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반영섭 인성교육칼럼니스트

[동양일보]추석이 또 어김없이 다가왔다. 쉽게 물러설 것 같지 않던 폭염이 사라지며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분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의 사태로 올 추석은 씁쓸하기만 하다. 설레는 기대감도, 가족상봉의 기쁨도, 즐거움도 없다. 고향도로가에는 ‘자식들아! 이번 추석엔 고향에 오지마라. 추석쇠러오면 불효다.’라는 플래카드가 걸린 지역이 많다. 올해 추석에는 고향에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 그것이 최고의 추석 선물이자 효도라는 것이다. 유교문화가 뿌리 깊은 종갓집 종손들도 코로나19 확산 속에 맞이하는 추석 한가위 연휴기간에 고향 방문을 자제하자는 정부의 추석 캠페인에 동참하고 나섰다. 거기다 이번 추석연휴를 없애달라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있었고, 고향 부모님께는 택배로 선물만 보내는 추세다.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고향방문을 권고하고 있고, 고속도로통행료 면제도 없단다. 그러나 추석연휴에 제주도 방문 예정자수는 30만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전국의 명승지 호텔예약이 다 찼다고 한다. 참으로 격세지감을 느낀다. 필자도 항상 일가친척 오십 여 명씩 모여서 벌초를 하고 종친회도 하며 그간의 안부를 묻고 친목을 다졌으나 벌초대행업자에게 맡겨 벌초를 했다. 그리고 각자 시간 내서 성묘하도록 하였다. 우리나라 명절 중 가장 큰 명절인 추석은 일년 중 하늘이 가장 맑고 청명한 계절에 뜨는 달이 더욱 크게 보였기에 누구나 자신의 소망처럼 그 달을 품고 싶었다. ‘한가위’라는 뜻도 ‘한’은 크다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말이다. 이번 한가위 명절은 어떠한가? 고향이 그립고, 부모 형제가 보고 싶어 찾아가던 귀성의 행렬은 옛날이야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귀성보다는 여행의 행렬이 더 많은 것이다. 그나마 명절 전날 밤의 대화는 유산의 갈등으로 싸움을 하기도 하고, 차례를 마치고 같이 음복하면서 하루를 즐기기는커녕 차키부터 찾는 것이 현 추석 풍속도는 아닌지 살펴볼 일이다. 추석에는 햇과일과 곡식을 조상에게 바치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한다. 대체로 지금까지의 세태는 정초에는 차례만, 한식에는 성묘만, 추석에는 차례와 성묘를, 그리고 10월에는 4대 이상의 조상에 대한 묘제가 각각 행해져왔다. 성묘의 형식은 크게 보아 분묘의 손질과 배례(拜禮)로 나뉜다. 이러한 형식은 돌아가신 조상의 산소에서 직접 이루어지기 때문에 조상숭배의 뜻도 내재되어 있다고 하겠다. 예전에는 설날의 명절이 윷놀이, 연날리기, 장사씨름대회 등과 같은 우리 전통의 놀이들이 대개 밝은 낮에 이루어짐으로써 양(陽)의 태양을 맞이하기 위한 남자들의 명절이라고 하였고, 추석의 명절은 강강술래라든가 달마중, 강강술래와 같은 우리 전통의 놀이가 주로 밤에 이루어짐으로써 음(陰)의 달을 맞이하기 위한 여자들의 명절이라 했다. 따라서 설날의 명절은 바깥에서 활동해야 하는 남자들이 장차 출세를 위한 집밖의 사람들에 대한 세배와 같은 대외인사의 행사에 주안점이 되어있었다. 추석명절은 집안에 있는 집안사람인 여자의 안녕복리를 위한 택내관리(宅內管理)의 집안일 행사에 주안점이 되어 있던 것이다. 그리고 추석성묘의 의미는 조상님의 무덤을 잘 살피고, 전통적인 풍습을 후손에게 무엇인가 귀중한 삶의 지혜를 가르쳐주기 위하여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다. 성묘를 하면서 묘소 주변의 초목과 지형등 환경을 잘 살펴보면 자연보호에 대한 필요성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 거기다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손들이 다른 삶을 살다가 모처럼 같은 조상의 묘역에서 만나 한 피붙이로 정을 나누고, 친척관계를 돈독히 하며 정을 나누는 것이다. 지난 일요일 미리 찾은 선산 묘역에 올라서니 천지사방이 훤하다. 병풍처럼 늘어선 상수리나무 사이로 부는 가을바람에 땀은 온데간데없다. 준비해간 간단한 제수를 차려 삼배를 올렸다. 이번 성묫길은 마음이 참 씁쓸하다. 아버님 묘소에 들꽃 한 송이를 얹었다. 코끝이 짠하다. 먼 훗날 내 무덤가에도 자식들이 꺾어온 가을꽃이 놓여 있을까? 세상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우리고유의 추석명절의 전통을 지켜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효를 근본으로 하는 성묘도 이어져 나가야 옳지 않은가하는 생각이다. 사람은 변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 변해야만 살 수 있다. 그렇다고 조상의 뿌리마져 무시한다면 나는 어디서 왔으며 자손들은 어떻게 태어날 것인가. 아무리 변화무쌍한 현대사회라 하지만 아름다운 한가위의 의미만큼은 잊지말고 이어져 가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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