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진 청주시 현도면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최병진 청주시 현도면 행정복지센터 주무관

[동양일보]기원전 133년의 로마 광장은 피비린내 나는 살육의 현장이었다. 당시 로마는 날로 극심해지는 빈부격차로 인해 공화정 체제 곳곳에서 균열이 감지되던 터였다. 이에 호민관 티베리우스 그라쿠스는 부의 재분배 방안이 담긴 개혁 법안을 추진해 로마 사회 전반의 체질 개선을 시도했다. 그러나 이내 원로원 귀족을 위시한 반개혁 세력의 저항에 부딪혔고, 계속되는 진영 간 대립 끝에 그와 그의 일파는 반대파들이 휘두른 철제 곤봉에 무참히 살해당하고 말았다. 10년 뒤 동생 가이우스 그라쿠스가 호민관에 선출돼 형의 유지를 이어받아 변혁을 시도했지만, 그 역시 기득권의 반발을 이기지 못하고 쫓기는 신세가 되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로마 역사의 수레바퀴는 그렇게 거꾸로 돌아가고 말았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때론 과거 먼 나라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오늘날 우리에게 중첩돼 나타나곤 한다. 청주시청 본관 3층의 3개 부서를 통틀어 직원들 간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좌석을 무작위로 공유하는 이른바 ‘공유 좌석제’를 도입한다는 계획이 발표됐을 때, 서문에서 밝힌 로마사의 한 페이지가 불현듯 떠올랐다. 예기치 못한 변화에 대해 내부 직원들의 동요가 곳곳에서 감지됐기 때문이다. 부서장은 물론 중간 간부의 좌석까지도 평직원의 것과 같게 해버리는 과감한 시도는 수직적 관계에 기반한 자리 배치에 적응해온 공직사회 구성원들의 우려를 자아내기 충분했다. ‘비채나움’이 본격 가동되자 조직 내·외부인들의 볼멘소리는 더욱 구체화돼 나타났다. 관련 부서에서 마련한 비채나움 설명회는 공유 좌석제의 효용성을 불신하는 성토장이 됐다.

‘비채나움’은 마치 ‘90년대 생’ 같다. 클라우드 시스템을 통해 고정된 자리 없이 매일 업무공간이 바뀌는 방식은 젊은이의 자유분방함을 떠올리게 한다.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이미지로 대표되는 국내외 기업들의 성공담을 들으며 자라 온 90년대 생들에게 이러한 업무환경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당연하다고 생각해온 일들이 사무실 안팎에서 어긋나면서부터 그들은 고단한 삶에 놓인다. 모난 돌이 정에 맞아 둥글둥글 해지듯 90년대 생들은 수직적인 공간 안에서 그저 ‘사람 좋은 사람’이 되기만을 강요당한다. 그동안 갈고닦아 온 개성과 창의성은 조직의 그리드(grid)에 세뇌돼 ‘겸손’이라는 허울로 대체되고 있다. 자신의 특기를 발휘해 향상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했던 이들 중의 한 사람으로서 직원 간 수평적 의사소통을 통해 창의성을 추구하는 공유 좌석제를 응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그라쿠스형제의 개혁은 70여 년이 지난 후 카이사르가 집권하면서 다시 추진됐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뒤돌렸던 로마 민중의 허탈함은 어떠했을까. 청주시에게 공유 좌석제는 그 자체로 정답이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경직된 조직사회에 균열을 일으킨 ‘혁신’임은 분명하다. 이 밖에도 청주시는 사회 변화에 부합해 뉴미디어를 활용한 시정홍보·리버스멘토링·놀일터연구소 등 다양한 시책들을 추진하고 있다. 거창한 사회과학적 통계를 떠나 90년대 생으로서는 만족스러울 따름이다. 이러한 흐름은 지방정부 행정의 새로운 정의로 자리매김할 것임을 확신하는 바 청주시의 혁신은 역사를 교훈 삼아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야 한다. 이제 혁신을 바라는 이들은 철제 곤봉이든 정이든 함께 맞을 각오가 돼 있으니 바라건대 혁신이여, 영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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