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식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원장

해체복원 전의 모습
제천 장락동 모전석탑 전경

[동양일보]장락동 칠층모전석탑은 제천시 장락동 65–2번지 장락사지에 위치한다.

모전석탑이란 일반형의 석탑과는 달리 석재를 벽돌과 같이 가공하여 기단부와 탑신부를 켜켜이 쌓아올린 탑을 말하는데 일반형의 석탑에 비해 현저하게 희소한 편이며, 규모는 대체로 크고 높게 축조되는 경향이 있다.

탑의 소재가 돌이기 때문에 석탑으로 분류되지만 외형상 벽돌탑(塼塔)을 모방하고 있어 이를 모전석탑으로 구분하게 된다.

벽돌로 쌓은 전탑과 모전석탑은 짧은 기간에 축조할 수 있는 반면 태풍과 지진 등에 취약할 뿐만 아니라 여러 매의 석재로 조합되어진 틈새로 풀이나 작은 나무만 자라도 붕괴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따라서 현재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전탑과 모전석탑이 창건당시의 모습을 지니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하겠다.

그러나 장락동의 모전석탑은 천 수백여년을 잘 버텨왔으나 불행하게도 6‧25 한국전쟁 당시 포탄에 맞아 1층과 2층의 남서쪽 탑신과 옥개석에 피해를 입어 1967~1968년에 해체 복원하여 지금은 상륜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완전한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해체 수리 시 지대석 아래에서 발견된 금동여래입상은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수장되어있는데 어떤 절차로 경주박물관으로 이관되었는지 지금까지 알려지지않고 있다.

장락동 칠층모전석탑은 일부 수리는 되었지만 잔존상태가 거의 완벽하며 거대한 규모와 양식적인 특징으로 볼 때 충북지역을 대표하는 모전석탑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2003년부터 4차례에 걸쳐 충청대학박물관에서 사지의 정밀발굴조사를 통해 16동의 건물지를 확인하였고 석탑의 조성시기를 가늠할 수 있는 유물을 다량으로 확보하면서 이 탑이 통일신라 후기에 건립되었고 고려 중기에 한차례 중건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탑은 회흑색의 점판암을 벽돌 형태로 납작하게 잘라 쌓았다. 전체 높이는 9m이고 폭은 3.5m이다. 기단은 별도로 마련하지 않고 지대석으로 탑신부를 바로 받치도록 하였는데 이는 석탑의 규모에 비해 이례적인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지대석은 모두 8매의 석재로 이루어졌는데 남쪽 면에 커다란 판석 1매를 놓고 북쪽과 동‧서단부에 7매의 장대석으로 맞추었다.

1층 탑신의 네 모퉁이에는 화강암으로 된 돌기둥을 세웠는데, 이러한 수법은 다른 전탑이나 모전석탑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수법이다.

석탑의 남쪽과 북쪽에는 화강암으로 문기둥 두 개를 세우고 그 위로 이마돌을 얹어 사각 틀을 만들고 문을 만들었는데 표면에는 문고리를 장착했던 흔적이 남아있다.

장락동 모전석탑에서 나타나는 문비장식은 고대에 성행했던 木塔의 출입시설 잔영을 반영한 것으로 이 탑이 고대 목조탑 양식을 부분적으로 계승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옥개석은 상하 모두 계단형태를 하였고, 추녀도 짧게 마무리 하였다. 네 모퉁이 끝에는 풍경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옥개받침은 9단 내지 7단으로 되었고 상면의 층단도 이에 준하였으며 옥개석은 15단 내외로 구성되었다

상륜부는 모두 없어졌으나 7층 옥개석 정상에 1변 길이 70cm의 낮은 노반(露盤)만이 남아 있다. 그 중심에 지름 17cm의 둥근 구멍이 있고 이를 중심으로 연판이 조각되어 있다. 이 구멍은 찰주를 세웠던 찰주공(擦柱孔)으로 6층 탑신까지 뚫려 있다.

한편 주목되는 것은 탑신 전체를 석회로 발랐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는데, 이 같은 형태는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영양 현이동 오층모전석탑, 영양 삼지동 모전석탑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7층 옥개석 윗면에서 꽃 모양이 조각된 청동편이 발견되어 원래는 정상에 청동제의 상륜(相輪)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락동 칠층모전석탑은 보존상태가 우수할 뿐만 아니라 절터에 대한 발굴조사를 통해 석탑의 창건과 재 건립 시기가 규명되어 다른 모전석탑의 편년 연구에 비교자료로써 학술적 가치가 매우 높다고 평가된다.

특히 장락동 칠층모전석탑이 국가경영의 중추인 교통로의 운영과 신앙의 기능은 물론 풍수사상에 기반 하여 건립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어 우리나라 모전형계석탑 건립배경 연구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장락사지에서 출토된 평기와와 와당으로 인하여 많은 역사연구자들이 장락동모전석탑을 주목하게 되었고, 이러한 관심은 제천지역의 고고미술사분야를 전반적으로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장락사지 출토 평기와들의 두께는 1cm 내외로 얇으며 등 면에 새끼줄을 꼬은듯한 문양의 승문과 직선문을 타날 한 것들이 주류를 이루는데, 이 기와들이 경주와 공주. 부여 등 왕도(王都)에서 출토되는 고식의 기와들보다 선행된 양식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장락사지의 평기와들은 한성백제기의 왕궁지인 서울 송파구의 풍납동토성에서 출토된 기와들과 양식적으로 친연성을 보이고 있다. 결론적으로 장락사지 출토 평기와는 지금까지 한강이남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양식의 평기와들인데 이들이 제천지역에서 제작되고 사용되었다는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사실이라고 하겠다.

이들 기와에 관하여 필자는 2004년부터 여러 차례 학계에 발표하였고, 2007년 6월 제천문화원과 한국기와학회가 주관하여 ‘제천 장락사지 출토 기와’라는 주제로 국제학술대회를 제천여성회관에서 개최하였다.

학술회의에 참여한 국·내외의 저명한 기와연구자들이 단 한사람의 이견도 없이 장락사지 출토 평기와가 우리나라 最古양식의 기와임을 확인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연구자들은 장락사지의 평기와의 제작 하한시기를 삼국기인 600년대로 추정하였고, 이 기와들은 장락사지의 창건기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하였다.

이 곳에는 삼국시대부터 사찰이 경영되었고 통일신라 하대에 와서 불탑의 기능과 교통로상의 이정표 역할을 겸한 모전석탑이 건립되었다는 결론을 도출하게 되었다. 장락사지는 현재까지 제천지역에서 확인된 최초의 삼국시대 불교유적이며 칠층모전석탑은 제천지역을 대표하는 불교문화재라고 할 수 있다.

출토 금동여래입상
출토 금동여래입상
출토 승문평기와
출토 승문평기와
승문평기와 디테일
승문평기와 디테일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