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선 충북대 의대 석좌교수

엄기선 충북대 의대 석좌교수

[동양일보]한국과학기술한림원 종신회원이신 임한종 교수께서 지난 주 영면하셨다. 스승께서는 대한기생충학·열대의학회 명예 회원으로 일생을 기생충 퇴치와 연구에 바친 한국의 대표적 기생충학자 이셨다. 1931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대한민국 정부수립 제1주년 전국과학전람회에 개구리 기생충 9종을 발견·출품한 것으로 대통령상을 수상, 이를 계기로 “나는 기생충 퇴치를 위하여 태어난 사람”이라는 소명의식으로 평생 기생충학 외길 만을 걸어 오셨다. 1963년에 대한민국 기생충학박사 제1호가 되신 후 서울대학교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에서 교편을 잡으시고 정년 후에는 한국건강관리협회 회장으로, 세계보건기구의 기생충질환 전문자문위원으로 활동하셨으며, 이후에도 WHO 소외열대병 정책기술자문위원단으로 또 한편으로는 NGO 굿네이버스 의료분과 전문위원으로 기생충관리 국제사업에 공헌하셨다. 2019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70년 오늘날의 대한민국을 발전시킨 위인으로 선정한 바 있다. 선생께서 평생을 바쳐 해왔던 일이 바로 이러한 기생충병과의 싸움이었으며 결국 고질병인 간흡충, 폐흡충, 뇌신경낭미충증 퇴치에 성공하셨다. 특히 대표적인 구충제인 프라지콴텔을 신풍제약과 함께 개발하여 단 몇천 원으로 전 세계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병을 고칠 수 있게 함으로써 인류의 삶의 질을 향상시킨 불멸의 업적을 내셨다. 선생님께서는 평생 3종의 신종기생충을 발견하셨고, 이중 아시아조충을 공동연구로 발견하신 바 있다. 정년 후 활동은 더욱 더 빛나는 것이었는데 한국건강관리협회장으로서 기생충관리를 위한 글로벌 활동을 새로 시작하신 것이다. 이후 2009년까지 중국, 라오스, 탄자니아 등지에서 작은마을을 찾아다니며 기생충 구제에 마지막 온 힘 까지 다 쏟아 부으시다가 결국, 지팡이에 의존하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평생에 걸친 거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당신의 삶을 바쳐 세계 보건 증진에 이바지한 선구자로서, 또 많은 후학에게 무궁한 영감을 주는 대학자로서 아낌없는 칭송을 받아 마땅하지만 지난 해 만나뵈었을 때 정작 본인은 소탈하게 ‘이제 혼자 걸을 수 없는 장애인이 되고 말았네’라고 담담히 말씀하실뿐이었다. 이제 이 시대 큰 스승의 생애를 마감 하시게 되니 그 애석함이 하늘에 닿는다. 그리고 마침내 작별을 고할 시간이 되니 추모하는 마음 흰 눈이 되어 펑펑 이 땅에 내리는 것이었다. 유난히 추운 겨울 날씨였던 지난 주, 선생님께서 부디 안녕히 가셨기를 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선생님이 계셔서 진정으로 행복하였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우리나라가 한국전쟁 후 매우 힘든 시간이었을 때 그 1950년 대 당시에는 전 세계 모든 국가 중 끝에서 몇 번째의 일인당 국민소득 67달러에 불과하였다. 그리고 당시 우리국민의 기생충 감염율은 85% 이상이었다. 이러한 기생충왕국의 오명을 불과 40년 만에 기생충관리 모범국으로 바꾸고 해외 개발도상국의 기생충 퇴치를 돕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이와 같은 위인이 계셨기 때문에 가능하였던 것으로 판단한다. 오늘 날 대한민국은 기생충 퇴치를 위한 국제협력사업의 훌륭한 파트너로 세계에서 환영 받고 있다. 한국의 역경을 딛고 성공하여 이제는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모범사례를 자랑스럽게 보여줄 수 있는 국가로 변모되는 것이 어찌 그리 쉬운 일이었을까? 십수년 전에 국제정책대학원의 연구진은 대한민국 건국 후 100대 성공사례 중 하나로 우리 국민의 성공적 기생충퇴치 업적을 꼽은 바 있다. 이러한 주역의 한 분으로 일생을 이제 마감하고 한 시대를 정리하신 것이다. 사십 년을 학문의 스승이자 인생의 멘토로 모셨던 위대한 스승을 더 이상 못 뵙게 되었으니 허전한 마음 그지 없었으나 문득 오늘 아침 나는 마음속에서 스승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스승께서 내 마음에 여전히 살아 계셨다, 아니 살아 계신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