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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향계/ 옥스나드 가는 길
풍향계/ 옥스나드 가는 길
  • 동양일보
  • 승인 2020.05.21 20: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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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희 논설위원/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강준희 논설위원/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동양일보]미국을 여행할 때의 이야기다. 그날 교포 독자 K형과 함께 로스앤젤레스에서 북북서로 약 66마일 떨어진 벤츄리 해변을 달리고 있었다. 물론 K형의 자동차로였다.

그곳엔 K형의 막역지우 L씨가 살고 있었고 우리는 그 L씨의 곡진한 초대를 받아 가는 길이었다.

그날은 8월답게 햇볕이 쨍쨍 퍼부었고 흰 구름은 파란 하늘에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전형적인 여름 날씨에 전형적인 해변 날씨였다. 기분이 장히 상쾌해 차창을 활짝 열어놓고 시원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며 광활하게 전개되는 일망무제의 파노라마에 눈을 두었다.

그러며 “가자 가자가자 바다로 가자”라는 폴카 풍의 경쾌한 가요 ‘바다의 고향시’를 콧노래로 흥얼대다 휘파람으로 바꿔 불렀다.

미지의 이국(異國) 풍경을 일망무제로 바라보며 노래한다는 게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었다.

여행은 역시 즐거운 것이었다.

그러기에 영국의 수필가이자 비평가인 ‘해즐릿’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유쾌하고 즐거운 것 중의 하나가 여행이다’라고 자신의 글 ‘여행길’에서 말했을 터이다.

오소백(吳蘇白)도 그의 글 ‘단상(斷想)’에서 ‘여행량(旅行量)은 인생량(人生量)이다’라고 말해 여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소년처럼 들떠 희희낙락이었다. 웃고 떠들고 노래하며 101번 국도를 씽씽 달렸다.

LA에서 옥스나드 벤츄리 해변까지는 1시간 30분 거리라 했다.

K형은 차를 몰면서도 운전대를 손바닥으로 탁탁 치며 “으이 좋다, 얼씨구 좋다”하고 흥을 돋워 추임새를 매겼다. 이렇게 얼마를 달렸을까?

아마 한 40여 분쯤 달렸을까 싶은 지점에 이르렀을 때 우리는 차를 멈추었다.

앞서 달리던 차들이 일제히 멈춰 섰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차를 세우고 밖을 내다보았다.

앞에는 여남은 대의 차들이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채 죽 늘어서 있었다.

물론 우리 뒤의 차들도 멈춰 서서 차의 행렬은 순식간에 끝이 안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누구 한 사람 경적을 울리거나 왜 차를 세우느냐며 소리치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는 이상하다 싶어 차 앞쪽으로 걸어갔다.

신호등도 없는 데서 차들이 섰으니 도대체 왜 그러는지 이유나 알고자 해서였다.

그런데 이 무슨 희한한 변인가.

그곳엔(차가 멈춰선 맨 앞) 생게망게하게도 한 떼의 오리가 꽥꽥 소리치며 뒤뚱뒤뚱 길을 건너고 있었다.

오리는 모두 여섯 마리였는데 다섯 마리는 새끼였고 한 마리는 어미인 듯했다.

어미는 몸이 달아 연신 꽥꽥거리며 길 건너 쪽으로 새끼들을 몰았다.

그런데도 새끼들은 막무가내며 오던 길을 다시 가고 가던 길을 다시 오고 하며 우왕좌왕 말썽을 부렸다.

그러자 어미는 몸이 달아 긴 목을 한껏 빼 들고 꽥꽥 울부짖었다.

그것은 마치 “애들아! 이 천둥벌거숭이들아, 그리 가면 위험하다, 이리 가야 한다”하고 나무라는 듯했다.

그래도 새끼들은 오불관언 막무가내였다. 어미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뭐라고 꽥꽥거리며 새끼들을 한 마리씩 길 건너로 물어다 놓기 시작했다.

그런 어미의 표정은 불안과 놀라움에 사색이 돼 있었다.(적어도 내 눈엔 그렇게 보였다)

이때 차를 세운 수많은 사람들이 이 신기하고 진기한 광경을 웃음 띤 얼굴로 바라보며 일제히 ‘브라보!’를 외쳤다. 손뼉을 치면서…….

나는 숨죽인 채 이 광경을 지켜보았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

어미는 마침내 다섯 마리의 새끼를 길 건너로 물어 나르는 데 성공했다.

“오! 오!”

수백 명의 사람이 감탄사와 함께 함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나는 왠지 자꾸 눈물이 났다.

이는 어쩌면 오리와 함께 미국인들의 행동이 눈물을 흘리게 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새삼 그레이트 아메리카(Grate America)를 생각했다.

이게 만일 한국에서였다면 어찌 되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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