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논설위원 시인

나기황 논설위원 시인

[동양일보]언어 변화의 한 갈래로 ’의미변화(semantic change)‘가 있다. 어떤 단어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본래 의미가 바뀌는 것인데 ’차(車)’라는 단어가 ’수레‘의 시대를 거쳐 바로 ’자동차’로 인식되는 것과 같다. 요즘 자주 거론되는 ‘뉴노멀(new normal)’이란 용어가 그렇다. ‘노말(normal)'은 "보통, 평범한, 정상적"이란 의미의 형용사 또는 명사로 쓰이는 단어다. 여기에 “새로운, 경험해보지 못한, 작금의” 등의 뜻을 가진 ’뉴(new)'가 붙어서 ‘뉴노멀’이란 합성어가 생겨났다. ‘새로운 정상’, ‘경험해보지 못한 일상’ 쯤으로 다소 어색한 해석이 되지만, “사회적, 경제적 큰 변화로 인해 기존의 질서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표준이나 기준이 생겨나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 됐다. 코로나 19사태처럼 원하든 원치 않던 변화된 국면을 ‘정상적인 일상’으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새로운 질서’를 일컫는 말로 이해하면 되겠다.

덧붙이면, 뉴노멀은 2003년 미국 벤처투자가 '로저 맥나미'가 처음 제시한 개념인데, 2008년 무하마드 앨 에리언이<새로운 부의 탄생>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언급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실제로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세계는 ‘뉴노멀의 사회’라는 큰 변화를 경험했다.​



최근 구글 검색 창에서 ‘뉴노멀-new normal’이라는 키워드를 치면 22억 개 이상의 검색결과가 뜨는데, 상위에 올라온 대부분은 코로나 19에 관련한 내용이라고 한다.

코로나 19 이후 맞게 될 새로운 변화, 즉 한 단계 진화된 ‘뉴노멀 2.0’에 관해 그만큼 두려움과 궁금증이 있다는 방증이다. 가보지 않은 길, '뉴노멀 2.0'은 적어도 코로나 이전의 ‘정상적인 일상(as usual)’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선언적 의미가 담겨있다. 일부 학자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미 ‘뉴애브노멀(New Abnormal’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단언한다. 3저 현상, 즉 저성장, 저소득, 저효율을 기축으로 하는 ‘뉴노멀’이 단순 업그레이드가 된 게 아니라 ‘뉴노멀 2.0’은 ‘불확실성’이라는 고성능 가속 엔진을 장착한 채로 바로 ’뉴애브노멀' 모델로 건너갔다는 얘기다. 한마디로 코로나 19처럼 전혀 예측 불가능한 ‘카오스(chaos)'적 상태가 일상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주장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형 뉴노멀의 특징으로 나타나는 몇몇 징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구매력 있는 전통적 소비계층이 무너지고 1인 가구의 증가와 1인 소비형태로 비즈니스의 축이 급격히 기울고 있다. ‘옴니채널(Omni-Channel)’ 서비스의 등장으로 소비자가 온·오프라인, 모바일 등 다양한 유통경로를 넘나들며 상품을 검색하고 구매할 수 있게 됐다.

둘째, 사회진화론적인 시각에서 뉴노멀 2.0 사회에서는 개인주의 성향과 VR/AR 과 같은 신기술을 통한 비대면 커뮤니케이션이 가속화될 것이다. 5G를 기반으로 한 1인 미디어의 영향력도 새로운 정보경제를 견인하는 한 축이 될 것이다.

거기에 상품의 배송 전 과정을 뜻하는 ‘라스트 마일’ 서비스가 합세하고, 휴대용 진단 장비와 같은 새로운 안전기술(Safety Technology)과 융합된 바이오 서비스가 사회의 변화에 맞추어 진화된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는 정신적 뉴노멀을 생각하자고 한다.

지난 40년, 효율과 성장 위주의 지구화, 도시화, 금융화로 자초한 생태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해 보자는 거다.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공존 속에서 답을 찾아야 하고, ‘철학’하는 삶으로부터 인생의 가치를 발견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결론이다.

“긴급재난지원금으로 맛본 소고기 한 근이 소비 활성화에 얼마나 이바지했을까.” 물론 중요한 사회적 합의이고 덕목이지만, 부침개를 부쳐 먹더라도 가족과 함께 웃으며 보낸 시간이 훨씬 효과적인 백신이 될 수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다가올 ‘뉴노멀 2.0’시대는 분명 우리에게 큰 도전이 될 것이다. 느긋하게 ‘자연인’을 시청하면서도 물류창고에서 막 빠져나오는 택배의 발걸음을 손안에서 감지할 수 있는 시대다. ‘손 씻기와 마스크’의 생활방역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비대면과 비접촉이 주는 여유로움을 ‘마음의 방역’으로 전환 시키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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