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희 논설위원/한국선비정신계승회장

강준희 논설위원/한국선비정신계승회 회장

[동양일보]시점(時點)을 잠깐 1994년과 1995년 어느 어간(於間)으로 돌려 기막힌 이야기 한 토막을 해보자.

불굴의 투지와 사명감으로 어떤 압력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확고한 자기 소신과 투철한 자기 신념으로 마니폴리테(깨끗한 손) 운동을 전개해 탄젠토폴리(뇌물, 검은 돈)를 척결한, 그래서 온 세계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과 박수를 한 몸에 받던 전 검사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가 재직 시 독직사건으로 검찰의 기소 위기에 몰리고 있던 때를 우리는 기억한다.

검찰이 그에게 제기한 혐의는 금품 강요, 직권 남용 등 깨끗한 손 마니폴리테와는 너무나 다른 것이어서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는 재직 시 보험회사로부터 벤츠 승용차를 받고 이 보험회사에서 무이자로 돈을 벌려 쓰다 사임 직전에 상환했는가 하면 이 회사의 법률 업무를 변호사인 자기 아내에게 맡기는 등 부정 비리가 한둘이 아니었다니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온다.

안토니오 디 피에트로 검사라면 게라르도 콜롬보 검사, 피에르 카밀로 디에고 검사와 함께 썩어가는 이탈리아를 마니폴리테로 탄젠토폴리의 부패 추방운동에 앞장선 검사가 아닌가.

이 세 사람의 검사 중에서 특히 피에트로 검사가 부패 추방에 앞장서 물경 3천2명에 달하는 부정 공무원과 기업인을 구속했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는 T셔츠와 맥주잔에 이 세 사람의 이름이 등장했고 이들을 주제로 한 책도 세 권이나 나와 명실상부한 영웅 스타의 신화적 존재로서 우상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피에트로 검사가 재직 시 금품을 강요하고 직권을 남용하고 뇌물로 벤츠를 받고 돈을 무이자로 빌려 쓰고 그래도 모자라 뇌물 받은 보험회사에 법률 업무까지 변호사인 자기 아내에게 맡기게 했다니 기가 막힌다.

그러나 우리는 기막히는 게 피에트로 말고도 또 있어 우리를 절망스럽게 하고 있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폴란드 전 대통령 바웬사의 세금 포탈이다.

바웬사는 누구인가?.

공산 독재의 철권통치와 맞서 싸우며 불퇴전의 용기로 민주화를 추진했던 폴란드 민권운동의 선구자적 우상이 아닌가.

그래서 민주화된 폴란드에 존경과 환희와 사랑의 절대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된 민주의 영웅이요 민주화의 화신이 아닌가.

그런 그가 퇴임 하루 전날 40만 달러의 세금을 내지 않은 파렴치 탈세 혐의로 망신을 당했다니 세상에 이런 기막힌 야누스가 있단 말인가.

바웬사는 자기가 면세 대상인 줄 알았다 하고 또 미국에서 납부했다고 변명했다니 이게 어디 변명으로 될 일인가.

우리는 천붕지괴로 바다가 뒤집혀 산이 되고, 산이 꺼져내려 바다가 된다 해도 피에트로와 바웬사만은 겉과 속이 똑같아 인류의 가슴에 영원히 남을 줄 알았고 처음과 끝이 똑같아 시종(始終)이 여일(如一)할 줄 알았다.

아아, 그러나 아니었다.

알고 보니 이들은 야누스요 위선자요 지킬박사와 하이드 씨였다.

자, 이러니 이 세상에 누구를 믿을 것인가.

가장 존경하고, 가장 추앙하고, 가장 신뢰한 금세기 최고의 영웅들이 이런 지경으로 양(羊)의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파는 양두구육(羊頭狗肉)이라면 우리는 도대체 누구를 믿어야 한단 말인가.

생각하면 우리는 이 두 사람을 추앙한 게 아깝고 박수친 게 억울해 침이라도 뱉어주고 싶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듯 깊이 숭배한 것에 배반당한 듯 분하고 억울하다.

한 지역의 영웅도 아니오 한 나라의 영웅도 아닌 세계의 세기적 영웅이 어쩌자고 비인소배(非人少輩)나 할 다라운 짓거리를 해 우리의 가슴을 무너지게 하는가.

그러나 이런 감정이 어찌 우리뿐이겠는가.

이 지구상의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가 비슷한 심경일터이다. 오오, 통재로고 통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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