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기선 충북대 의대 명예교수

엄기선 충북대 의대 명예교수

[동양일보]킬리만자로에는 표범이 ‘없다’고 한다. 내 주위 한국 사람들의 생각이다. 킬리만자로에는 표범이 ‘있다’고도 한다. 내 주위 탄자니아 사람들의 말이다. 필자가 탄자니아 기생충퇴치사업과 기생충보존사업을 지난 십 수 년 간 하면서 알게 된 탄자니아 사람도 제법 많다.

탄자니아 기생충퇴치 국제협력사업 초기에는 한국 가요 ‘킬리만자로의 표범’ 이야기를 그들에게 해주기도 하고, 노래까지 들려주기도 했다. 탄자니아 정부에서 그 노래를 부른 한국 가수에게 문화훈장을 수여 하였다는 대목에 이르면 탄자니아 사람들 모두가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기도 한다.

킬리만자로의 설봉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구름 때문이다. 스무 번, 서른 번을 지나면서도 흰 눈 덮인 정상을 본 것은 셋 중 한번 될까 이 점은 비행기에서도 마찬가지고, 육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높이 5,895미터가 에베레스트보다는 물론 못한 높이지만 4천 미터 근처에서 산소부족 고산병이 생겨 두통으로 포기하는 등반 객이 절반이나 된다고 하니 그리 만만치는 않은 산 인 것 같다. 아무려면 아프리카의 지붕이라 할까.

킬리만자로는 현지 스와힐리어로 ‘빛나는 산’을 의미하고, 그 신비로운 느낌은 헤밍웨이의 단편소설에 등장 하는 표범이야기로 한층 고조된다. 설산에서 발견된 그 표범은 실화이다. 명확한 기록과 사진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 주인공은 1926년 봉우리에 올랐던 한 외국인 선교사로 해발 5,638미터에 위치한 킬리만자로의 한 봉우리, ‘키보’에서였다. 이후 1997년 케냐의 설산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는데 당시 900년 된 사체로 추정한 바도 있었다.

이 단편소설은 1952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져 대단한 반향을 일으켰다. 지금도 이 영화를 온라인으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아프리카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몇 편의 영화 중 아주 빼어난 수작이라고 할 수 있고, 지금 보아도 정말 훌륭한 장면으로 가득 차 있다. 팽팽한 긴장감도 있어서 문호 헤밍웨이의 이름이 아깝지 않은 소설이고 영화인 것이다.

킬리만자로는 동아프리카지구대의 일부분으로 세렝게티와도 멀리 연결 되어 있어서 지금처럼 문명시설로 격리되기 전에는 동물이 잘 왕래 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수많은 등반객이 드나드는 요즈음, 표범을 보았다는 말은 들어 본 적이 없으니, 그렇다면 이제 ‘킬리만자로의 표범’은 전설로만 남게 된 것일까? 실제로는 오늘까지도 표범의 발자국 흔적을 드물게 보임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섭섭한 일은, 표범을 차치하고라도 이제 킬리만자로의 설봉을 볼 날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얼마 안가 다 녹아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 2030년을 설봉의 한계 수명으로 잡은 연구 결과도 있는 것으로 보아 만년설은 조만간 없어질 것이다. 이 산과 설봉이 만들어지는 데는 일만 년도 넘게 걸렸다면, 사라지는 데는 단 백 년 남짓, 이것이 지구 온난화 탓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기온이 1도 상승하면 지구상의 동물 1/3이 멸종할 것이라 한다.

킬리만자로의 표범과 킬리만자로의 설봉이 결국 없어질 운명이라면 킬리만자로의 기생충은 어떤 운명을 가지고 있을까? 이 지구상 생물종의 절반은 기생충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는데, 그리고 기생충에 기생하는 더 작은 기생충도 있는데 대체 이렇게 많은 기생충은 생태계에서 무슨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일까?

사람의 기생충은 그 중요성으로 보자면 첫 째 가지만 기생충 종의 수로 보자면 꼭 그렇지는 않다. 야생동물의 기생충 종수는 이보다 훨씬 많아서 크기가 비교적 큰 연충류 기생충만 해도 30만종까지 추정하는 학자가 있는 것이다. 그리고 자연계에서 기생 종을 포함하면 기존 먹이 그물이 4배로 복잡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이 모든 것은 기생생물이 먹이사슬의 구조를 지탱하는 숨겨진 역할을 할 것이라는 추측의 뿌리가 된다. 자연계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종의 섬세한 균형을 유지하는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기생생물 10분의 9는 알려지지 않았고, 장내 기생충만으로도 지구 전체의 기생충을 기재하려면 536년 걸릴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지구인은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적어도 우선 ‘기생생물세계은행’이 지구에 하나는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먼 훗날 누가 ‘킬리만자로의 기생생물은 언제 없어지겠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킬리만자로의 ‘모든 숙주동물이 사라지는 날’이라고 답하겠다. 기생생물은 기생생활이 본성이어서 숙주와 고락을 같이 하기 때문이다. 아무렴 그래도 킬리만자로의 표범이나 흰 눈 보다야 빨리 없어지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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