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박희팔 논설위원 / 소설가

[동양일보]바로 우리 집 앞 길 건너에 할머니가게가 있다. 길 앞 좌판에는 야채, 생선, 두부 등 식료품과 가게 안 좌판엔 각종 마른 해산물이, 주위에 둘러쳐져 있는 진열대에는 각종 생필품 등이 꽉 들어차 있어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가게다. 그걸 할머니가 운영해서 할머니가게다. 한 70대는 돼 보인다. 영감님은 안 계신지 보이질 않는다. 아마 돌아가신 모양이다. 살림집은 그 안채에 있는데 한 50대 돼 보이는 아들과 며느리가 살림을 한다. 그들은 가게엔 얼씬거리질 않고 장성한 딸이 있는데 어딜 다니는지 늦은 저녁에나 가끔 얼굴을 볼 수 있다. 예쁘장하다. 


아들도 있다. 그 애가 운신이인데 내 동생보다 두 살 아래다. 그러니까 5살이다. 얘는 가게에서 살다시피 한다. 그래서 할머닌 가게 보랴 그 손자 보랴 아침저녁으론 여념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아침저녁으로 끼니때가 되면 온 동네 아녀자들이 그 할머니가게로 몰려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데  손자까지 나와 얼씬거리니 그 애를 단속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루는 엄마가 아침에 할머니가게를 갔더니 할머니가 여느 때보다 반가이 맞으며, “권희 아직 안 일어났수. 우리 운신이는 잠도 없는지 벌써 일어나 나와서 이 할매를 귀찮게 하는디 말여!” “왜요, 우리 권희 일어났으믄 같이 놀게 할려구요?” “그려, 그래두 권희가 가만히 보믄 우리 운신이 하구 같이 잘 놀더라구, 그래두 형이라구 형 형 하며 잘 따르구 말여.” 그랬다. 아침때가 지나 좀 한가해 지면 권희도 일어나 밖으로 나와 운신이와 잘 어울려 지낸다. 두 살 아래이긴 하나 그래도 또래 되는 아이가 바로 앞집에 있는데다 운신이도 잘 따르니 둘이 짝짜꿍이 될 만도 했다. 엄마한테 가게할머니의 말을 들은 권희는 다음날부터 일찍 일어났고 운신이와 같이 놀아주니 할머니도 마음 놓고 가게에 매달릴 수가 있어 엄마만 보면, 권희가 당신의 손자인 운신이를 친 동생보다 더 잘 데리고 논다며 아들 잘 뒀다고 고마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일이 일어났다. 그날은 아녀자들이 할머니가게를 다녀간 후였다. 갑자기 밖에서 운신이의 울음이 크게 들렸다. 그것도 자지러드는 울음이었다. 엄마도 나도 누나도 뛰어나갔다. 우리만 아니었다. 삽시간에 동네사람들이며 행인들이 벌써 할머니가게 앞길에 몰려 있었다. 보니 운신이가 한쪽발이 하수구 맨홀 뚜껑의 공기구멍에 끼어 있어 발을 뺄 수가 없어 울고 있고 권희는 그 발을 빼 보려고 운신의 발목을 잡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거였다. 


나는 파출소로 달려갔다. 순경 하나가 수화기에서 손을 떼며 무어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말 못하고 그 순경의 팔을 잡고 끌었다. 의아해 하는 순경이 끌려와 그 광경을 보았다. 그는 침착하게 나에게 망치를 가져오라고 했으나 망치가 있을 리 없었다. 그는 파출소로 다시 내달았다. 무슨 연장을 가져오려는 것 같았다. 보고 있던 한 남자어른이 돌로 그 구멍주위를 깨 보려고 했으나 단단한 시멘뚜껑이 깨질 리 없었다. 운신이의 울음소리는 더 크게 났다. 그럴수록 권희의 얼굴은 하얘지면서 더 용을 쓰고 있었다. 그러자 엄마가 참기름 병을 집에서 가져왔다. 그리고 그걸 그 발목 들어간 구멍에 사정없이 들어부었다. 그 큰 병의 절반 이상을 붓고는 살살 운신이의 발목을 잡고 올리기 시작했다. 운집한 구경꾼들이 숨죽여 바라보고 있었고 점점 빠지는 걸 보고 환호성을 울렸다. 그러는 내내 가게 할머니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울어댔고 운신이 식구들은 어딜 갔는지 그 난리를 폈는데도 보이질 않았다. 그 후 가게 할머닌 권희를 멀리 했다. 권희가 운신을 찾아도 없다면서 만나게 해 주질 않았다. 그때부터 엄마는 우리에게 그 구멍 뚫린 맨홀 근처엔 가질 말라고 했다. 


 그리고 6.25전쟁이 일어나 1.4후퇴 때 피란 가서 거기서 초등학교를 마치고 나는 서울로 돌아왔다. 동생인 권희는 나보다 2년 늦게 초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왔다. 그때는 그 할머니가게는 없어졌고 다른 사람이 일반 잡화상을 하고 있는데 듣기로는 할머닌 돌아가시고 그 며느리 내외는 가게 세를 받아 살림한다는 소문이었다. 운신인 훌쩍 커서 초등학교 6학년이라는데 나는 물론 권희도 보면 외면한다는 거다. 아마 쑥스러워서 그럴 거라는 엄마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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