 “아픈 역사도 역사”라는 인식을 같이 하고 있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법적인 문제에서는 벗어날 수 없다. 특히 후손에게 역사를 제대로 알려야 한다는 측면에서 전·노 전 대통령의 행위에 대해 비석에 남겨야 한다는 의견과 관련, 이들 가족들의 항의나 명예훼손에 대한 문제도 떠오르고 있다는 점이다.

충북도의 공론화 과정은 청남대관리사무소와 충북도청 내 간부들을 통한 의견수렴으로 진행되고 있다.

도 관계자는 “설문조사나 공청회로 의견수렴하는 일정은 아직 잡힌 것이 없다”며 “청남대관리사무소나 도청 내로 문의해 오는 사람들에게 답하는 것도 하나의 의견수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이미 대법원 판결로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는 박탈된 상태”라며 “이에 따라 그들의 동상을 공공전시하는 것은 법으로 안 되기 때문에 철거해서 보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통령길도 멀리 내다보면 다른 이름으로 바꾸는 것이 맞다”며 “현재 6명의 대통령길이 마련돼 있는데 앞으로 더 많은 대통령들이 탄생할 것이고, 청남대에 그 분들의 길을 다 만들 수는 없다. 근시안적인 선택이었던 것 같다. 좀 더 넓은 의미의 길을 만들어 관광인프라로 만들어 갈 것”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전·노 전직 대통령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은 아니다”며 “동상은 그 자리에서 옮겨 보전할 것이고 대통령길은 좀 더 큰 의미를 담은 길의 명칭을 새롭게 만들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도내 일각에서는 충북도가 이미 동상 철거를 전제로 깔고 ‘여론몰이’를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숨기지 않고 있다. 5.18민주화운동 40주년을 목전에 두고 긴급 도정정책자문회의를 개최한 것도 ‘숨은 저의’가 있다는 것이다.

청남대관리사업소 한 관계자는 “갑자기 자문회의가 소집됐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바쁘게 일이 진행됐다”며 “진보쪽 관계자와 보수쪽 관계자들이 함께 모여 논의했고 처음에는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을 얘기하자 더 이상의 반대 목소리는 없었다”고 전했다.

도내 한 유력인사는 "충북도가 보여준 일련의 행보를 봤을때 민주적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고 ‘몰아치기식’ 동상 철거 등은 부작용을 낳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엄재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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