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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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이 동양일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

 

[동양일보 김영이 상무이사 겸 편집국장]옛 대통령 별장인 청남대에 있는 전직 대통령 동상 철거 방침을 정한 충북도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5.18 광주 학살의 원흉인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동상을 철거한다면 박수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반대 여론이 심상치 않아서다.

전직 대통령 동상 철거 논란의 원인 제공자가 충북도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한 시민단체의 요구를 덜컥 수용한 것이 발단이다. 충북5.18민중항쟁기념사업회는 5.18 40주년을 앞둔 지난 13일 두 전직 대통령 동상 철거를 요구했고, 이에 충북도는 이 단체 요구 하루 만에 도정정책자문회의를 긴급 소집해 철거 방침을 정했다. 철거 시기는 도민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청남대 운영 개선 방안을 마련해 결정하겠다고 했다.

현재 청남대에는 청남대를 만든 전두환 전 대통령부터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전 대통령 등 6명의 이름을 딴 테마 길이 조성돼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판을 받고 있어 머지않아 그의 길은 폐지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 같았던 동상 철거는 ‘부끄럽고 잘못된 역사도 역사’라는 사실 앞에 부딪쳤다. ‘흔적 지우기’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반대 여론이 가로막고 나선 것이다.

‘흔적 지우기’가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8일 국립대전현충원 현판과 헌시비를 안중근 글씨체로 바꾸기로 했다. 이 현판과 헌시비는 1985년 준공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로 만들어졌다.

1988년 2월 세운 남극 세종과학기지의 표지석에 붙어 있는 전 전 대통령의 한글 휘호 ‘세종’ 동판도 철거 수순을 밟고 있다. ‘전두환’ 이름이 새겨진 전북 장수군 논개 생가터 정자의 현판도 떼어졌고, 전 전 대통령 부부가 1988년부터 1990년까지 생활했던 강원 백담사는 이들이 사용한 물품을 모두 치웠다.

그러나 그의 고향인 경남 합천에는 1993년 복원된 전 씨 생가가 유적지나 관광지처럼 보존돼 있다. 생가까지 없애기는 인륜을 벗어나는 일 일 수 있다. 다만 ‘국가의 총체적 위기를 수습하는 데 역할을 해 대통령에 추대됐다’는 내용과 ‘정치적 공격을 받아 4년 넘게 유폐 생활과 옥고를 치렀으나 평화적 정권 이양의 전통을 세워나가기 위한 진통으로 여겨 모든 어려움을 감내했다’고 적은 안내판은 수정돼야 하고, 대신 그의 폭정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면 된다.

청남대의 전직 대통령 동상 철거 소식에 많은 사람들은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충북도의 방침을 비난하고 있다. 도민 혈세로 제작한 동상은 도민의 재산이고 철거하려면 또다시 혈세를 써야 한다. 잘못된 역사도 역사의 한 페이지인데 좋든 싫든, 잘했든 못했든 한 나라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 그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은 또 다른 과오라는 것이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그들의 만행을 두둔하자는 게 아니다. 대신 그들의 만행을 사실 그대로 기록해 동상과 함께 존치시키는 게 교육적 차원에서 바람직하다.

2003년 국민에게 개방된 청남대는 역대 대통령 6명이 모두 89차례 찾아 366박 472일을 머물렀다. 관리권을 넘겨받은 충북도는 관광명소로 만들기 위해 대통령 기념관, 대통령 테마공원 등 다양한 볼거리를 조성했다. 대통령 동상도 그중 하나다.

이런 노력 끝에 청남대는 해마다 80만~100만 명이 찾는 중부권 명소로 자리잡았다.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 단죄하려는 심정은 이해한다. 직접적 피해지역인 광주시민이 아니더라도 당시 상황을 담은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면 다들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

그렇다고 그런 분노를 앞세워 흔적 지우기를 하겠다면 그 역시 역사 앞에 떳떳치 못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씨’를 말리는 게 아니라 그들의 만행을 정확하게 기술해 동시대에 사는 국민들과 후세에게 영원히 알리는 것이다.

충북도의 사면초가 입장을 이해못하는 바 아니나 결국은 해결은 충북도의 몫이다. 자존심 내세워 빼 든 칼을 거두어들이지 않고 시간을 끈다면 갈등은 지속되고 도정 추진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맡겨 도민의 의견을 직접 물어보는 것도 해결책의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법(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대로’를 내세워 철거를 고집한다면 또다른 역사적 과오를 저지르는 행위다. 애초 법을 위반해 이런 문제를 야기한 자는 충북도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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